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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창녕군 도천면 우강리, 길곡면 오호리 마을은 함안보 건설현장에서 상류방향으로 20km 가량 떨어진 농촌이다. 강둑부터 3킬로 정도 둥글게 야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같은 지형 탓인지 가만히 서 있어도 습식사우나처럼 땀이 쏟아졌다. 차도 아래로 푹 꺼진 논들은 더 깊어보였다.
    “80mm만 오면 온동네가 비상이에요. 농사일보다 비 치다꺼리가 힘들어요”
    마을 이장 김종택(55) 씨는 비 이야기가 나오자 기다렸다는듯 열변을 토했다.

  • ▲ 2006년 호우로 침수된 경남 창녕군 적포교 인근 마을. ⓒ 뉴데일리
    ▲ 2006년 호우로 침수된 경남 창녕군 적포교 인근 마을. ⓒ 뉴데일리

    이장이 전해준 주민들의 침수 피해는 밖에서 TV화면으로만 보고 상상하던 내용과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태풍 매미, 루사 때는 전국에 큰비가 왔으니 누구나 그러려니 했지요. 그렇지만 60~80mm 비에 침수되는 것 이해가 갑니까?” 열변은 울분으로 변해갔다.

    비가 오면 우선 농업수로가 넘친다. 스멀스멀 논으로 기어올라 오는 흙탕물을 빼내려 양,배수기를 가동시켜도 소용없다. 비 올 때 농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다. 20시간 이내에 물이 빠지면 그래도 한해 농사를 계속 할 수 있지만, 20시간이 넘으면 그 벼는 못쓴다. 모내기를 다시 하거나 논을 갈아엎고 양파나 다른 작물을 심는다.

    비가 오면 침수피해만 보는 게 아니다.
    “물이 모여들면 어디 있었는지 온갖 쓰레기가 다 모여요. 물이 빠져도 농작물이 쓰레기를 뒤집어쓰고 있으면, 농사는 끝입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빗소리가 굵어지면 장대로 만든 도구를 들고 논으로 달려간다고 한다. 논 위에 쌓인 쓰레기를 조심스럽게 걷어서 한 곳으로 모은다. 물이 빠지면 쓰러진 농작물을 일으켜 세운다. 이게 농삿일보다 더 큰 연중행사다. 매년 여름 한 달에 두세 차례씩이나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은 강보다 농경지가 저지대에 있는 탓이다.

    낙동강변 농지와 마을은 이렇듯 토성처럼 우뚝 버티고 선 제방을 사이에 두고 강과 마주하고 있다. 그러니 비가 오면 제방 안, 즉 강 바깥의 물은 자연배수가 안돼 배수 펌프장에 의존해야한다. 매일 내리는 비도 아닌데, 배수펌프장을 무작정 늘려달라고도 할 수 없다.

    설사 펌프 시설을 증설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태풍 매미가 왔을 때 전봇대가 넘어져 4일간 마을 전체 전기가 끊겼어요. 전기가 나가면 펌프도 고철덩어리입니다” 정전되면 생활도 엉망이 된다고 했다. 비는 농작물 침수피해만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문명의 이기를 모두 앗아간다. 물이 빠지고 나면 한전, 농어촌공사, 농민은 책임을 둘러싸고 지루한 입씨름이 이어진다.

    침수피해만큼 큰 걱정은 농업용수 부족.

    “가뭄이 들면 양수기가 있어도 강에서 물을 끌어올 수가 없어요. 비가 올 때는 제방을 넘칠 듯하지만 며칠 뒷면 물이 좍 빠져버려요. 강바닥이 깊었으면 물이 남아있을텐데...” 김종택씨는 가뭄 때 이야기를 하며 한숨을 지었다.

    농어촌공사 창녕지사 김태성 차장도 “가뭄이 들 때 양수기로 강에 취입양수장을 마련해 물을 퍼 올려야 하는데 어느 정도 깊이가 돼야  취수 호스를 넣을 수 있어요. 물이 마르면 취입양수장을 찾을 수도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장 김종택씨와 김태성 차장은 “가뭄때 물을 퍼 올리기 위해서나, 비올 때 배수를 위해서 강바닥을 가능하면 더 많이 파내야한다”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 ▲ 경남 창녕군 주민들. 왼쪽부터 전자제품점을 운영하는 강영숙씨, 농사를짓는 조금순씨, 식당을 하는 강봉희 씨. ⓒ 뉴데일리
    ▲ 경남 창녕군 주민들. 왼쪽부터 전자제품점을 운영하는 강영숙씨, 농사를짓는 조금순씨, 식당을 하는 강봉희 씨. ⓒ 뉴데일리

    함안보와 합천보 사이 창녕군 이방면 주민들도 비슷한 난리를 겪는다.
    창녕군 이방면 동산리에서 농사를 짓는 조금순 씨(50)은 몇년 전까지 장마철이 되면 매달 세 번씩은 양동이를 들고 친척집으로 출동했다.

    “수년 전 상습침수 마을을 정부에서 고지대로 이주시키기 전까지 시큰아버지댁이 낙동강 제방 바로 아래 있었어요. 간밤에 비가 큰비가 내렸다 하면 늘 지붕까지 물이 차올라 주변에 사는 친척들은 부르지 않아도 모두 달려가 물을 퍼내고 가재도구를 챙기는 게 일이었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재래식 화장실이 넘쳐, 안방까지 똥물에 잠긴 집안 모습을 상상해보세요”라며 진저리를 쳤다.

    거남리에서 전자제품가게를 하는 강영숙 씨(50)도 “우리집은 다행히 고지대여서 비 피해가 적었다”면서도, “친척들은 대부분 비싼 물건 옷가지를 절대 안 사고, 중요한 물건은 비닐봉지에 담아 벽에 매달아두고 풀지도 않고 산다”고 전해줬다. 그러면서 “4대강 사업 반대하는 사람들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며 혀를 찼다.

  • ▲ 영산강뱃길연구소장 김창원 씨. ⓒ 뉴데일리
    ▲ 영산강뱃길연구소장 김창원 씨. ⓒ 뉴데일리

    영산강의 경우는 더 아찔했다. 승촌보 건설현장 근처서 만난 주민 김창원 씨(58,영산강뱃길연구소장), 안국현 씨(55, 식당업), 양치권 씨(61,영산강뱃길복원추진위원회 회장) 강건희 씨(61,식당업) 벼농사와 미나리재배를 하는 나문식(65) 씨 등은 수해 이야기가 나오자 앞다퉈 1989년의 악몽의 기억을 떠올렸다.

    “영산포는 옛날 포구가 있을 때 아주 번화한 중심가였어요. 89년 7월 25일 갑자기 내린 비로 둑이 터져 잠겨 주민 15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새벽 한시에 갑자기 내린 비로 일순간에 물지옥이 된거죠.”
    이들은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며 그날의 몸서리쳐지는 순간을 이구동성으로 전했다.

    이곳의 지형은 이렇다. 영산대교를 두고 우안은 영강동, 좌안은 이창동,영산동이다. 이창동,영산동 지역엔 콘크리트 옹벽위로 도로와 마을,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근처에 1915년 세워진 유일한 내륙 등대인 영산포 등대도 있다. 건너편은 흙제방이다. 호우로 무너졌던 흙제방은 제방 보강공사 후 왕복 6차로 도로가 지난다.

  • ▲ 영산강가에서 식당을 하는 강건희 씨. ⓒ 뉴데일리
    ▲ 영산강가에서 식당을 하는 강건희 씨. ⓒ 뉴데일리

    주민들이 전하는 수해 기억은 참혹했다.
    당시 이창동 쪽 시멘트 옹벽은 흙 제방보다 낮았다. 건너편의 낮은 시멘트 옹벽이 넘치지 않자 높은 흙제방 너머 영강동 일대에 살던 주민들은 불안했지만 안심하고 늦은 잠을 청했다. 그러다 새벽1시 넘어 갑자기 쏟아진 비로 제방이 무너지면서 변을 당한 것이다.

    나문식 씨는 제방이 무너지는 아찔한 순간의 목격담을 털어놨다.
    나 씨의 기억에 따르면, 아무래도 불안해 둑에 올라 강물을 보고 있는데 주변 청년들이 “둑이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아요?”했다. ‘정말 땅이 흔들거리네’ 생각하는 순간 눈앞 둑 중간에서 갑자기 물총처럼 흙을 토하며 물기둥이 솟구쳤다.
    물기둥이 더 굵어지더니 순식간에 뚝 위가 주저앉았다. ‘봇물터진듯 하다’는 말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이었다.

  • ▲ 영산강 영산포 근처에서 홍어전문점을 운영하는 안국현 씨. ⓒ 뉴데일리
    ▲ 영산강 영산포 근처에서 홍어전문점을 운영하는 안국현 씨. ⓒ 뉴데일리

    “아슬아슬하게 대피하고 뒤를 보니 어느새, 둑 안팎의 물높이가 같아지고, 둑은 물속에 잠겨 보이지도 않았어요. 대피하라는 말도 할 수 없는 순간이었어요.”

    나주시가 1990년 발간한 ‘영산강수해’ 백서에 따르면 당시 영산강 제방 붕괴로 15명 사망, 2478세대 9695명의 이재민발생, 95개소의 공공시설물이 파괴됐다. 수산물창고업, 식당 등 이들의 지인들이 운영하던 10곳도 망했다고 했다.

    또 2004년 8월 태풍 ‘매기’가 이 지역을 강타했을 때도 나주시에서만 23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농경지 8600ha가 침수되는 등 670억여 원의 피해를 봤다. 최근 10년간 영산강 주변의 지자체가 당한 피해규모는 4700억여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주민들로서는 영산강 정비사업이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다.

  • ▲ 영산강 홍어 식당을 운영하는 양치권 씨(영산강뱃길복원추진위원회 회장) ⓒ 뉴데일리
    ▲ 영산강 홍어 식당을 운영하는 양치권 씨(영산강뱃길복원추진위원회 회장) ⓒ 뉴데일리

    “홍수는 천재지변이라 보상도 없어요. 예방 외에 대책이 없죠. 목숨도 재산도 왔다갔다하는 문제입니다. 반대하는 사람들 제정신이 아녜요. 물속의 벌레보다 우리 물가에 사는 사람 목숨이 하찮게 보는 사람들이에요.”

    이들은 수해로 피해보는 사람들은 소수이고, 밖에서 모르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많아 남의 세상 얘기하듯 한다며 여러차례 “사람 목숨보다 물속의 ‘벌레 목숨’이 중요하냐”, “갈대숲이 중요하냐”고 목소리를 높이며 4대강 반대자들을 원망했다.  “반대하는 지자체장이나, 이른바 환경단체가 역사와 인간에 죄짓지 말라”고 거듭 경고했다.

    곧 장마철이다. 낙동강이나, 영산강 주변 주민들 모두 장마철만 되면 태풍의 ‘태’자만 나와도 그날의 악몽에 몸서리쳐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