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 문화를 유혹하다 ⓒ 뉴데일리
    ▲ 시, 문화를 유혹하다 ⓒ 뉴데일리

    시가 사라지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시를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시집을 본 지 오래되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집을 선사하던 풍습도 옛날 얘기가 되었다. 시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시는 어디로 간 것이 아니라 항상 그랬듯이 우리 눈과 마음에 있다. 시는 흰 종이에 검은 잉크로 인쇄된 활자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특별한 방식이며 문화에 대한 고유한 체험이다. 시의 존재는 우리가 세상을 얼마나 시적으로 읽느냐, 문화적 산물을 통해 어떤 시적 체험을 하느냐에 달린 셈이다.
    국문학 교수인 저자는 우리가 막연하게‘시적’이라고 말하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다양한 문화적 텍스트에 대한 독서를 통해 독자에게 시적 감동을 안겨 준다. 회화, 영화, 음악, 사진, 광고, 만화, 심지어 TV의 개그 프로그램까지 그의 시적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분야가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다. 시라는 안경을 쓰고 바라보면 온 세상이 시다. 사람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감정, 문득 우리를 찾아오는 아련한 추억까지 ‘시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이 책은 시적 감흥을 영탄조로 늘어놓는 개인적인 감상문이 아니다. 문화기호학자인 저자의 학문적 배경이 말해 주듯이, 문자와 이미지, 그리고 영상과 소리로 구성된 텍스트가 어떤 장치를 통해 시적 효과를 생산하는지, 그리고 그들 상이한 매체의 시적 장치가 어떻게 형태적으로, 의미적으로, 이념적으로 상호교류 하는지 분석한다. 시적 함의가 풍부한 감성적 텍스트에서 이성적 구조를 포착해 내는 저자의 분석력은 가히 놀랄 만하다. 그러나 그 명철하고 이성적인 접근도 저자의 숨길 수 없는 시적 감수성에 압도당하고 있음은 시를 사랑하는 인문학자가 치러야 할 대가일까.

    “영화를 비롯하여 연극, 미술, 음악 등의 영역에서 자신의 창조적 재능을 발휘한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2001년 영화 〈트래픽〉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수감을 그렇게 전했다. 저자는 그의 말을 책머리에 인용하면서, 예술의 여러 장르가 서로 교류하여 세계에 대한 보다 입체적이고 본질적인 이해를 제시하기 바란 감독의 생각에 공감을 표명한다. 이 진술은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의도를 명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김춘수, 황동규, 오규원, 정현종 등, 언제나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하는 그들의 시가 내포한 ‘시적인’요소를 그림이나 영화, 사진이나 광고 등 다른 문화적 장르에서 어떻게 재발견할 수 있는지, 그래서 시란 것이 어떻게 문화의 강력한 소재이자 장치가 되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그 아름다움을 체험하게 하는지,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한다. 그는 심지어 가수 이효리가 부른 〈10 Minutes〉를 시적 텍스트로 분석하면서, 음운과 음절 그리고 유사한 구절이 행에서 연으로 〮확대⋅반복되는 특정한 구조가 숨어 있음을 밝혀낸다. 그리고 이런 구조가 흥미롭게도 우리가 자주 대하는 광고에서도 쉽사리 찾아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광고가 영감을 얻는 것은 가요뿐만이 아니다. 〈이자녹스〉광고는 팝아트까지 해석의 영역을 확대했고, 다니엘 헤니가 출연한 DMB 광고에는 몬드리안의 구성이 녹아 있다. 저자는 또한 스카이의 광고에서 한용운의 시〈복종〉을 읽어내면서 광고가 포함한 시적 요소를 잡아내는가 하면, 영화〈아메리칸 뷰티〉에서 이리저리 날리던 비닐봉지 한 장이 불러온 바람의 이미지를 신경림의 시〈갈대〉, 모네의〈산책〉에서 재발견하기도 한다. 브레송이 사진 〈인도〉에서 포착한 ‘결정적 찰나’에서 박노해의 시 〈거룩한 사랑노래〉를 읽기도 하고, 샤갈의 그림의 시적 요소가 어떻게 시로, 소설로 다시 태어나는지, 안견의 몽유도원도의 시성이 어떻게 시문과, 현대화와 소설로 재현되었는지, 심지어 만화 〈광수생각〉과 영화 <롤라런>과 〈웃찾사>와 요즘 유행하는 우스개가 어떤 시적 요소를 담고 있고 어떻게 상호 교류하는지 설명한다. 저자가 종횡무진 하는 분야의 다양함에 독자는 현란함마저 느낀다. 저자는 특히 영화 〈일 포스티노〉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평범한 우편배달부가 시인 네루다를 만나면서 시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어찌 보면 우리가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우리 삶 자체가 시적인 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알레고리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왜 이런 노력을 기울일까. 대답은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모르고 지났을 뿐, 예술이든 문화든 사소한 일상이든 인간관계든, 어디에나 시적 요소가 숨어 있고, 거기서 시의 향기를 발견하는 순간 온 세상이 시적으로 변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기파랑 펴냄, 280쪽,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