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9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베이징 올림픽 성화의 서울 봉송 과정을 지켜보던 국민은 잠시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중국인 시위대가 한국 및 티베트인 인권운동가들에게 거침없이 폭력을 휘둘렀다. 보도블록에 쇠파이프와 스패너까지 동원됐다. 중국인 수십 명은 겁에 질려 호텔로 피신한 반(反)중국 시위자를 쫓아가 “다스타(때려 죽여라)”를 외치며 무차별 구타했다. 호텔 로비에 있던 손님들이 놀라 대피할 정도였다. 한국에서도 이럴진대 티베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을 만한 광경이었다.

    닝푸쿠이 주한 중국대사는 어제 우리 외교통상부를 찾아 성화 봉송이 순조롭게 마무리돼 고맙다며 자국민의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유감을 표시했다. 중국 언론은 “유학생을 비롯한 중국인들이 자발적인 애국심을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이웃 나라 수도에서 올림픽 평화정신을 짓밟는 폭력을 휘두른 것을 ‘애국심’이라고 하는 저들이 놀랍다.

    중국 당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이나 티베트 유혈 진압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성화 봉송에 적극 협력한 것은 바로 올림픽의 평화정신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채화된 성화는 한국에 오기까지 16개국을 거쳤지만 이번처럼 중국인들이 티베트 지지 시위대와 현지 경찰까지 공격한 일은 없었다. 서울 직전에 성화를 봉송한 일본 나가노에서도 중국인들의 집단행동이 있었지만 이렇게 폭력적이지는 않았다. 중국인들이 한국을 만만하게 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국 경찰도 반중국 시위대를 막기에만 급급해 중국 시위대의 폭력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

    서울에서는 며칠 전부터 중국인 유학생 커뮤니티에 집회 공지가 떴고, 티셔츠 3만 개와 오성홍기 3만 개가 반입됐다고 한다.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증거다. 중국 정부는 한국민의 반중(反中) 감정이 더 악화하지 않도록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