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한민국 이야기 - 해방전후사 재인식 강의 ⓒ 뉴데일리
    ▲ 대한민국 이야기 - 해방전후사 재인식 강의 ⓒ 뉴데일리

    2006년 2월에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출간되었을 때, 이 책의 저자들은 예상치 못했던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교과서로 삼아 한국의 근현대사를 바라보고, 배우고, 가르치던 한국의 이념적 현실에서, 일종의 소수그룹이 되어버린 연구자들의 논문들을 모아놓은 이 책이 수만 부가 팔려나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완성된 원고를 들고 유명 출판사들의 문을 두드렸지만, 대부분 출간에 난색을 표했기에 그들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더욱이 1·2 권을 합하여 1500쪽에 달하는 두껍고 어렵고 전문적인 책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출판계에서도 이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팔려나간 책을 통독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독자들은 마치 언젠가 끝내야 할 숙제처럼 책을 서가 한 구석에 모셔둔 채, 마음의 부담만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대여섯 꼭지, 많아야 열댓 꼭지를 읽고 책장을 덮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와 편집자들은 독자들로부터, ‘조금 알기 쉽게, 읽기 쉽게’ 책을 다시 써달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한다. 이제 마음의 부담은 저자들의 것이 된 셈이었다. 저자와 편집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보급판을 만들자는 의견이 오갔지만, 스물여덟 명 연구자들의 글을 요약하거나 쉽게 풀어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책 전체를 관통하는 관점을 설정하여 일관성 있게 재구성하는 것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결국, 네 명의 편집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이영훈 교수가 이 일을 자청했고, 그가 그동안 조사하고 연구하고 이해한 한국 근대사를 통시적으로 설명해 가면서 《재인식》에 수록된 논문의 내용을 쉽게 풀어쓴 원고를 완성했다. 원고는 EBS 라디오 방송의 요청을 받아 특강 형태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그러나 한정된 방송 시간에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없었고, 사진 자료 등을 노출할 수도 없었기에 책으로 출간하는 것은 꼭 필요한 절차였다. 필자는 일주일간의 강의 내용을 수정 보완, 세 배쯤 되는 분량의 완성된 책으로 발간했다. 《재인식》이 출간된 지, 거의 1년 4개월만의 일이다.

    우리의 20세기는 전통문명과 외래문명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문명사의 대전환 과정이었다. 사람들은 자유롭고 평등해졌으며 풍요로워졌다. 빈곤과 질병에서도 해방되었다. 그와 같은 변화의 정치경제적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서유럽에 기원을 둔 외래문명이다. 역사 쓰기의 단위를 개인으로 바꾸면, 20세기 한국사는 외래문명이 들어와 우리의 전통문명과 상호작용하면서 나름의 형태로 정착하는 과정이었다.
    이와 같은 관점을 기초로 《대한민국 이야기》는 한국 근현대사를 전면 재해석한다.

    결국 역사는 해석이만, 격동의 20세를 거친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우리는 ‘민족주의’라는 정서에 묶인 역사만을 얘기하고 해석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보다 솔직하게 우리의 역사에 있어 과연 진실은 무엇이었는지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우리를 옭아 맨 민족주의를 해체하고 분별력 있는 이기심을 본성으로 하는 인간 개체를 역사 서술의 단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선왕조가 패망한 원인, 식민지 수탈론, 친일파청산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현대사의 중요한 문제와 쟁점들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간다.

    수천년 전부터 한반도에 단일한 민족이 존재해왔다는 명제는 조작된 신화다. 한국의 역사에서 민족이라는 집단의식이 생겨난 것은 일제하 식민지기다. ‘일제의 억압을 받으며 소멸위기에 직면한 조선인들이 그들을 하나의 정치적 운명공동체로 새롭게 발견’하면서 민족이란 집단의식이 형성되었다. 민족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다른 모든 것이 그러하듯 성립과 발전, 좌절과 해체의 과정을 밟게 된다. 따라서 식민지기에 발견된 민족의식이 해방 후 남과 북에서 지배적인 국가이념으로 발전해왔고 현재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세계화 흐름에 밀려 점차 쇠퇴한다는 것이 이 책의 전망이다. 이영훈 교수는 이 책에서 민족사관과 민족주의를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반민족주의자라고 낙인찍기는 곤란하다. 그는 단지 민족만이 역사 쓰기의 유일무이한 단위라고 보는 것은 편협하다고 말할 뿐이다. 그가 ‘민족’을 단위로 한 역사 쓰기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개인’을 단위로 한 역사 쓰기다. 인간 개체를 출발점으로 하여, 그 인간을 둘러싼 가족과 친족의 역사, 마을과 단체의 역사, 사유재산과 화폐의 역사, 재분배와 시장의 역사, 문학과 예술과 사상의 역사, 국가와 민족의 역사 등 문명이 빚어낸 다양한 요소들이 모두 역사 쓰기의 단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문명사관이다. 어느 한 문명소의 역사에 다른 모든 역사를 귀착시키지 않고 동등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민족사관에 비해서는 근대민주주의의 정신을 좀 더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이 교수는 역사 쓰기의 단위를 개별인간으로 바꾸어 놓으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인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이영훈 교수는 발로 전국 방방곡곡을 뛰어다니며 철저한 고증과 인터뷰를 통해 사실(史實)을 밝히려 애썼다.

    기파랑 펴냄, 328쪽,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