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에는 어머니와 민화, 그리고 수원에 사는 큰 이모까지 와계셨는데 정기철의 모습을 보더니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

    병원 영안실 밖이다. 말없이 다가선 정기철에게 어머니 김선옥이 흐느끼며 말했다.
    「어제 저녁에 목을 매었단다.」

    그럼 그때는 오연희와 소주를 마시고 있을 때인 것 같다고 정기철이 계산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발견한 때가 오늘 오후 5시경이었으니 거의 만 하루를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아이구, 불쌍해서 어쩌끄나.」
    하고 큰 이모가 소리 내어 울었지만 실감은 나지 않았다. 큰 이모는 아버지 정수용이 무능한 인간이라고 싫어했으니까.

    반대로 소리죽여 우는 여동생 민화가 가여웠다. 아버지를 놔두고 집을 나간 죄책감에 빠져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
    하면서 어머니가 정기철에게 내민 봉투는 어제 정수용에게 준 돈 봉투다.

    「네가 아빠한테 드렸니?」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김선옥이 물었으므로 정기철은 머리만 끄덕였다. 구겨진 봉투 안을 보았더니 돈은 그대로 있다.

    정기철이 김선옥에게 물었다.
    「다른건 없어?」

    유서 같은건 없냐고 물은 것인데 김선옥은 정신없어서 못 알아 들었다.
    「뭐가?」
    「다른거.」
    「없어. 아무것도.」

    그때서야 말뜻을 안 김선옥이 이제는 터뜨리듯 운다.
    「아이고, 무정한 사람.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가다니. 아이고.」

    예감이란게 있는가 보다.
    왠지 찜찜한 느낌이 든 김선옥이 정수용에게 전화를 했지만 열 번이 넘도록 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 찾아와 봤더니 정수용이 주방 위쪽 가스관에다 나이론 줄로 목을 매고 늘어져 있더라는 것이다.

    그때 영안실에서 직원이 나오더니 입관 준비가 되었다고 알려왔다. 그래서 정기철은 어머니와 둘이 영안실로 들어갔다. 영안실에 누운 정수용은 편히 잠이 든 것 같았다. 이제 고생은 끝났다는 표정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평안하게 보이는 얼굴을 본 순간 정기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버지가 목을 매게 만든 것은 자신인 것이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렸다.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게 만든 것이다.

    「아버지.」
    정기철이 갑자기 정수용의 차가운 상반신을 부등켜안았다.
    「아버지,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소리친 정기철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어머니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흐느껴 운다.

    「아버지, 용서해주세요.」
    몸부림을 치면서 정수용의 시신을 안고 울던 정기철이 이윽고 몸을 세웠다.

    그동안 기다리고 있던 경조회사 직원들이 정수용의 옷을 수의로 갈아입힌다.
    영안실을 나온 정기철은 곧 부대로 연락을 했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려면 휴가 기간이 이틀이 모자란다.

    통화 연결이 된 당직 장교가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곧 중대장을 바꿔주었다. 중대장은 영안실 위치를 묻고 나서 휴가 기간을 열흘 더 연장해 주었다.

    「내가 아빠한테 사라지라고 했어.」
    빈 영안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정기철이 옆에 앉은 정민화에게 말했다.
    「우리 그만 괴롭히고 사라지라고 했더니 진짜 사라졌네.」
    그러자 정민화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또 울었다.

    벽시계가 밤 11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