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30일자 오피니언면에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는 중등학교의 국어, 국사, 도덕 교과서를 국정(國定)에서 검정(檢定)으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학교혁신을 위한 교과서 발행제도 개선방안’을 다음 달 교육부에 제안할 것이라고 한다. 원칙적으로 국정의 폐지와 검정제의 도입은 교육내용을 다양하게 하고, 경쟁을 촉진하며, 이에 따라 민간이 창의성을 발휘해 교과서 질을 개선할 수 있게 한다. 문제는 검정제를 어떻게 추진하는가이다.

    국사교과서 검정제 추진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이를 추진하는 교육혁신위원회나 교육부가 검정제로 인해 발생할 새로운 문제점에 대해 적극적인 대책을 전혀 내놓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검정제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찬성하는 사람들이 검정제로의 전환에 의해 생길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논의를 회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우리는 7차 교육과정 시기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의 검정 발행으로 인해 역사교육의 파행을 겪은 일이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분단의 원인처럼 서술하고,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 과정에서 생긴 독재와 부패를 부각시켜 부정적인 인식을 심으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서술한 교과서가 전국 754개 고교에서 사용돼 채택률 50%를 넘어섰다. 이처럼 드러난 문제점도 해결하지 않은 채, 검정제를 중고등학교의 국사교과서로 확대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제정신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의 국사교과서 검정제 추진에 다른 속셈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검정제로 전환되었을 때 교과서를 집필할 수 있는 한국근현대사 연구자들의 대다수는 유감스럽게도 70~80년대부터 한국사회 변혁운동의 일환으로 연구를 시작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검정제로 전환하게 되면 국사교과서는 이들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사관을 주입해, 한국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는 셈이다.

    게다가 역사교육현장에서는 대한민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서술한 역사교과서를 대거 채택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 이미, 기존의 국정교과서에 반대하여 대안교과서를 냈던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우리나라 전체 역사교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1800여 명을 회원으로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그 대다수는 전교조의 핵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은 ‘다양한 역사교과서’를 명분으로 검정제를 적극 환영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다양성’이 자신들의 편향된 역사관을 수용하라는 요구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역사교육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민족 및 국가와 어떠한 관계를 형성할 것인지를 가르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열어 나갈 학생들이 자신의 조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해서는 국가의 기강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교육혁신위원회 내에서도 국사교과서의 검정 전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고, 그 결과 공청회도 연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떠한 적극적인 대책도 발표되지 않은 채 검정제 추진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을 보면 이의 추진을 강행하려는 특정 세력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케 한다.

    원래, 교과서란 국민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충분히 음미한 내용과 공통의 견해 및 사고방식을 중심으로 편성한 교재이다. 특히 역사교과서에는 공적인 검증이 더 필요하다. 국사교과서의 검정전환 논의는 검정이냐 국정이냐가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적인 검증’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가 초점이 되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검정제로 가도 좋을 것인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