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부터 까마귀가 울었다. 그건 분명 까마귀였다. 까치가 아니었다.

    까마귀 울음소리가 거슬려 이 놈이 어디서 울고 있나 굳이 찾았다.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는 전선줄의 한 귀퉁이에 앉아 울고 있었다. 그 옆에 한 삼 사 십여 센티쯤 떨어져 까치도 한 마리 앉아 있었다. 그러나 까치는 울지 않았다. 우는 것은 까마귀 뿐이었다.

    아니면, 까치는 울고 있는데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워낙에 크고 지랄 맞아 까치의 울음소리는 그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 걸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크고 높고 지랄 맞은 까마귀 울음소리에 까치가 질려 꿀먹은 벙어리마냥 소리를 못내고 있다는 게 정답일 듯 했다.

    요즈음은 가끔 마을에서 까마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까마귀는 산 속 깊숙한 곳에서 사는 새라고 알고 있는데, 마을에서 그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 형상도 보게 된다는 것은 좀 기이했다. 까마귀의 성향이 변한 건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하는 것이었다. 요즈음 기후변화가 심각하다고 하던데, 그 영향을 받아 까마귀의 성향도 변한 게 아닌가 싶다는 것이었다.

    아침부터 까마귀가 울면 좋은 일일지 나쁜 일일지, 헷깔렸다. 까치가 울면 좋은 일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속설에도 나오는 얘기고, 사람들 누구나 그렇게 믿고 생각하고 있는 거니까.

    하지만 아침부터 까마귀가 까악까악 하고 울어대는 데에 대해서는 속설은 없었고, 전해오는 믿음도 없었다. 왜 아침부터 까악까악 하고 울어대는 까마귀에 대해서는 아무 속설이 없는 건지 답답할 노릇이었다.

    까마귀가 불길한 새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던가. 불길한 새가 아침부터 나타나 까악까악 하고 울어대니 기분이 나빠지고, 그래서 이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언급하지 않은 까닭인가.

    그럴 만 했다. 까마귀는 아무래도 사람과 친숙한 새는 아니었다. 멀리 산골 깊숙이에 사니 사람과 마주칠 기회가 많지 않고, 그 색깔도 흉할 정도로 까마니 사람들이 좋게 보았을 리 없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새의 이름을 까마귀라고 지었겠는가. 까맣다는 것도 그렇고 귀 라고 하는 자도 그렇고 결코 호의적인 명칭으로는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침부터 까마귀가 마을에 나타나 까악까악 울어대는 것은 결코 좋은 조짐일 리 없었다. 좋은 조짐이 아니라면, 나쁜 조짐이었다. 옆에 앉아있는 까치는 울지 않고 까마귀만 울어댄다는 것도 그랬다. 좋은 조짐이라면 좋은 조짐을 알린다고 하는 까치도 함께 울어대야지 까마귀만 울어댄다는 것은, 나쁜 조짐이었다.

    성규는 아침부터 전선줄 위에 앉아 울어대고 있는 까마귀의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좀 다운됐다. 놈이 참 지랄 맞게도 운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성규는 곧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마음 속에서 털어버렸다. 그게 나쁜 조짐이라 하더라도 더 이상의 나쁜 일은 자신에게 일어날 수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나쁜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건 그가 겪었던 나쁜 일들에 비교하면 별로 나쁠 것도 없는 일이리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규는 나쁜 일은 북한에서, 중국에서 신물이 날 정도로 다 경험했다는 생각이었다. 신물이 날 정도로 다 경험한 일이었으므로, 새삼스럽게 나쁜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북한으로 다시 끌려가는 일이 생긴다면 새삼스러운 나쁜 일이겠지만, 그렇더라도 예전의 그 나쁜 일과 같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세상을 보았고, 살기 위해서 무엇과 싸워야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들어오는데 성공하면서 성규는 덤의 인생을 얻게 된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자신은 북한이나 중국에서 아니면 베트남에서 진작에 죽었어야 할 인생인데,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누군가 살아야 할 인생을 대신 살도록 허여받은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성규는 더 열심히 살아야하고, 그래야 한다고 굳게 마음먹었었다.

    아침부터 불길한 까마귀가 마을로 내려와 까악까악 울어댄다고 해서 대수로울 게 없는 일이었다. 나쁜 조짐이라 하더라도, 새삼스러울 게 없는 일이었다. 나쁜 일은 성규에게 익숙한 일이었고, 어쩌면 일상이었다.

    오늘은 한가한 날이었다. 월요일이었으니까.

    어제 그제는 몹시 바빴다. 주말에야 늘상 바쁜 거지만, 어제 그제는 유난히 더 바빴다. 아이들의 방학과 어른들의 휴가철이 겹쳐져서였을 거였다. 어머니 누이동생들과 함께 음식점과 펜션을 운영하지만 이런 날은 가외로 아줌마 한 둘을 더 써야 했다. 그래도 일손이 딸린다는 느낌이 있을 때가 있었다.

    어머니나 누이동생들은 이런 일에 서툴렀다. 처음 해 보는 일이어서기도 하지만, 북한에서 온 지 얼마 안 되고 적응이 잘 안 된 탓이었다. 가외로 아줌마 한 둘 더 쓰는 것은 인건비를 감안하면 사실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하는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 성규는 일찌감치 조종천으로 낚시를 나가기로 했다. 조종천은 그의 음식점 앞으로 흐르는 냇물이었는데, 물이 맑아 고기가 적잖았고 북한강과 연결되고 있었다. 성규는 그제 쳐놓은 그물을 살펴보고, 잡힌 물고기를 양동이에 담고, 그물을 새로 쳐놓아야 했다.

    잡은 물고기는 대체로 매운탕을 끓여 성규 자신이 소화했다. 때때로 어머니 누이동생들과 함께 하기도 하지만, 웬일인지 어머니나 누이동생들은 별로 매운탕을 달겨하지 않았다. 손님용으로 판매하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잡은 물고기들이 잡고기이거나 피래미들에 가까워서, 판매용으로 내놓을 수 없었던 탓이었다.

    이틀 동안 물고기는 꽤 그물에 잡혀 있었다. 팔뚝만한 메기도 눈에 띄었지만, 대체로는 잡고기와 피래미들이었다.

    성규는 그물을 걷어 잡은 물고기를 가지고 간 양동이에 집어넣으면서, 그제 바쁜 와중에 가게 전화로 걸려온 전화를 떠올렸다.

    남자였다. 굵직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였는데, 추궁하듯, 다짜고짜 물어왔었다. 박민주씨를 아느냐고.

    다짜고짜 박민주씨를 아느냐고 물어오는데, 박민주라는 이름 때문에 정신이 없어지고 말았다. 당신 누구냐고 묻지도 못했다.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기만 했다. 남자가 물어오는 박민주씨가 누구인지 솔직히 감이 안잡히지만, 그러나 박민주라는 이름과 더불어 한 사람 떠오르는 인물이 있긴 했다. 자신과 중국에서 만나 사랑했고, 베트남까지 함께 탈출했던 여자, 그녀였다. 성규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고, 당신이 말하는 박민주씨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박민주씨가 한 명 있긴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남자가 다시 물었다. 베트남에서 헤어진 박민주씨 말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성규는 숨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수화기를 잡은 손이 떨려왔고, 잊고 있었던 베트남에서의 과거가 한순간 휙 하고 그의 뇌리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네 압니다만."
    "그럼 당신이 그 나성규씨가 맞는 거네요. 한참 찾아 헤맸잖아요."
    "?……"

    그리고는 또 무슨 말이 있길 바라는데, 남자는 거기서 그만 전화를 끊어버렸다. 참 예의없는 사람이었다.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와서는 박민주씨를 아느냐고 물어오고, 안다고 대답하자 또 뜬금없이 전화를 끊었던 것이었다. 그럼 당신이 그 나성규씨가 맞는 거네 하면서.

    성규는 묻고 싶었다. 왜 이런 전화를 했고, 당신은 누구고, 왜 박민주씨를 아느냐고 물어오는지. 그러나 남자는 그런 성규의 궁금증을 풀어줄 생각같은 건 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었다. 그런 궁금증을 풀어줄 의사같은 건 애초부터 그에게 있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이런 전화를 해서는 안 되었다. 그 때문에 성규는 그 바쁜 주말에 한동안 일을 손에 잡을 수 없었으니까. 영업에 지장을 주는 전화라면, 영업방해였다. 남자가 그런 의도를 갖고 전화를 건 건 아닌 듯 하지만, 결과적으로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올 때처럼 또 갈 때도 쏜살같이 사라져, 찾을 길이 없었다.

    성규는 한동안 일을 손에 잡을 수 없었고, 넋나간 사람 비슷이 되었다. 민주가 떠올라와서였다.

    민주는 베트남에서 죽었었다. 성규는 그런 줄로 알고 살아오고 있었다. 한국에 들어온 이후 쭉, 그랬다. 헌데, 민주한테 전화가 걸려왔었던 것이었다. 물론 전화를 건 것은 민주가 아니었다. 낯선 남자였다. 죽은 민주가 전화를 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성규는 그 전화를 받고 난 이후 한동안 그게 낯선 남자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아닌 민주로부터 걸려온 전화라는 착각에 빠져들어 있었다. 민주가 아득히 먼 저 곳에서 낯선 남자를 통해 그에게로 걸어온 전화....

    그물을 다시 치고 담배 한 대를 피웠다. 조종천 가에서 좀 놀며 시간을 보내다가, 정오쯤 해서 성규는 잡은 물고기가 담긴 양동이를 들고 음식점으로 돌아왔다.

    술생각이 있었다. 잡은 물고기를 매운탕을 끓여 술 한 잔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민주 생각 때문이었다. 민주 생각이 나면 술 한 잔 안 하고는 날을 베겨내기가 힘들었었다. 낯선 남자의 전화를 받고 난 어제 오늘은, 더욱 그랬다.

    음식점에 당도했을 때였다. 음식점 마당에 마련해놓은 등없는 벤치에 여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성규는 손님이려니 했다. 가끔 손님이 없으리라 기대되는 날 예기치 않은 손님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었다.

    성규가 음식점 마당으로 들어오는 걸 본 여자가 벤치에서 일어섰고, 성규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절뚝거리면서. 여자는 심하게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렸는데, 불구자라는 느낌이었다.

    성규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여자가 안쓰러웠다. 그리고 또 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건지도 의심스러웠다. 스쳐지나가는 거겠지, 하고 성규는 생각했다. 자신은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려 하고, 여자는 나가려 하고. 손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여자는 성규를 지나치지 않았다. 여자는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로 정확히 성규를 향해 다가왔고, 그리고 성규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섰다.

    여자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성규는 여자가 낯익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결코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고,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여자에게 낯선 구석이 있다면 심하게 절뚝거리는 오른쪽 발 뿐이었다. 그걸 제외하면 여자는 모든 게 낯익었다.

    여자가 그의 앞에 와서 절뚝걸이는 걸음을 멈추고 섰을 때, 성규는 여자가 누구라는 걸 알아챘다. 아니, 여자가 그의 앞에 와서 서기 훨씬 전에 이미 성규는 여자가 누구라는 걸 알았다. 벤치에 앉아있는 여자를 보았을 때부터.

    민주였다. 민주가 심하게 오른발을 절뚝거리면서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성규와 오르그뜨를 집으로 내려보낸 뒤 나는 고시원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만이는 자신의 IT 사업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내 차를 다시 와이프에게 넘기고, 성규가 어떻게 오르그뜨를 되찾게 되었는가를 거의 하루 낮 밤에 걸쳐 들려주었다. 와이프는 몹시 흥미로워했고, 믿기지 않는 얘기라고도 했는데, 그러나 결코 잘 된 일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소설을 썼다. 쓰기로 마음먹었던 탈북자 소설이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썼다. 본문은 쓰지 않았다. 쓰지 못했다. 본문은 미래를 기약했다. 본문은 온전히 여백으로 남겨두었는데, 그 여백이 언제 채워질지는 솔직히 나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