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4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노재현 문화스포츠 에디터가 쓴 '뉴라이트, 지금부터가 위기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진홍(66·목사)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의장이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 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이란 좋은 대통령감이 있어 2005년 6월 뉴라이트(New Right)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뉴라이트 태동기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개혁보수 세력 집권에 기여하자는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1941년생 동갑내기고 지난 20년간 두텁게 우정을 다진 친구 사이라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김 목사 인터뷰와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다. 지난해 11월 19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박형규 목사, 함세웅 신부, 작가 황석영·고은 등 ‘재야 원로’ 16명이 범여권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런데 문인·종교인이 힘 합쳐 썼다는 성명서가 내게는 무척 비(非)문학적이고 비종교적으로 비쳤다. “대선이 한 달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는 정교하고 효율적인 정치 공학을 통해 최대한의 연합 세력을 달성하는 것이 민주개혁세력이 역사 앞에 책임져야 할 임무”이고 “이런 노력에 동참하지 않고 여전히 분열된 채로 민주대연합에 방해가 되는 정치 세력은 거짓 민주평화세력”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존경하던 평론가요 작가들이 낯빛 하나 붉히지 않고 ‘정치 공학’을 주문하다니. 참 생경하고도 우울했다. 결과적으로 74%의 유권자는 ‘거짓 평화민주세력’에 동조한 셈인데, 원로들은 아직 일언반구 해명조차 없다.

    특정 정치인의 성패를 자기 개인은 물론 ‘민주세력’ ‘시대정신’ ‘민의’와도 동일시해버리는 독단과 아집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백낙청 교수 그룹의 성명에는 중대한 판단 착오까지 겹쳐져 있다. “이명박이란 좋은 대통령감이 있어…”라는 김진홍 목사의 발언에서 나는 나중에 백 교수 같은 실책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실마리를 엿본다.

    뉴라이트 운동의 불씨를 지핀 단체는 2004년 11월 출범한 ‘자유주의 연대’였다. 신지호 자유주의 연대 대표는 “2004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연세대 특강에서 ‘합리적 보수니 따뜻한 보수니, 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 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단체 설립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2005년 11월에는 김진홍 목사, 제성호 교수 등이 대중 조직인 ‘뉴라이트 전국연합’을 창설했다. 이론에 강한 자유주의 연대·뉴라이트 재단을 ‘이론적 뉴라이트’, 대중 조직에 강한 뉴라이트 전국연합을 ‘대중적 뉴라이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명박 당선인의 캐치프레이즈인 ‘선진화’는 자유주의 연대의 창립선언문에도 일찌감치 등장한다. 뉴라이트와 이명박 정부와는 그만큼 떼려야 뗄 수 없는 측면이 강하다. 한나라당 후보 경선 직후 뉴라이트 진영의 역할을 이론(자유주의 연대)과 실천(전국연합)으로 나눠 교통정리해 준 이가 바로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승리한 지금, 거꾸로 뉴라이트 운동에는 본격적인 위기가 시작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타산지석이 필요하다면 참여연대를 보라. 참여연대의 전·현직 임원 416명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청와대와 정부 고위직을 지냈다는 통계가 있다. 참여연대 출신은 김영삼 정부 시절 22개 직책, 김대중 정부에서 113개 직책, 노무현 정부에서 158개 직책에 진출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정부 부처마다 정책을 입안할 때 참여연대의 정책보고서를 먼저 참고하지 않는 부처가 없을 정도였다. 뉴라이트도 그 전철을 밟을 것인가.

    김진홍 목사가 대통령취임준비위 자문위원에 임명되는 등 이미 몇몇 뉴라이트 인사가 새 정부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뉴라이트의 본령과 초발심(初發心)은 누가 지킬 것인가. 더구나 올해는 건국 60주년이다. 대한민국의 발자취와 빛나는 성취를 객관적으로 밝히고 알릴 사람이 어느 때보다 많이 필요하다. 너도 나도 권력의 품으로 들어가면, 기껏해야 ‘이사모’ 역할에 만족한다면 뉴라이트의 앞날은 정말 암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