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북자들에 관한 소설을 써 보자 하고 자료를 모으고 그 내막을 조사하고 알아가면서 나는 변했다. 그것도 조금 변하다 만 게 아니라 아주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도 가치관이 변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바뀌었다. 여태껏 옳다고 믿었던 게 옳지 않을 수도 있고, 그르다고 생각했던 게 그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뒤죽박죽되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존경하거나 경원시하는 대상도 바뀌었다.

    전에 좋아하던 사람이 싫어지기도 했고, 존경하던 사람이 하찮게 여겨지기도 했다. 존경하다 하찮게 여겨지게 된 대상들로부터 내가 상당히 오랫동안 속아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들이 진정으로 사람을 위해 말하고 움직이고 쓰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무엇을 위해 사람을 핑계삼고 이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건 분명 적잖은 소득이었지만, 뼈아픈 깨달음이기도 했다.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이 바뀌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선호도가 뒤바뀌었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변화였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동일할까, 의심이 생길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가끔 와이프가 말하곤 했다. 요즈음 내가 나 같지 않다 고. 와이프의 불평이 근거가 없다고 생각지 않는다. 충분히 그럴 만 하다고 생각한다.

    헌데, 와이프는 지난 사,오년 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물론 나이를 먹었고, 그 몰골이 더 흉해졌고, 나이듦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변화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기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에 대한 선호도의 변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점에서 와이프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변했는데, 와이프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꽤 심각한 문제였다. 갈등이랄까, 의사소통에 수시로 문제를 발생시키게 하는 일이었다. 전에 없던 일이, 와이프와 나 사이에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원래 나와 와이프는 엇비슷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기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대상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대상을 와이프도 좋아했고, 싫어하는 걸 싫어했고, 존경하는 걸 존경했고, 하찮게 여기는 걸 하찮게 여겼었다. 그러니까 결혼을 하게 되었을 것이었다. 같은 가치기준 같은 선호도를 지녔으니 자연스레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테고, 그게 서로를 강하게 끌어당겼을 터이니 말이다.

    헌데, 이제 그 공감대가 허물어져 사라져가고 있었다. 탈북자에 관한 소설을 써 보자 마음먹기 시작한 지난 사,오년 간에 나는 변했는데, 와이프는 전혀 변하지 않은 탓이었다. 이제 와이프는 내가 옳다고 보는 걸 옳다고 믿지 않고 내가 그르다고 보는 것을 그르다고 보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와이프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내가 하는 진짜 이유는, 여전히 그 놈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 역시 사,오년 전에는 그 놈을 지지했지만, 이젠 아니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놈을 지지한다는 것은, 내겐 참기 힘든 일을 넘어 기이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독일로 유학간 막내 처제가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했을 때의 일이었다.

    처제는 학업을 마칠 때까지는 절대 한국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그런 처제가 귀국한 것은 좀 의외였다. 몹시 가족이 보고 싶었거나 아니면 돈이 궁했거나 해서였을 터였다. 아마 후자쪽이 진짜 속내였지 싶다. 누구보다도 먼저 나를 찾아온 걸 보면.

    처제 역시 변한 게 없었다. 독일로 떠나기 전이나 잠시 귀국한 지금이나.

    처제는 와이프보다 더한 그 놈의 지지자였는데, 여전히 그 놈을 지지하고 있었다. 와이프가 미세하게나마 흔들리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처제는 미세한 흔들림조차 없이 여전히 완벽하게, 그 놈을 지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 지지도가 더 강화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처제가, 형부 요즈음 어떻게 지내고 계시냐고 묻길래 요즈음 내 관심이 온통 쏠려있는 탈북자에 관한 얘기를 꺼내었다. 나로써는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정직한 대답이었다. 요즈음 내 제 일의 관심사가 그거였으니까.

    헌데, 내가 탈북자 얘기를 꺼내자마자 대뜸 처제가 그랬다.

    형부 왜 이렇게 정치적으로 변하셨어요. 형부, 정치할 생각이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황당해지고 말았다. 탈북자 얘기를 꺼내니까 대뜸, 형부 정치할 생각이냐고 물어오는 처제의 심사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탈북자와 정치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탈북자란 단지 우리 시대 가장 고통받고 핍박받는 사람들, 인류 가운데의 하나일 뿐이었다. 게다가 나는 결코 정치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 사람 누구나 다 아는 일이었다. 세상 사람 누구나 다 아는 일을 처제만 모를 리가 없었다. 처제처럼 야무지고 똑똑하고 독일까지 가서 공부하는 여자가 말이다. 세상 사람 누구나 다 그렇게 안다면, 정치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도 나를 정치인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데, 나 혼자 무슨 수로 정치를 한단 말이냐.

    사실 정치적인 것은 내가 아니라 처제 쪽이었다. 나는 전혀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했었는데 그 놈을 발견해내고 그 놈에 대한 지지를 요청해왔던 게 처제였었다. 처제가 보증하니 군말없이, 흔쾌히 그 놈을 지지하고 따랐던 게 나와 와이프였다. 여전히 처제가 그 놈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지지하고 있는 것도 처제의 그 정치지향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여간 나는 처제의 그 말을 듣고 순간 발끈하고, 성이 나고 말았다. 요즈음 성이 나거나 마음에 안 맞는 게 생기면 튀어나오곤 하는 말, 빨갱이라는 욕이 그래서 튀어나오고 말았다.

    "이제 봤더니 처제는 빨갱이구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러나 나의 빨갱이라는 표현에 정작 놀란 것은 처제보다 나와 처제의 대화를 옆에서 엿듣고 있던 와이프였다. 와이프의 벼린 칼보다 더 예리한 시선이 갑자기 나의 얇은 낯짝 피부를 뚫고 침투해들어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 보니 처제가 빨갱이라고 하는 거야."
     "제가 왜 빨갱이인가요."
     "처제 생각하는 게 그렇다는 거야."
     "제 생각이 어떻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형부, 요즘 세상에 빨갱이라니요. 너무 지나친 오버에다 유치하지 않은가요."

    오버니 유치하니 하는 말이 또 나를 자극했다.

    "오버든 유치하든 빨갱이는 빨갱이인 거야."
     "?......"

    처제가 몹시 떨떠름한 표정으로 돌아가고 나서 나는 와이프와 대판 붙어야 했다. 어떻게 자기 동생에게 빨갱이라는, 그런 모욕적인 언사를 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도저히 이 사태를 묵과할 수 없고 나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고, 내가 미쳤다고도 했다. 나는 와이프의 공격에 당연히 방어했다. 미쳤다는 말에는 자극을 받아 단순한 방어가 아닌 더한 공격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동생 교육 잘시키라고 했고, 생각이 틀린 걸 틀렸다고 하는 데 무에 잘못이냐고도 했다.

    와이프가 정색을 하고 받았다. 자기 동생을 이렇게 대한다면, 더는 나와 살 수 없다고 했다. 자기더러 빨갱이라고 하는 것과 자기 동생더러 빨갱이라고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라고 했다.

    이건… 잠시 뜸을 들인 와이프가 그랬다. 이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야. 그러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찬바람을 날리며 방을 나가버렸다. 아니, 단순히 방만을 나가버린 게 아니고 집마저 나가버렸다.

    집을 나간 와이프는 다음날 저녁 늦게야 들아왔다.

    와이프가 그렇게 찬바람 쌩쌩 날리며 방과 집을 차례차례 나가버리고 얼마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나의 행동이 지나쳤음을 반성하게 되었다. 와이프에게도 그렇지만, 처제에게 빨갱이라고 해 댄 것은 아무래도 지나친 표현이었다. 지나친 표현이었으므로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빨갱이란 우리 사회에서 욕에 가까운 말이었고, 극도로 예민한 정치적인 함의가 담긴 언사였다. 다른 어떤 욕보다도 증오와 질시와 배타적 리비도가 강하게 담긴 말이었다. 빨갱이라는 말은 함부로 입에 담을 게 아니었다. 말하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극단적인 관계의 단절을 고려하지 않는 한, 결코 사용할 말이 아니었다. 그런 극단적인 말을 처제에게 하였으니, 와이프가 성을 내는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자기한테 그러는 거야 참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자기 피붙이한테 그러는 데에는 사람이란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마련이니까.

    내가 좀 지나쳤다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제서야 속이 뜨끔했다. 처제를 무슨 낯으로 보고 또 와이프를 무슨 낯으로 보지, 싶어졌다. 와이프야 그동안 살아오면서 볼 꼴 못 볼 꼴 다 본 경우라 이런 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처제는 달랐고, 다를 수밖에 없었다. 처제가 어떻게 형부가 자기에게 이럴 수 있느냐고 생각한다면, 그건 회복 불능일 것이었다. 나에 대해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처제가 아니므로, 처제는 나의 행태가 쉽사리 용납되지 않을 것이었다.

    나와 더는 살 수 없다고 하는 와이프의 말도 걸렸다. 집을 나가버린 행동은 더욱 걸렸다. 여지껏, 아무리 심하게 다투고 싸웠어도, 와이프가 집을 나가버린 적은 없었다. 와이프가 대단한 상처를 받았고 화가 났으며, 그 상처와 화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의미였다.

    아뿔싸.

    와이프가 집을 나가버린 그날밤 나는 내내 잠 못 이루고 나의 처사를 후회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와이프 말대로 내가 미쳐버린 걸까, 후회하고 나를 질타하고 또 후회했다. 곧 들어오겠지 기대하는 와이프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돌아오지 않자, 그에 비례해 후회와 질타의 폭과 깊이도 넓어지고 깊어갔다.

    아무래도 탈북자에 대한 소설을 내가 쓸 수 없다는 걸 확인하고 만 그 실망감이, 그 허탈감이 나를 그릇친 것 같았다. 지난 오년여간 쓰겠다 벼르던 것이었는데, 그래서 자료를 조사하고 모으면서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온 건데, 이제와서 그게 나에겐 불가능한 것으로 판가름이 났으니 나의 실망감과 허탈감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는 것이긴 했다. 누구든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이나 허전함은 견디기 힘든 것 아니겠는가. 나의 이번 경우가 그와 엇비슷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써야 할 것을 쓸 수 없다면, 글쟁이에게 그건 삶의 근거를 상실하는 일이 아니냐 하는 거다.

    내가 이러는 게 분명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와이프를 빨갱이라고 몰아붙이고 처제에게 빨갱이라고 성을 내는 건 잘못이었다. 아마도 나는 와이프나 처제에게서 지금 처한 나의 힘든 입장에 대한 이해를 갈구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는 하다. 소중한 것을 상실하고 만 나의 상태를 좀 이해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걸 와이프나 처제에게 요구하는 건 무리였다. 기본적으로 와이프는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는 거였다. 가장 소중한 자기가 내 곁에 이렇게 멀쩡하게 떡허니 버티고 있는데 상실감이니 뭐니 하며 허덕인다는 게 자기에 대한 모욕이고,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내가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와이프는 자신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나를 도저히 이해하지도 용납할 수도 없을 것이었다. 와이프가 요즈음 나를 두고, 내가 미쳐버렸다고 하는 것은,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자기한테 그러는 데에야 넘어갈 수 있다고 하지만, 처제한테까지 그러는 데에는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는, 정말 미쳤다고 결론내리지 않고는 못 베길 만한 일이었을 것이었다.

    나의 상실감이 아무리 컸다 하더라도 와이프나 처제 앞에서 본색을 드러내는 게 아니었다. 그건 분명 잘못이었다. 아무리 와이프라 하더라도 나의 상실감을 공유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게 아닌가. 그건 와이프의 역할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하물며 처제에게까지 이를 강요한다는 것은, 지나친 일임을 넘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와이프의 성남과 그로인한 가출은 지극히 당연하고 정당한 것이었다.

    다음날 늦게 와이프가 돌아왔을 때,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그리고 와이프에게 말했다. 잠시 집을 나가 있겠노라고. 요새 내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것 같고, 정신적 안정을 찾는다는 차원에서 집을 좀 떠나있는 게 좋을 것 같다 고.

    와이프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그러라고도 그러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러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걸 와이프의 무언의 동의로 간주했다.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을 나왔고, 집과는 좀 동떨어져 값싼 고시텔을 얻었다.

    집을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곧 이 일을 잘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상실감이 어느 정도 가라앉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주변 사람들을 상대로 빨갱이라고 욕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와이프에게 말이다. 이건 당연한 일이었는데, 와이프와 떨어져 있으니 와이프에게 빨갱이라고 욕해대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