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왜 탈탄소경제화를 서둘러야 하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최근의 전지구적 경제위기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분석해야 한다.

    전지구적 경제 위기의 발화점은 미국이다. 미국은 쌍둥이 적자국가다. 무역적자에 재정적자가 더해진 나라다. 생각해 보라. 나라도 가계와 기업과 같아서 적자가 쌓이면 망하는 법이다.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은데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2008년에 미국은 무역에서 6771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 우리 외환보유고가 대략 2000억 달러니, 1년 만에 그 세배 가량이나 적자를 낸 것이다. 무역에서 적자가 나도, 그 돈을 메울 만큼 해외에서 돈이 흘러 들어 오면, ‘당장은’ 문제 없다. 미국은 전 세계의 돈을 끌어 들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 미국 정부는 어마어마한 양의 국채를 계속 발행, 전 세계 구체적으론 중국 일본 중동 등으로부터 달러를 긁어 모아, 부족한 돈을 해결해 왔다. 이렇게 진 미국의 빚이 지난달 11조 달러를 넘었다. 11조원이 아니라 11조 달러다. 그 중 외국이 가진 미국 국채는 3조 달러 수준. 중국 7400억, 일본 6300억, 중동 1800억 달러이고, 한국도 313억 달러를 보유 중이다.
    이렇게 돈을 조달하는 창구가 국제금융의 본산지의 뉴욕 월가다. 월가의 국제금융은 미국을 지탱하는 세계 경쟁력 1위의 서비스 상품이었다. 그런데 영원무궁할 것 같았던 월가가 한 순간에 무너진 게 오늘의 경제위기의 시발이라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보편적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보자. 이런 방식으로 나라의 살림을 꾸릴 수 있는 나라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건 이 지국상에 미국만이 가능한 일이다. 한마디로 그 동안 미국은 전세계에서 각종 상품을 마구 사들여다 온 나라가 펑펑 써대고, 돈이 모자라면 다시 빚을 내서 수입해 또 펑펑 써대는 경제 구조로 살아온, 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나라다.

    미국 무역적자의 주범은 바로 석유 수입이다. 2008년 미국의 전체 수입액 2조1112억 달러 가운데 석유 수입액은 무려 3419억 달러, 16.2%나 차지한다. 무역적자의 절반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이렇게 해외에서 사오는, 미국의 대외석유 의존도는 60%에 육박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미국의 정치 리더십은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대중인기주의에 영합한 미봉책으로 엉거주춤 해왔다.

    경제위기가 닥치고 정권이 바뀌고 나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미국의 석유 대외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식했다면, 성공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혁신적인 방향전환이 이뤄질 것은 분명하다. 그게 바로 탈탄소경제로 가는 길의 첫 걸음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증기기관의 발명 이래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산업화와 세계화는 전적으로 화석연료(fossil fuel)를 근간으로 한 탄소에너지 위에 성립된 탄소경제의 발전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직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대유정(大油井)이 발견되어 석유의 대량소비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 탄소에너지에 의존한 전지구적 산업화를 가속화시켰다.

    최근의 경제위기는 근본적으로 미국경제가 회생해야 해결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미국경제의 근본적 문제는 만성적인 무역적자고, 무역적자의 주범은 바로 석유수입. 석유의 대외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오바마의 정책은 문제의 정곡을 정확히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제 미국의 해외석유 수입 문제는 지구온난화 문제이자 미국경제의 문제이고 세계경제 문제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기후변화를 집중 조명해온 앨 고어 전 미국부통령은 이 문제를 미국의 국가안보문제로 거론할 정도다. 고어는 지난해 7월 워싱턴에서 "10년 이내에 미국 내의 모든 전기생산을 화석연료 대신, 태양력이나 풍력처럼 재생가능하고 탄소배출이 없는 에너지로 바꾸지 않으면, 생태계의 안전은 물론 국가안보까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결책으로 근로소득세(payroll tax)는 줄여주고, 대신 탄소세(carbon tax)를 신설, 재생 가능한 탄소 없는 에너지(renewable carbon-free energy)가 화석연료에 대해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탄소세 도입을 주장한 것이다. “우리는 중국에서 돈을 빌려다, 페르시아만에서 석유를 사오고 있고, 그것을 태워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석유의 과다 해외수입 문제를 미국의 경제위기, 지구온난화, 국가안보 위기와 한 묶음으로 보고 있음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지금 미 하원에는 민주당의원이 제안한 ‘탄소배출총량 거래제(cap and trade system)’ 법안이 상정되어 있다. 이를 놓고 민주-공화 양당 의원간에, 민주당의원간에도 지역 이해가 걸린 의원들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언론들도 찬반 양론으로 갈려 있다. 뉴욕 타임스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탄소배출권’을 시장에서 거래토록 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고어의 주장처럼 탄소세를 신설해 에너지 기술(Energy Technology) 기업이 클 수 있도록 하는 것만이 미국이 사는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을 다시 정리해 본다면, 금융시장의 강점을 이용해 외국 돈을 끌어 들여, 해외 석유를 마구 들여다 펑펑 써대고, 전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재 시장을 유지하는 게 지금까지 미국경제가 굴러 온 시스템이라고 할 수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석유를 둘러 싸고 벌어지는 온갖 복잡한 국제분쟁과 전쟁과 외교관계가 그런 시스템 위에서 작동되어 왔다고 단순-도식화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지금 미국은 혁명적 변화를 택하느냐, 아니면 그냥 그저 그런 미봉책을 택하느냐 하는 엄청난 역사의 갈림길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석유 등 탄소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온갖 기술, 기업, 자본과 환경들을 다 갖추고 있다. 태양력(태양광+태양열)과 수소에너지의 핵심 기초 기술은 여전히 미국이 다 가지고 있다.<관련기사 면> 문제는 정치 리더십이다.

    프리드먼이 지적하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기술(ET)이 꽃 피울 수 있도록, 시장이 움직일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바꾸는데, 미국의 정치 리더십이 앞장 서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탄소에너지 가격을 올려서 ET가 만들어 내는 비탄소에너지가 시장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치 리더십이 법과 제도를 만들라는 것이다. 즉 탈탄소경제가 돌아가도록 하는 법과 제도를 구비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미국경제가 살고, 그래야 세계경제가 살고, 따라서 지구도 산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라 경제문제이고 자본주의 발전의 문제라는 게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대한민국 입장으로 돌아와서 보면, 한국경제가 회복되고 지속적인 발전을 하려면, 미국경제가 살아야 한다. 친북좌파만 빼면 어느 누구도 이를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미국이 탈탄소경제화 사회로 나아가지 못한 채 경제가 일시적으로 회복된다면, 우리에게는 또 다시 끔직한 고유가 석유파동이 들이 닥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미국이 전 세계의 석유를 빨대로 빨아 들이고, 전세계의 상품을 사다가 마구 소비할 때, 전 세계의 제조공장인 중국은 또 얼마나 석유를 마구 들여다 쓸 것인지를 상상해 보자. 그런 상황은 영구적이지 못하다. 또 다시 시스템이 고장 날 게 뻔하다. 다시 한 번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이번의 위기와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전지구적 재앙일 것이다.  이게 이번 위기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이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진심으로 미국이 탈탄소경제화로 나아가길 기원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이 살고, 세계가 살고, 한국이 살고, 지구가 산다. 자원이 없는 우리로선 미국과 함께 탈탄소경제화로 발 빠르게 나아가야 한다. 설사 미국이 주춤하더라도 우리는 뒤돌아 보지 말고 먼저 나가야 한다. 미국보다 더 앞장서서 에너지기술 개발에 국가와 국민의 자원과 힘이 집중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 시장이 작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행이 우리는 에너지 기술 개발에서 남보다 먼저 나아갈 수 있는 몇가지 토대를 가지고 있다. 태양광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세계 최고인 반도체와 TFT LCD 분야와 태양광 기술분야는 사촌형제간이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조선산업, 플랜트 건설에서 경쟁력 있는 중공업, 해외건설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건설업 등에서 갈고 닦은 기술은 풍력과 조력과 태양열 발전 분야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자원은 없지만 근면하고 교육과 훈련이 잘된 우수한 인력도 탄탄소경제화의 강점요인이다.

    이런 장점들을 잘 살려, 지구상 그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탈탄소경제사회로 들어가야 한다. 그게 우리가 선진일류국가로 진입하는 길이다. 선진일류국가 진입이라는 국가목표는 너무 추상적이다. 탈탄소경제화를 통해 탈탄소경제사회로 가야 한다고 보다 명확하게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목표를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정치적 독립을 이뤘고, 몇 차례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도 원조에 의존한 주변부 종속경제에서 벗어나 경제적 독립도 이뤘다. 그러나 에너지에 관한한 우리는 여전히 해외에 의존형이다. 에너지 독립국가로 거듭나자는 게 탈탄소경제화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