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집권 2기 국정운영 기조로 '중도실용'과 '국민통합'을 내세우며 사회 개혁을 향한 '근원적 처방'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정치의 선진화 없이 나라의 선진화는 없다"는 전제 아래 선거제도 및 행정구역 개편 등 정치개혁의 구체적 방향을 제안했다. 이밖에도 친서민 정책 방향, 대북정책 등 국정 전반에 걸친 비전을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예고한 근원적 처방의 1차 종합판"이라며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처방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종합적인 국정운영 방향을 밝힌 만큼 이를 기점으로 강력한 민생·개혁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국민통합, 지역구도 타파를 역설한 점은 예정된 개각을 포함한 여권개편 구상과도 연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회 내에서의 정치개혁 논의를 공식 제안한 데 이어 당청간 거리를 더욱 좁히기 위한 시도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 ▲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64주년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 '광복의 빛, 더 큰 대한민국'이란 제목의 경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64주년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 '광복의 빛, 더 큰 대한민국'이란 제목의 경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대통령이 밝힌 정치 선진화의 요체는 '깨끗한 정치'와 '생산적 정치'다. 이 대통령은 "여러 번의 정치개혁을 통해 과거보다 깨끗해진 것이 사실"이라고 평가한 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고 역설했다. 지난 대선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불법 대선자금의 고리를 끊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누구로부터도 불법 자금을 받지 않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또 친인척 비리를 막기 위한 상시 감시체제 강화, 권력형 비리와 토착 비리 근절을 위한 적극적인 방안 마련을 다짐했다.

    선거제도, 행정구역 개편 제안…개헌론 포함, 정치권 논의 촉발될 듯 

    '생산적 정치'를 위해 이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선거제도와 행정구역 개편을 제시했다. 잦은 선거로 인해 국력이 소모되고 있으며 그럴 때마다 정치적으로 갈라진 우리 사회의 골이 깊어져 국정 운영에도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대통령은 "비생산적인 정치의 뿌리에는 지역주의 정치가 자리잡고 있으며 현행 선거제도로는 지역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작게 쪼개진 한 선거구에서 1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현재 구도로는 호남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영남에서 민주당 의원이 선출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타파하기 위해 2˜5명을 한꺼번에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의정 활동도 국정보다는 지역이 우선하게 되며 여기에 100년 전에 마련된 낡은 행정구역이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효율적인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 벽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정치개혁 문제를 강도 높게 언급한 것에 주목,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정치권에서의 논의가 본격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한 선거제도 개편과 개헌론으로 연결될 수 있는 선거횟수 축소를 언급한 것은 이 대통령의 정치개혁 구상이 단순한 '정치 카드'가 아닌 국가 미래를 위한 중장기적인 제언으로 받아들여 진다. 이 대통령은 "정치개혁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면서도 여야가 국민의 편에서 논의해주길 촉구했다.

    '중도실용의 길' 간다…"중도는  위민(爲民)의 국정철학, 실용은 방법론"

    중도 실용 노선을 둘러싼 논란을 이 대통령은 정리했다. 이 대통령은 "분열과 갈등을 뛰어넘어 화합과 구심력을 만들어내려면 중도 실용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도는 '국가발전이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위민(爲民)의 국정철학'으로, 실용은 '중도를 실현하는 방법론'으로 이 대통령은 규정했다.

    이 대통령은 "많은 비용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사소한 갈등도 완충지대가 없이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다"고 분석하면서도 이를 부정적 요소만으로 해석하지는 않았다. 이 대통령은 "갈등에서 나타나는 역동적인 힘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발전의 잠재력은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중도 실용의 길로 '녹색성장', 그리고 '따뜻한 자유주의'와 '성숙한 민주주의'를 천명했다. 이 대통령은 "따뜻한 자유주의의 필요조건이 윤리와 책임이라면 성숙한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은 법치"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분열과 갈등의 치유책으로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친서민·중산층 정책은 일관되게"…민생5대지표 개발, 연이은 서민정책 예상 

    중단없는 친서민·중산층 정책에 대한 의지도 확실함으로써 앞으로도 서민 정책이 연이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라는 정책 기조는 이명박 정부 내내 실천하고 대한민국이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못박았다. 이 대통령은 희망근로사업, 보육지원정책, 등록금 지원정책 등 각종 친서민정책을 설명한 뒤 "집 없는 서민들이 집을 가질 수 있는 획기적인 주택 정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소득, 고용, 교육, 주거, 안전 등 '민생 5대 지표' 개발 구상을 밝혔다. 사회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함께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또 신년 연설에서 밝힌 비상경제정부 운영을 평가하면서 "지금 한국 경제는 OECD에서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 긴장을 늦춰서는 안되며 고용과 투자, 그리고 내수가 살아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핵 포기시 한반도 새로운 평화구상 추진" 대화촉구 …북한측 호응은 불투명

    북한문제와 관련, 이 대통령은 북의 핵포기를 전제하면서 "북한이 그런 결심을 보여준다면 우리 정부는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을 추진할 것"이라며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국제협력 프로그램을 적극 실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 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고위급 회의 설치, 관련국 및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경제, 교육, 재정, 인프라, 생활향상 분야에 걸친 '대북 5대 개발 프로젝트' 추진 구상을 밝혔다. 또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남북간 재래식 무기 감축 논의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이 대통령의 일관된 대북메시지는 '대화'다. 이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언제, 어떠한 수준에서든 남북 간의 모든 문제에 대해 대화와 협력을 시작할 준비가 돼있음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알렸다. 그러나 '대북 퍼주기'와 같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부적절한 보상이 반복돼온 과거 정부 방식의 대북정책을 되풀이 않겠다는 원칙이 확고하다는 점에서 당장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분열하면 작아지고 통합하면 커진다…광복과 건국 함께 기념"

    경축사 서두에서 이 대통령은 "64년 전 오늘은 온 겨레가 하나 되는 날이었으며, 61년 전 오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나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음을 선언했다"면서 이날 행사를 "광복과 건국을 기념하는 자리"임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분열하면 작아지고 통합하면 커진다"면서 국민통합을 강조하는 것으로 연설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