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정훈 조선일보 사회정책부장 
    ▲ 박정훈 조선일보 사회정책부장 

    7년 전 쌍용차 '렉스턴'을 구입해 잘 타고 다녔던 나는 요즘 들어 내 선택을 후회하게 됐다.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업사태 때문이다.

    신문에서 읽었던 이 사건이 바로 내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안 것은 며칠 전이었다. 카센터 직원에게서 타이어를 교체하라는 말을 들은 순간 쌍용차가 문 닫을지 모른다는 뉴스를 떠올렸다. 단종(斷種)될 차량에 새 타이어값을 40만원이나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몹시 주저했다.

    중고차시장에선 쌍용차 차량 값이 폭락했다고 한다. 쌍용차의 파산 가능성이 가격에 반영된 결과다. 결국 소심한 나는 쌍용차가 망하지 않기를 바라게 됐다. 7년 된 고물차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이렇게 쌍용차문제에 '엮인' 이해관계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나의 사소한 사정은 아무것도 아니다. 쌍용차 주식을 보유한 소액 주주는 2만970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나날이 쪼그라드는 쌍용차 주가를 보며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지나 않을까 초조한 심정일 것이 틀림없다.

    더 심각한 것은 쌍용차의 협력·하도급업체들이다. 쌍용차 파업이 시작되면서 부품 공급 협력업체 대다수도 조업 중단 상태에 접어들었다. 쌍용차가 망하면 이들 업체 역시 그날로 문을 닫아야 한다. 이렇게 쌍용차의 운명에 목을 매단 협력업체의 직원은 20만명에 달한다.

    손님이 끊어진 쌍용차 평택공장 주변 음식점이며 상점들은 어떤가.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일하고 싶어하는 쌍용차 직원도 4500여명에 달한다. 거창하게 국가 경제 운운할 필요도 없다. 쌍용차의 주주며 소비자, 협력업체, 지역 상인들만 따져도 쌍용차사태로 피해 보는 사람이 수십만명에 이른다.

    쌍용차노조가 강공을 밀어붙이는 것도 이렇게 수십만명을 '인질'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쌍용차에 타격이 크면 클수록 '인질효과'도 커진다. 생산라인이 황폐화되고, 판매망과 소비자 신뢰가 무너져 내릴수록 사(使)측을 굴복시킬 무기가 강해진다. 고의적으로 회사 가치를 깎아내리는 자해(自害) 움직임까지 나온다. 인터넷 포털에 올라 있는 한 쌍용차 노조원의 블로그에 이런 구절이 눈에 띈다. "쌍용차 주차장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는데, 악취가 심해서 (회사측이) 고생들 했을 겁니다."

    이렇게 수십만명을 인질로 잡은 파업 노조원은 정확하게 976명이다. 정리해고 대상이 돼 직장에서 내몰린 이들의 사정은 딱하기 그지없다. 중국 상하이차가 경영을 잘못한 책임을 왜 근로자에게 전가하느냐는 이들의 항변엔 일리가 있다. 우리 사회는 이들의 분노와 눈물을 어떤 형태로든 어루만져 주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976명 때문에 쌍용차 직원 4500명과 협력업체 직원 20만명 역시 일자리를 잃게 될 상황에 처했다. 976명의 사정은 참으로 안타깝지만 쌍용차의 운명에 목을 맨 이들 수십만명의 처지 역시 딱한 것은 마찬가지다.

    노조가 기대하는 것은 공적 자금 지원이다. 쌍용차를 죽음 직전으로 몰면 정부가 돈 가방을 들고 구제하러 올 것이란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원자가 빨리 달려오게 하려면 인질을 더 못살게 굴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 GM 방식의 구제를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GM은 직원을 수만명 감축하는 등 처절한 구조조정 뒤에야 공적 자금 지원이 이뤄졌다. 게다가 나라 전체로 볼 때 쌍용차는 혈세를 퍼부을 만큼 '가치 있는 인질'도 아니다. 구조조정조차 제대로 못하는 기업에 내가 낸 세금을 쓰겠다고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사실은 40여일째 승산 없는 파업을 계속 중인 쌍용차 노조원들이야말로 최대의 인질 피해자일지 모른다. 오늘도 수많은 외부 세력이 파업 현장에 깃발을 꽂고 쌍용차 노조원들을 정치 투쟁의 인질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