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회담을 위해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클린턴 美국무장관과 게이츠 美국방장관.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며칠씩 머무르는 건 유래가 없는 일이다. 천안함 사태와 이후 불거진 중국의 견제, 북한의 협박이 원인이라 해도 이런 일정은 지금까지 우리 정부로써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국방부 “이렇게 오래 머무는 것 자체가 메시지”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이렇게 오래 머무는 것 자체가 일종의 대북 메시지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나흘 동안 한국에 머물며 판문점과 다양한 곳을 둘러보고, 천안함 전사자와 호국영령들에 참배하는 행사를 가진 것이 그동안 미국 국방장관들의 한국 내 동선(動線)과는 다른데 이들의 동선과 일정을 유심히 살펴볼 중국과 북한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두 장관의 일정을 보면 지금까지의 방한일정과는 차이가 있다. 게이츠 美국방장관의 경우 19일 저녁 방한을 시작으로 20일 오전 캠프 케이시 방문, 오후에는 김태영 국방장관과의 대담, 21일 오전에는 JSA 방문, 오후에는 2+2 회담 참석, 저녁에는 청와대 주최 만찬 참석 등으로 빠듯하게 이어졌다.

    클린턴 美국무장관의 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21일 오전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한 클린턴 장관은 게이츠 장관과 일부일정을 함께 했다. 21일 오후에는 호국영령에 대한 참배, 환영 의장행사를 한 뒤 곧바로 2+2회담장으로 이동했다. 클린턴 장관은 22일 오전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참석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로 출국했다.

    대통령 유고 시 업무 대행 서열 중 4위와 6위인 장관이 이렇게 동시에 우리나라를 방문, 며칠 씩 머무르고, 일정 중 JSA와 GP 등을 방문해 메시지를 전하며, 대북제재와 한미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발표한 것은 지난 15년 동안 흐트러졌던 한미 동맹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제스처로도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두 장관의 방한, 중국-북한의 침묵

    이런 美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의 방한과 활동을 그저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만 믿는 이는 드물다. 천안함 사태 이후 남북한과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보여준 일련의 활동까지 생각하면, 두 장관의 전례 없는 방한 일정은 북한과 그를 감싸면서 한미연합훈련을 줄기차게 반대했던 중국에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 중국은 지금까지 국영방송인 CCTV가 지분을 갖고 있는 홍콩 봉황위성TV를 통해 한미연합훈련에 반대하는 중국 공산당 정부와 인민해방군의 주장을 다섯 차례 보도했고, 지난 6월 4일에는 ‘러시아 조사단이 천안함 사태가 북한의 짓이라고 결론내린 한국 합동조사단의 조사에 의문을 갖고 있다’고 보도, 여론을 뒤흔들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중국도 미국의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전례 없는 일정으로 방한한 것에 대해서는 별 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지난 7월 4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와 필리핀의 수빅만, 한국의 부산에 세 척의 오하이오급 잠수함이 부상한 것에 대해 보도했음에도 중국 당국이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과 흡사해 보인다.

    북한 또한 마찬가지다. 그동안 남한 측을 향해 온갖 협박을 해대고, 한미연합훈련을 ‘침공연습’이라며 맹비난하던 것과는 달리 두 장관의 방한에 대해서는 쥐죽은 듯 조용하다. 심지어 클린턴 국무장관과 크롤리 차관보가 강도 높은 대북제재안을 발표했음에도 지금까지 별 다른 발언이 없다. 마치 2005년 6월 F-117 전투기 15대가 김정일이 머물러 있던 특각 상공에서 각종 훈련을 실시했음에도 아무 일 없었던 척 침묵을 지킨 것과 유사하다.

    한반도 주변, 아무 일 없을까

    이런 중국-북한의 갑작스런 침묵에 정작 불안해하는 건 우리나라다. 그동안 떠들어대던 자들이 갑자기 조용해지고, 차기 美국가정보국장(DNI) 지명자가 ‘북한이 남한을 직접 공격하는 위험한 시기’라고 언급한 것이 보도되면서 혹시 북한 정권이 새로운 도발을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우려는 천안함 사태 이후 미국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지난 5월 멀린 美합참의장은 <폭스 뉴스 선데이>에 출연, “지금까지 김정일의 행동 패턴을 볼 때 도발이 단발성이었던 경우가 거의 없다”며 연내 추가도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에드윈 뮬러 美헤리티지 재단 이사장 또한 비슷한 시기에 북한 정권의 연내 추가도발 가능성을 제기했다. 국방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도 이와 유사한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는 현재 한미 정상의 결단으로 상당 부분 해소된 상태다. 오는 25일부터 실시되는 한미연합해상훈련에 항공모함 전투단은 물론 각종 대잠초계전력, F-22 스텔스 전투기까지 참가한다는 소식에 북한은 침묵만 지키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북한이 지금 너무 조용한데 자신들의 자존심도 세우고 내부 결속을 위해 조만간 위협적 발언 정도만 내놓지 않겠느냐”고 내다보고 있다.

    이제는 오히려 중국의 반발이 더 우려된다. 항공모함 전투단과 스텔스 전투기의 훈련 참가로 중국 당국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위협적인 정부 성명을 내놓는 것은 물론 각종 언론을 통해서도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내용 또한 마치 한반도를 자기네 앞마당 정도로 여기는 수준이다. 이런 태도를 보이는 중국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무역이나 인력교류 부문에서 압박을 가한다면 한반도 정세는 한-미 對 중-북이라는 대결구도로 비화될 위험을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