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2일 사설 '불법시위에 무릎꿇은 경찰청장의 변명'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택순 경찰청장이 그저께 경찰들에게 평화적인 집회.시위 문화 정착에 관한 e-메일을 보냈다. 그는 실패했다고 자인하면서도 해괴한 논리로 변명했다. "무한대의 자유도, 숨 쉴 수 없는 통제도 모두 민주주의 근본은 아니다. 공권력 남용으로 보이지 않도록 인내와 자제를 유지해왔다"고 적었다. 법에 따라 국민 안전과 사회 질서를 지켜야 하는 경찰청장의 얼토당토않은 책임 회피에 말문이 막힐 뿐이다.

    그는 "민주주의의 근간은 자유와 질서의 토양 속에서 뿌리를 내린다"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질서는 책임에서 나온다. 누구나 자유를 누리되, 책임지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집회.시위의 자유도 법의 테두리 안에 있다. 누구라도 이를 어기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 경찰의 의무다. 그런데 이를 '숨 쉴 수 없는 통제' '공권력의 남용'으로 생각하는 그에게 경찰청장의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미국 경찰은 합법 집회.시위는 최대한 보장하지만 불법 행동에는 엄격 대응한다. 그러나 경찰청장은 오히려 "한국에선 적용될 수 없는 교과서"라며 "말 안 듣는다고 시위대를 총으로 쏘고 죽도록 패고…"라고 비난했다. 미국이 시위대가 말을 듣지 않으면 총을 쏘는 절대독재 국가란 말인가. 우리 경찰이 제 역할은 못하고 있는데 대해 총수로서 반성하면 됐지 왜 다른 나라를 끌고 들어가는가. 한국에선 폭력 시위를 일삼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대가 올해 미국 원정시위에선 조용하게 행동하고 돌아왔다. 경찰청장은 그 이유를 진정 모르는가.

    그동안 우리 경찰이 왜 시위대에 무기력했는지 명확해졌다. 지난해 말 농민 두 명이 시위 도중 숨져 청장이 경질된 후 보신주의 때문에 경찰이 움츠러들었기 때문이다. 청와대.시위대 눈치를 보는 경찰청장으로 인해 불법 집회.폭력 시위는 갈수록 늘고, 국민의 불편과 피해는 극에 달했다. 부상당한 전.의경들은 부지기수다. 공권력은 누더기가 된 지 오래다. 이 점에 대해 깊은 반성이 먼저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