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빈센트의 구두 ⓒ 뉴데일리
    ▲ 빈센트의 구두 ⓒ 뉴데일리

    램프 하나가 어둠을 밝히고 있는 방 안에서 옆모습의 여인이 남자 쪽으로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있고, 반쯤 앉은 자세로 여인을 부둥켜안은 남자의 얼굴은 위로 젖혀져 있다. 오른 쪽에 있는 램프 불빛으로 여인의 옷과 목덜미가 환하게 빛나고 있고, 여인의 옆얼굴과 남자의 몸은 절반가량 어둠에 잠겨 있다. 왼편 벽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데, 여인은 연인의 등 너머로 벽에 비친 그림자의 윤곽선을 따라 남자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이별을 앞두고 자기 애인을 그림으로나마 간직하기 위해 벽에 비친 연인의 그림자를 그대로 따라 그리고 있는 이 그림은 고대 희랍의 코린트 여인 디뷰타드의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라는, 다시 말해서 재현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이 그림은 벨라스케즈의 <시녀들>과 닮았다.
    마침 그림의 제목도 <디뷰타드 혹은 그림의 기원>이다. 그러나 19세기의 화가인 쉬베가 이 제목을 붙였을 때 그가 생각한 그림의 기원이 사랑이었다면 데리다는 눈멂을 그림의 기원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든 그림 그리기에는 눈멂이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의 선을 따라 연인의 그림을 그릴 때 부타데스는 자기 연인을 볼 수 없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녀는 자기 연인에 대해 눈 먼 소경이다. 이러한 눈멂이 모든 그림의 기원이며 조건이 아닐까? 라고 데리다는 생각한다. 화가가 종이 위에 선을 긋는 바로 그 순간 그의 눈은 모델을 바라보고 있지 않고 모델에 대해 눈이 멀어 있기 때문이다.
    화가가 모델을 바라볼 때 그 모델은 현전(現前)(presence)이다. 그러나 종이 위에 선을 긋기 위해 얼굴을 아래로 숙이는 순간 모델은 사라져 그것은 부재(不在)(absence)가 된다. 엄밀히 말해서 부재라기보다는 현전의 흔적이다. 그 사이에는 미세한 간격이 있다. 이처럼 바라보고 그리는 작업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림그리기는 결국 거기 있는 것과 없는 것, 현전과 부재 사이의 끊임없는 직조(織造)에 다름 아니다.
    ‘간격’, ‘흔적’ 혹은 ‘현전과 부재 사이의 직조’라는 말들이 벌써 우리를 데리다의 중심 개념으로 성큼 인도한다. 디뷰타드 이미지는 단순히 그림의 기원일 뿐만 아니라 데리다 철학의 중심 개념인 흔적, 차연(差延)의 서사적 은유였다.

    기파랑 펴냄, 240쪽,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