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 한국을 버리다 ⓒ 뉴데일리
    ▲ 미국, 한국을 버리다 ⓒ 뉴데일리

    19세기 후반 일본에 뒤져서 개국한 한국은 일본, 청, 러시아 등의 주변국을 중심으로 한 구미열강의 영향을 받아 국운이 기울기 시작했다.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의 결과, 1905년 11월 ‘한일보호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한국은 일본의 보호 아래 놓이고, 결국 5년 후인 1910년에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다.
    이 책은 한국이 결정적으로 망국의 비탈길을 굴러 내려가기 시작한 20세기 초부터 일본에 병합되는 1910년까지, 그 당시 국제 역학관계에서 우선권을 점유하고 있던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정권이 한국 문제에 어떤 자세로 임하고 어떤 대응을 했던가, 그에 대해서 한국 정부, 특히 미국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던 고종 황제가 어떤 대응을 했던가에 대해서 상세히 다루고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당시 국익을 앞세운 루스벨트가, 바람 앞에 등불 같았던 한국의 운명을 얼마나 냉혹하게 외면했으며, 대조적으로 신흥 일본에는 얼마나 관대하고 은혜로웠나 하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한국이 이 지경에 이른 이유를, 1882년에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 제1조의 주선조항에 대한 양국의 해석 차이에서 찾는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 측의 안이한 상황 인식을 문제로 삼는다. 

    이 책의 내용은 말하자면 ‘과거의 사건’을 기술한 것이다. 
    일본인 학자가 대한제국 망국의 원인을 국제적 법제에 대한 인식 능력의 결여, 강대국의 침략적 접근에 대항할 수 없는 약소국의 입지 등에서 찾고, 당시 한국의 운명을 국제적 추세에 비추어 분석하다 보니, 문화적으로 일찍이 개화한 일본이 이웃나라 한국을 침략한 범죄성을 다소 희석하고 은폐한 측면도 없지 않다. 아울러, 도덕성의 권화이자 전 세계를 향한 민주주의의 전파자로, ‘세상에 둘도 없는 나라’임을 자처해 온 미국을 향한 고종의 간절한 요청을 싸늘하게 외면하고, 한국 문제를 일본에 떠넘긴 루스벨트의 행동을 ‘해석의 차이’라는 개념만으로, 나아가서는 한국 측의 국제법에 대한 인식 능력의 부족으로만 설명한 점은 어쩌면 이 책의 약점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미국과 한반도의 관계, 일본과 한반도의 관계, 그리고 6자 회담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를 시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35년의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남북 분단을 겪고 형제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비극적 상황을 지나 눈부신 경제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까지 이룬 한국의 모습은 분명 10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등 주변국들이 한국과 한반도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은 100년 전과 변함이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국이 100년 전과 같은 상황을 겪지 않으려면 이 책에 담긴 과거의 사건을 주목해야 한다. 늘 그래왔듯, 역사는 바로 현재를 보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기파랑 펴냄, 264쪽,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