전시상황서 군 통수권자 발언 와전시킨 책임 짚어봐야
  • 북한의 서해 연평도 포격 도발이 있던 23일 오후 청와대 지하 벙커에선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긴급 수석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회의 도중 청와대 한 관계자의 전화가 울렸다. 이 관계자는 메모지에 통화 내용을 적었다. 그리고 바로 기자들에게 이 내용을 알렸다.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라"는 이 대통령의 첫 메시지였다.

  • ▲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서해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 23일 저녁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을 방문해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으로부터 화상을 통해 작전상황을 보고받고 있다. ⓒ연합뉴스
    ▲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서해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 23일 저녁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을 방문해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으로부터 화상을 통해 작전상황을 보고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 관계자는 곧바로 이 대통령의 발언을 정정했다. "확전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는 게 바뀐 이 대통령의 메시지였다. 얼마 뒤 이 메시지는 다시 "단호히 대응하되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로 바뀌었다.

    이 대통령이 한민구 합참의장으로부터 화상회의를 통해 실시간으로 현지 상황을 보고 받고 이 과정에서 나온 이 대통령의 발언을 참석한 고위관계자가 대변인실에 전하고, 다시 춘추관으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메시지가 바뀐 것이다.

    이 회의가 제한된 고위관계자만 참석하는 회의인 만큼 이 대통령의 발언은 회의 참석자를 통해 전화로 춘추관까지 전달됐다.

    오후 6시 5분 홍상표 홍보수석이 마이크를 잡고 정부의 공식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홍 수석은 앞서 관계자를 통해 나온 이 대통령의 발언 모두를 정정한 뒤 "(대통령은) 초지일관 교전수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하라는 부분을 많이 강조했다. '확전이 안 되도록 관리하라'는 말은 와전된 것이고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 뒤 홍 수석과 김희정 대변인을 통해 공개된 이 대통령의 발언은 "몇 배로 응징하라", "(북한의 도발 조짐이 보이면) 타격하라", "책임은 정부가 진다. 군은 다른 생각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등의 강경 메시지였다.

    24일 이 대통령의 '확전 방지' 발언의 진위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여당 중진 의원은 공개회의에서 육두문자까지 써가며 청와대를 비판했고 참모진의 경질까지 요구했다. 이날 국회에 답변하러 간 김태영 국방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단호하지만 확전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최초의 지시가 있었다"고 말해 상황은 더 꼬였다.

    청와대 관계자가 실시간으로 전한 이 대통령의 발언을 "와전된 것"이라며 모두 정정한 홍 수석은 이날 다시 마이크를 잡고 "회의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서로 오고가는 과정에서 그런 발언이 야기된 것이지 (확전 방지 발언은) 결단코 이 대통령이 한 말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결단코 아니라고 하니 이 대통령이 '확전 방지' 지시는 하지 않은 것으로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의 초기 대응 태도를 비판했던 청와대가 전시상황에서 군 통수권자의 발언을 와전시킨 데 대한 문제는 짚어봐야 한다.

    "국민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노리는 세력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자세로 임할 때 국민이 군을 신뢰한다"는 이 대통령의 당부처럼 전시상황에서 군 통수권자의 지시 역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이를 잘못 전달한 청와대의 실수를 덮고 갈 경우 국민이 청와대를 신뢰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