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전문가들이 모스크바에서 있은 한반도 사태에 대한 라운드 테이블 토론회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는 이런 대목이 들어있다. “천안함 사태로 야기된 위기는 상당부분 미국의 지원을 받는 한국 정부가 북한의 고립과 체제 약화, 최종적으로는 ‘항복’을 유도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유례없는 압력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등 일련의 의도적 조치를 취한 결과다”  

     A B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A가 갑자기 규칙을 어기고 B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반칙이었다. A는 당연히 B에 반발했다. 정당방위였다. 그러나 A는 때린 사실조차 부인하고 있다. A와 B 사이엔 자연히 긴장과 갈등이 높아졌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이 A의 반칙을 나무랐다. B가 고립무원이 되었다. 그러자 러시아란 나라가 논평했다. “이 위기는 상당부분 B가 A를 몰아세운 결과다.”  

     최초의 원인인 A의 가해행위는 시침 뚝 떼고 가려둔 채, B의 정당방위가 마치 최초의 가해행위였다는 식의 궤변인 셈이다. 이게 중국과 러시아가 군사 강대국이면서도 지성적인 측면에서는 아직도 선진 문명국이라 하기엔 턱도 없는 근본 이유 중 하나다. 러시아와 중국은 여전히 억지의 나라, 막무가내의 나라, 근대 계몽주의 이전의 나라, 객관적 사실과 진실도 불리하면 잡아떼는 '무지막지‘ 속성을 온존 시키고 있다. 오랜 동안 세포 구석구석에 스며든 전체주의의, 강권주의, 몽매주의, 패권주의의 체질은 그렇게 쉽게 없어지는 게 아니란 이야기다.  

     “내가 언제 때렸어? 이것 봐요, 러시아 중국이여, 내가 쟤 때리는 것 봤소?” 하고 김정일이 물으니까 “때렸다는 증거도 불확실하고, 쟤가 안 때렸다고 하는데 한국 너희들 왜 자꾸 앙탈이냐? 너희가 그러니까 세상이 시끄럽지” 하는 식이다. “맞았어도 찍소리 말라”는 소리다. 문제의 보고서 자체가 "원인을 따질 때가 아니다..." 운운하고 있다. 그렇다면 2차 대전 때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한 원인도 '전쟁을 피하기 위해' 따지지 말았어야 했다 이건가? 그건 또 아니라고 하겠지? 자기들이 얻어맞으면 원인 따져 싸우고, 남이 얻어터졌을 때는 입닥치고 앉아 있어라? 

     

     러시아 중국, 자기들이 우리처럼 맞았으면 어떻게 나왔을까? 가만 있었을까? 가만 있기는 고사하고 아마 3차 대전이라도 일으킬 기세로 지랄발광들을 했을 것이다. 중국은 지금 일본이 첨각열도에 들어온 중국인 선장을 나포해 갔다고 해서 온동네가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 러시아 식으로 말해 볼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지역의 평화다. 중국은 그 지역 평화가 깨지지 않기 위해 일본을 너무 몰아세우지 말아야 한다.” 어때, 약올라? 

    <류근일 /본사고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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