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에 조동호 한국개발연구원 북한 경제팀장이 쓴 시론 '개성·금강산 지키려다 더 큰 것 잃는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DJ정부의 출범 직전, 새 정부를 준비하던 인수위에서는 ‘국민의 정부’ 국정지표를 다방면으로 모집하였다. 내가 근무하는 연구원으로도 아이디어를 달라는 의뢰가 왔고, 나는 ‘100년을 위한 5년’이라는 구호를 적어 보냈다. 새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5년을 위한 100년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신념이었다. 특히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더욱더 그랬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에서 긴 호흡을 가진다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을까. 반드시 임기 내에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실패로 인식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을까. 금강산 관광사업에 ‘햇볕정책의 옥동자’라는 표징(表徵)이 붙고, 통일부가 매년 발간하는 ‘통일백서’에는 금강산 관광사업이 대북정책의 성과로 크게 기술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자의적인 과장 홍보나 다름없다.

    예를 들어 정부가 벤처기업 활성화 조치를 내놓았고, 어떤 사업가가 퇴직금과 대출금을 자본으로 수년간 피땀 어린 노력을 해서 성공을 했다고 하자. 그러면 이는 그 사업가의 노력과 모험의 성과인 것이지, 활성화 조치의 성과라고 한다면 낯간지러운 일이다. 만약 사업이 실패했으면, 정부 정책이 실패했다고 할 것인가.

    하지만 이러한 아전인수(我田引水)격 해석은 ‘참여정부’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다만 개성공단 개발사업이 현 정부 들어와 본격 추진되면서 지난 정부의 금강산 관광사업보다 더 밝은 조명을 받고 있다는 점이 차이일 뿐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유엔 안보리 결의 이후 금강산과 개성공단 사업의 중단 여부가 국제사회의 논란으로 등장한 것은 정부의 자업자득인 측면이 강하다. 이들 사업은 엄연히 민간사업인데도 정부가 포용정책의 성과로 선전을 해 온 결과, 마치 정부사업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가 이들 사업을 중단시킬 수도 없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32조는 부정한 방법으로 승인을 얻었거나 공공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사업을 취소시킬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업의 완전 중단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핵실험 이후에도 아무 일 없었던 듯 기존대로 사업을 지원하는 것도 문제이다. 북한이 핵실험 계획을 발표한 직후, 통일부 장관 스스로 “핵실험을 하면 구체적인 정책방향이 달라질 것”이라고 언급하였으나, 달라진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국회 시정연설에서 ‘유엔안보리 결의안 정신과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에서’ 란 전제를 달긴 했지만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초점을 ‘우리’에게 맞추면 된다. 남북관계도 중요하지만, 우리 국민과 우리 경제에 더 큰 신경을 쓰고, 국제사회의 흐름에서 이탈해 더 큰 것을 잃지 말아야 한다.

    개성공단에 가동 중인 17개 업체도 중요하지만 대외신인도 하락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우리 경제의 320만개 업체가 더 중요하다. 금강산 관광객이 줄어드는 것도 걱정이지만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관광객 수가 줄어들 것을 더 염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실험 첫날 주식시장에선 21조5000억원이 허공으로 사라졌고, 전체 주식의 93%가 하락하였을 정도로 우리 경제에 대한 충격은 컸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한다고 해도, 아직 핵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이제는 일시적이나마 정부 지원의 중단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유엔 회원국으로서의 의무일 뿐 아니라 우리 경제를 바라보는 해외 투자가들을 안심시키는 길이다. 더욱이 연간 수십억원에 불과한 금강산 관광 보조금과 개성공단 부지조성공사 지원을 중단한다고 해도, 사업의 지속에는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우리 경제에 밝은 외국인 분석가는 얼마 전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전했다. “우리가 불안한 것은 북한 핵이 아니라, 이에 대응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