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창간특집으로 연재되었던 신용하 교수의 '다시 보는 한국역사'는 우리 역사 연구의 새로운 장(場)을 여는 역작(力作)으로 평가받을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교수는 10회에 걸친 연재에서 우선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과 일본의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과 같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을 구체적인 자료 제시와 고증을 통해 통렬히 반박하였다. 이로써 그동안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소극적이었던 정부와 학계의 대응에 일침을 놓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 고대사의 지평을 유라시아 대륙까지 확장시켰다는 점이다. 신교수는 고조선을 기원으로 삼는 민족과 국가가 한반도, 만주, 몽골, 중앙아시아, 터기, 일본 그리고 핀란드와 에스토니아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또한 한(漢)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기원전 2세기 전까지 동아시아 고대사가 한국 고대사와 중국 고대사로 양분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이로써 그동안 거대한 중국과 왜소한 한반도로 고착되었던 우리의 사대적(事大的) 역사 인식에 대한 전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한민족(韓民族)이 광활한 대륙을 경영했던 우수한 민족이라는 점을 입증해 줄 수 있는 쾌거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는 과거 오랫동안 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 원인은 바로 오랜 시간에 걸쳐 자행된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이라는 외적 요인과 이에 따른 사대사관과 식민사관이라는 내적 요인에 의해 우리 역사가 철저하게 유린되어 왔고 게다가 수많은 전란에 의해 진실을 밝혀 줄 무수한 역사서적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 역사는 5천년을 넘는 자랑스런 대륙역사를 잃어버린 채 2천년의 반도역사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우리 민족은 민족의 우수성에 대한 자긍심과 진취적 기상을 상실한 채 패배주의적이고 소아병적인 민족으로 매도되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최근 들어 이데올로기 사관과 제3세계 사관의 영향에 따라 대립과 투쟁, 이념과 가치관의 혼란으로 국론의 분열과 도덕관념의 상실을 가져와 국가의 기틀마저 무너져 버리는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러면 자랑스런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현대적 가치는 무엇인가? 역사는 바로 인간이 살아온 삶의 경험철학(經驗哲學)이다. 역사는 현재가 있게 한 근원이자 미래를 제시할 방향타이다. 역사는 지나간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는 실체이다. 그러기에 역사는 한 나라의 국민으로 하여금 자아(自我)를 일깨워 주고 위기 시에는 국민을 단합시켜 주며 미래를 향한 창조적 역량을 결집시키는 가치 있는 기반이 된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힘인 것이다.

    이제 우리 민족이 자랑스런 대륙역사를 계승하여 동북아의 번영과 발전을 주도하는 민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하여 이를 토대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자녀들이 지도자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이들로 하여금 남과는 다른 자질을 발견토록 하고 이들에게 남과는 다른 소양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도 마찬가지이다. 국민들로 하여금 다른 나라의 국민과는 다른 위대한 자질이 배어 있음을 확인시키고 이를 미래 발전의 원동력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것이 올바른 자아인식이며 그 근본은 올바른 우리 역사를 찾아 가르치는 일이다. 다행히 우리 민족은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른 나라의 국민이 갖고 있지 못한 자산을 갖고 있다. 하나는 유장(悠長)한 대륙역사를 가진 우수한 민족의 후예라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30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성공적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자산을 매우 소중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자를 역사적 의미의 자아인식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현대적 의미의 자아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두 가지 자아인식을 통하여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확신하고 국민의 창조적 역량을 결집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자아인식을 위한 노력의 첫걸음은 올바른 우리 역사를 찾는 일이며 그 핵심은 사대사관과 식민사관의 망령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각에서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들어 우리의 자랑스런 대륙역사가 조금씩 밝혀져 가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저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확산되어 가고 있다는 점은 실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단재 신채호 선생을 비롯한 일제시대의 항일 민족 사학자와 이들의 민족사관을 계승하여 현재에도 갖은 어려움 속에서 계속되고 있는 재야 민족 사학자들의 눈물겨운 노력의 결실인 것이다. 더욱이 점차 문헌사학과 고고학의 접목이 이루어지면서 이들의 연구가 결코 우리의 역사를 과대 포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체계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 국민의 성원과 이들 민족 사학자들을 포함한 모든 역사 연구자들의 노력을 통해 올바른 우리 역사를 찾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역사 연구의 방법과 시각에서 새로운 시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첫째 방법론적 차원에서 관련 학문과의 접목을 폭넓게 시도해야 한다. 현대 역사학은 문헌사학과 고고학의 단순한 접목에서 탈피하여 점차 이들 학문에 인류학, 언어학, 사회학을 폭넓게 접목시키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시간에 대한 종적 연구와 공간에 대한 횡적 연구를 접목시킴으로써 역사 연구의 깊이를 더하고 시야를 좁은 한반도에서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역사 연구자들의 편협한 시각을 확대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역사 연구는 주로 문헌사학에 의존해 왔고 이 또한 주류 쪽의 강단사학과 재야 쪽의 민족사학으로 양분되어 진행되어왔다. 이들 두 학파 사이에는 우리 역사를 보는 기본적인 입장뿐 아니라 근거 자료와 연구 방법에 있어서도 상호 보완보다는 상호 대립적 시각을 가져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이들 역사 연구자들의 각성과 협력을 통해 역사 연구의 새로운 장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는 미래는커녕 현재의 생존조차 어렵다는 점은 세계의 흥망사(興亡史)가 주는 교훈이다. 역사를 잃으면 머지않아 영토마저 잃게 된다는 점 또한 세계의 침략사(侵略史)가 주는 교훈이다.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서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임나일본부설과 같은 허무맹랑한 논리를 이길 수 없고 이들 논리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실질적 영토 침략을 막을 수도 없다. 국민의 각성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역사 연구자들의 진실된 참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