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재무부가 23일 금융권의 부실자산을 처리하기 위한 부실자산 정리방안의 세부 내용을 제시하자 미국과 유럽 각국의 주가가 급상승하는 등 전 세계 금융시장이 모처럼 활짝 웃었다.

    이날 발표된 부실자산 처리방안의 성공 여부는 민간 투자자들의 참여에 달려있기 때문에 효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일단 첫 날 금융시장의 반응은 이번 계획에 '합격점'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부실자산처리계획의 주요 윤곽이 발표했던 지난달 10일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주가가 4.6%나 폭락해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부 장관이 망신을 샀던 것을 감안하면 이날 가이트너 장관도 당시의 실추된 이미지를 만회한 셈이다.

    하지만, 민간투자자들의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거나, 민.관이 함께 참여한 펀드가 부실화될 경우의 결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찮은 상황이어서 결과를 낙관하기에는 시기상조인 것으로 전망된다.

    ◇ 전세계 증시 동반랠리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지난 주말보다 무려 497.48포인트(6.84%)나 급등한 7,775.86으로 마감됐다.

    이날 다우지수의 상승폭은 552.59포인트가 폭등한 작년 11월13일 이후 4개월여 만에 최대였고, 다우지수 종가는 5주일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S&P 500 지수는 822.92로 54.38포인트(7.08%) 상승하면서 작년 10월28일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고, 나스닥 종합지수도 98.50포인트(6.76%) 상승한 1,555.77을 기록, 1,500선을 넘어섰다.

    특히 이날 증시에서는 부실자산 정리계획의 수혜가 예상되는 금융주들이 일제히 반등하면서 지수의 급등세를 이끌었다.

    씨티그룹이 20% 가까이 오른 것을 비롯해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26.0% 올랐고 JP모건체이스가 24.7%, 바클레이즈가 30.1%나 각각 급등하는 등 대부분의 금융주들이 큰 폭으로 반등했다. 보너스 파문의 주역인 AIG도 17.5%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미국의 부실자산 정리계획으로 유럽 각국의 증시도 급등세를 보였다.

    이날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의 FTSE100 주가지수는 3.06% 급등한 3960.51로 거래를 마쳤다. 프랑스 파리증권거래소의 CAC40 지수는 2.97% 오른 2,873.99, 독일 프랑크푸르트증권거래소의 DAX 지수는 2.73% 상승한 4,179.64로 각각 장을 마감했다.

    미국의 부실자산 정리계획 발표에 앞서 아시아 각국의 주가도 일제 상승세를 보였다.

    중국 증시에서는 상하이종합지수가 지난 주말 대비 44.39포인트(1.95%) 오른 2,325.48, 선전성분지수는 238.24포인트(2.76%) 상승한 8,885.75로 각각 거래를 마치면서 6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한국 코스피지수는 28.56포인트(2.44%) 오른 1,199.50으로 마감했다.

    도쿄 증시의 닛케이지수는 지난 주말보다 269.57 포인트(3.39%) 상승한 8,215.53으로 마감돼 약 2개월 만에 8,000선을 회복했다.

    ◇ 국채.달러.금 가격 일제 하락

    주가 외에도 금융시장에서는 달러와 국채, 금 가격이 일제히 떨어지는 등 금융불안으로 안전한 자산을 사겠다는 움직임이 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오후 4시7분 현재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유로 환율은 1.3642달러로 지난 주말 1.3582달러보다 0.4% 상승(달러가치 하락)했다. 엔-유로 환율도 132.44엔으로 전주말 130.29엔보다 1.7% 상승(엔화가치 하락)했다.

    엔-달러 환율은 전날 95.94엔에서 97.08엔으로 올랐다.

    여타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0.4% 떨어졌다. 이 지수는 지난주 4.1% 하락해 1985년 9월 플라자합의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지난주 미 연준의 국채매입 방침발표 직후 급등했던 국채가격은 하락세를 보였다.

    이날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오후 3시55분 현재 0.04%포인트 오른 2.67%를 기록했다. 2년 만기 국채 수익률도 0.03%포인트, 5년 만기는 0.05%포인트가 각각 올랐다.

    금융불안에 대한 우려가 진정되면서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선호됐던 금 가격도 떨어졌다.

    4월 인도분 금 가격은 전 주말보다 3.70달러(0.4%) 하락한 온스당 952.50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유가는 금융불안 해소와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배럴당 53.80달러로 1.73달러(3.3%) 올랐다.

    ◇ 금융불안 해소 전망 엇갈려

    이날 발표된 내용은 금융불안 해소를 위한 정부의 계획이 구체화됐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밀러 테이백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최고경영자(CEO)인 버드 해이슬릿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시장이 재무부에게 더욱 분명한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면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이 있지만, 좀더 분명해진 것은 사실이다. 시장은 앞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씨티그룹 등 그동안 주가 상승의 발목을 잡던 일부 부실 금융회사들이 최근 수익이 났다고 밝히면서 일부 주가가 오르기도 하는 등 호전 기미가 보였었지만, 그래도 이들 금융업체의 근본적인 부실에 대한 우려감은 상존해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날 재무부의 발표를 이런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을 떼어냄으로써 각 은행이 부실자산이나 부실여신을 털어내고 '깨끗한 은행'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시장에 확신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날 발표된 계획이 민간의 참여 정도에 따라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날 주가의 반등도 근본적인 추세 전환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며 앞으로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많다.

    주가의 반짝 반등은 하루짜리 호재의 효과로 그칠 수도 있기 때문에 주가 반등보다는 이번 계획에 대한 민간의 참여가 늘어 부실자산 처리방안이 제대로 작동되는지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 씨포트증권의 플로어트레이더 테드 와이스버그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다우지수가 9,000까지 상승하면 이를 강세장(불마켓)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현재와 같은 위기하에서는 변동성이 심하기 때문에 이를 약세 장세 속의 일시적 반등(베어마켓 랠리)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