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4월 29일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는 비틀거리는 미국 소의 모습으로 시작했다. 진행자는 '목숨을 걸고 광우병 쇠고기를 먹어야 합니까'라는 포스터 앞에서 이 '주저앉는 소'를 "광우병 걸린 소"라고 했다. 딸이 광우병에 걸려 숨졌다며 눈물짓는 흑인 어머니 인터뷰도 길게 내보냈다.

    그 방송을 본 사람이면 '광우병 덩어리 미국 쇠고기'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고, 그런 쇠고기를 들여오겠다는 정부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흘 뒤 촛불집회가 시작돼 '아직 15년밖에 못 살았어요'라는 피켓을 든 소녀부터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 나이 지긋한 시민들까지 모여들었다. 나라는 걷잡을 수 없는 아수라장으로 빠져들었다.

    진실은 곧 밝혀졌다. '주저앉는 소'는 '광우병 소'가 아니었다. 눈물짓는 흑인 어머니 딸의 사인도 광우병과 무관했다. 미국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린 미국인은 지금까지 한 사람도 없었다. 그것 말고도 영어 번역자에 의해 프로그램 전체에 걸친 날조와 왜곡, 과장과 거짓이 낱낱이 폭로됐다.

    이 PD수첩에 대해 언론중재위와 방송통신심의위 제재, 법원 정정보도 판결이 잇따랐지만 방영 1년이 지나도록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진실이 어떤 목적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왜곡됐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2003년 영국 공영방송 BBC는 정부가 이라크전 정보를 정부에 유리하게 왜곡했다고 보도했다가 '허위보도' 논란에 휩싸였고 와중에 취재원으로 지목된 정부 인사가 자살했다. 영국 정부는 퇴임 판사 허튼이 이끄는 허튼위원회를 구성해 조사를 맡겼다.

    6개월 조사 끝에 "BBC가 취재원 정보의 진위(眞僞)를 파악하지 않은 오보"라고 결론 나자 BBC 이사장과 사장은 동반 사퇴했다. 일본 니혼TV 사장은 지난 3월 심층보도 프로그램 '밀착 취재기자 진상보도'의 작년 11월 지자체 공사대금 비리 보도가 오보로 밝혀지자 사죄하고 물러났다. 니혼TV는 진상 조사가 끝나면 300회를 넘긴 이 간판 고발프로그램을 폐지하기로 했다.

    MBC는 이제껏 PD수첩 왜곡보도의 진상을 조사해보겠다는 말도 꺼낸 적이 없다. PD수첩 사태에 대한 회사 차원 공식 입장도 밝힌 적이 없다. 오히려 4차례 사내 대책회의를 갖고 "잘못 인정이나 사과를 하면 MBC에 대한 실망과 공격이 이어질 것이니 최대한 시간을 끈다"는 방침을 정했다. "사내 심의를 하면 보도가 잘못됐다는 인식을 준다"며 자체 조사도 않기로 했다.

    PD수첩 파동 이후에도 MBC 보도는 나아진 게 없다. 프로그램 제작과정은 여전히 소수 PD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객관성과 균형감각이 생명인 시사프로그램의 내용을 부장·팀장·국장이 확인, 재확인을 거듭하는 게이트키핑(gatekeeping) 기능 역시 여전히 작동하지 않고 있다. 노조의 위세를 업은 PD들이 이런 사실 확인과 검증 과정마저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MBC 내에선 PD 기획보도 쪽을 '해방구'라 부른다. PD 몇 명이 자신의 이념에 따른 선악 판단을 미리 내려놓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극단적 구성과 감정적 영상을 꿰맞추는 방식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제2의 광우병 PD수첩 같은 프로그램이 언제 다시 전파를 타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1년 전 PD수첩은 과장·왜곡·거짓·날조된 사실과 영상으로 이 나라를 뒤흔들었다. 그런데 1년이 흐른 뒤에도 누가 어떤 의도로 어떻게 이런 일을 벌였는지를 모르고 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신망있는 민간 전문가들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PD수첩 사태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낱낱이 조사하고 백서(白書)를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그 관련자들이 법적 책임에 앞서 백서가 지적한 언론인으로서의 책임을 먼저 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 본지와 조선일보 간 기사제휴 계약에 따라 조선일보 사설(4월 29일자)을 전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