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태화강변 유채꽃밭을 거니는 울산 시민들 ⓒ 뉴데일리
    ▲ 태화강변 유채꽃밭을 거니는 울산 시민들 ⓒ 뉴데일리

    "5~6년 전만 해도 강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창문도 못 열고 살았어요. 지금요? 여기가 천국인가 싶네요."

    13일 오전 울산시 태화강 십리대밭교 부근을 산책하던 주민 한정숙(54)씨는 과거는 떠올리기도 싫다는 표정이었다. 이슬비가 내리는 속에서 걷기운동을 나온 그녀의 차림은 비에 젖어 더 선명해 보이는 태화강의 푸른 물결처럼 상큼했다.

  • ▲ 태화강 ⓒ 뉴데일리
    ▲ 태화강 ⓒ 뉴데일리

    "아침, 저녁으로 강변을 따라 산책하는 게 운동이지요. 애 아빠는 주말마다 애들하고 여기서 자전거를 탑니다. 공놀이를 할 때도 있고요."

    한 씨의 집은 울산광역시 남구 신정1동 '강변 아드리아'.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로 집에서 천천히 걸어도 5분이면 태화강 둔치에 이를 수 있다. 한 씨는 "안 믿으시겠지만 태화강 정비 전에는 강변 아파트가 다른 아파트보다 값이 훨씬 쌌었다"며 웃었다. 울산에서는 '리버뷰'나 '리버사이드'가 더 쌌었다는 얘기다.

    한국의 '산업수도'라고도 불리는 울산. 시내, 외곽을 빼곡하게 둘러싼 각종 중화학 공장들은 우리나라의 산업화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태화강에겐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다. 70년대 이후 정화조를 거치지 않고 밀려든 공장 폐수와 생활오수는 태화강을 '죽음의 강'으로 만들었다.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공업용수로 공급되던 맑은 강물은 검붉은 물로 죽음의 긴 기름띠를 두르고 있었다. 바로 얼마 전인 1990년대 중반의 태화강 모습이었다.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백운산 계곡에서 발원해 미호천(嵋湖川)이라고도 불리는 태화강의 길이는 48.5㎞. 강물은 울산시 남구와 중구를 가로지른다. 금모래 아름다웠던 태화강은 울산 시민들의 젖줄이나 진 배 없었다. 

    태화강 살리기에 지자체와 시민, 정부가 함께 팔을 걷어붙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5년까지 태화강 살리기에 하나가 됐다. 오염 원인을 12개 단위로 분류해 차단해 나갔고 폐수 배출의 '주범'격인 산업체들도 적극 이 뜻에 동참해줬다. 15년 동안 가정오수관 4만7000여 개를 설치해 하수처리장으로 연결, 생활폐수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공장폐수를 처리하는 정수장을 만들고 강 바닥에 몇십년 쌓인 오니(汚泥·더러운 흙)를 준설사업을 통해 제거해 나갔다.

  • ▲ 태화강변을 따라 이어진 둔치에서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 ⓒ 뉴데일리
    ▲ 태화강변을 따라 이어진 둔치에서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 ⓒ 뉴데일리

     "지난 10년 동안 시민들이 태화강 살리기에 거의 미쳤었어요. 길 가다가 남이 음식물 찌꺼기라도 강변에 버리는 모습을 보면 달려가 야단을 치고 그랬어요. 아까 강변 산책로 보셨죠? 쓰레기 한 점 없잖아요?"

    울산에서 30년째 택시 기사로 일하는 김희창 씨는 "태화강에 대한 울산 시민의 사랑과 긍지는 남다르다"고 말했다. "생각해보세요. 대도시에서 이만큼 강과 밀접하게 사는 곳이 우리나라에 어디 또 있습니까? 자연과 같이 살 때가 사람은 가장 행복한 겁니다."

    김씨의 딸은 경북 구미로 출가했다. "딸이 전화할 때마다 말해요. 태화강만한 강 없다고. 낙동강은 너무 오염이 심하다고 하네요." 그는 "낙동강이 길이가 태화강보다 훨씬 길지만 잘 살려놓으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텐데 왜 가타부타 말이 많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연 그대로 두자고 합니다'라고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얘기하자 김씨의 억양이 높아졌다. "다 죽어 가는데 손 붙들고 있자는 말입니까? 듣자니 바닥을 준설하면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소리들 하는데 그거 다 웃기는 소립니다."

    김씨는 그 자신이 태화강의 준설 작업을 지난 수년간 목격했다고 했다. "그동안 오폐수에 마구 버린 쓰레기로 얼마나 바닥이 오염됐겠습니까? 준설해 놓으니까 말끔하잖아요? 생태계 파괴? 지금 태화강엔 연어가 돌아왔어요. 생태공원 쪽은 낚시를 못 하게 하니까 그렇지만 낚시할 수 있는 곳에 가면 별의별 물고기가 다 나와요. 생태계가 파괴됐다면 그 고기들은 어떻게 사는 겁니까?"

    울산시는 지난 2003년부터 2년간 강바닥의 쓰레기 퇴적물을 50여만t이나 긁어냈다. 시만 아니라 시민단체들도 나섰다. 물속 쓰레기 제거 작업은 울산환경협의회, 태화강시민환경감시대 등 15개 단체가 자원봉사를 했다. 기업체와 민간단체들도 '1사1하천 살리기 운동'에 동참해 둔치를 정화하고 꽃을 가꿨다. 5만여 평의 둔치에는 이제 철마다 다른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나 시민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2008년 현재 기업체 94곳과 민간단체 71곳 등 모두 165개 단체가 태화강의 곳곳을 자발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또 취수탑을 가동해 하루 3만t의 깨끗한 지하수를 강으로 흘려보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1990년대 말까지 특수처리를 하지 않으면 공업용수로도 쓰기 어려운 4~5급수였던 강물은 이제 수돗물로 사용이 가능한 1급수가 됐다. 게다가 갈수기에도 하루 4만t의 맑은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태화강 유지수 공급시설을 세워 강우량에 따라 태화강의 수량이며 수질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게 됐다.

    지금은 '십리대밭'이란 이름으로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관광명소로 받지만 태화강 중류의 대나무밭은 시민들이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장소로 악용되던 곳. 울산시는 쓰레기 투기장인 이곳에 기발한 역발상으로 숲공원을 만들었다.

    "공원으로 만드니 쓰레기 투기가 사라졌어요. 내가 산책을 하는 공간에 누가 쓰레기를 버리려고 하겠습니까?" 울산 남구청의 한 관계자는 "낙동강 등 4대강 살리기도 그렇게 추진되겠지만, 강변을 어떻게 조성하느냐에 따라 주민들의 삶의 질이 정신적, 경제적 달라진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 ▲ .태화강에서 주말을 맞아 요트 동호인들이 봄바람을 가르며 요트타기를 즐기고 있다. ⓒ 뉴데일리
    ▲ .태화강에서 주말을 맞아 요트 동호인들이 봄바람을 가르며 요트타기를 즐기고 있다. ⓒ 뉴데일리

    지난 2004년 12월 1단계 사업으로 조성된 십리대숲은 중구 태화동 십리대숲은 8만9139㎡. 2007년 시작되어 2010년 마무리될 2단계 사업은 166억원이 투입돼 20만2834㎡에 각종 친환경시설을 조성할 예정이다.

    태화강 전망대의 한 직원은 "대숲에서 음이온이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찾는 시민들이 많다"며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의 단체체험 장소로, 또는 각종 단체들이 행사장소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십리대숲엔 현재 대숲 체험로와 죽림욕장 등이 꾸며져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민들의 땀으로 태화강은 다시 살아났다. 한진규 울산시 환경정책과장은 "되살아난 태화강은 수질보다 고용창출 등 경제효과가 훨씬 컸다"고 말했다.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단지 건설만 덕을 보는 사업이 아닙니다. 또 공사 당시만의 단기적 효과도 아니고요. 태화강의 경우 건설만이 아니라 환경, 조경 등 거의 경제 전반의 다양한 업체들이 참가했습니다. 고용창출 역시 당시만 아니라 지금도 상당수의 인원들이 태화강에서 일자리를 얻고 있습니다."

    한 과장은 "강 살리기는 몇백 억원이 투자됐다면 몇십 조 원의 효과가 반드시 발생하는 엄청난 부가가치의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4대강 살리기의 경우 자전거길 등 친수공간을 많이 조성하고 강 주변 지역을 정비하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21일부터 태화강에서 열린 '울산 태화강 환경체험전' 참관차 울산을 찾은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 박진위 사무관은 "태화강을 보며 강이 사람의 삶의 질까지 바꿔준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단순한 치수를 떠나 강이 살아나니 시민들의 라이프 사이클이나 행동방식과 정신적 사고까지 변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애향심과 긍지도 높아진 것을 알 수 있고요." 박 사무관은 "물과 친한 삶의 소중함을 절감했다"고 덧붙였다.

    태화강은 어두운 과거를 딛고 울산의 랜드 마크(land mark)가 됐다. 이제 남은 것은 4대강이다. 이 4대강을 멋지게 살려내 21세기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로 만드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