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은 2일 정계개편 등 당의 진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의원총회를 열어, 당 비상대책위원회에 모든 준비 논의 작업을 일임하고 정기국회가 끝난 뒤 다시 의총을 열어 결과를 보고받아 향후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원내공보부대표 노웅래 의원은 2시간 30분여간 진행된 의총이 끝난 직후, 브리핑을 통해 “열린당은 정계개편 등과 관련해서 체계적이고 질서있고 심도있게 논의하기로 했다”면서 “당 비대위가 향후 정치 일정을 책임 있게 논의하고 그 결과를 정기국회가 끝난 직후 의총에서 보고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노 의원은 이어 “이날 의총에서는 ‘이대로는 안 된다. 이제는 변화하고 환골탈태해야 한다’는데 소속 의원들이 공감대를 가졌다”면서 “자신의 반성, 책임을 통감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자는데 의견을 함께 했다”고 말했다.

    당초 이날 의총은 당의 진로를 놓고 ‘당 해체’를 주장하는 통합신당파와 ‘당 사수론’을 외치는 당내 ‘친노(親盧)’ 진영간의 격한 갈등이 표출되면서 당내 갈등이 일거에 폭발할 것으로 예상됐었지만, 당의 운명이 걸린 문제인 만큼 신중한 분위기속에서 의외로 차분하게 진행됐다. 정기국회 회기 중인 상황에서 당 내부의 ‘중구난방’식의 걷잡을 수 없는 정계개편 논의가 진행될 경우, 자칫 당면한 국정현안을 외면하는 집권 여당으로 비쳐지면서 정계개편의 본격논의 시작에 앞서 ‘공멸’할지도 모른다는 당내 각 계파간의 위기의식의 우선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계개편 등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노골적으로 표면화된 상황에서 이날 결정은 다분히 정계개편 논의 자체를 유보한 꼴로밖에 비쳐지지 않고 있는데다가, 의총을 계기로 당내 각 계파간의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난 만큼, 시간을 끌면 끌수록 더욱더 당내 합의점을 찾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정치권 안팎의 시선이다.  

    특히 당 비대위에 책임 있게 논의키로 맡긴 정계개편 등의 정치 일정 범위를 놓고서도 소속 의원들간 입장이 명확하지 않은데다가 비대위 구성의 당내 각 계파별 인적 측면을 감안했을 때도 사실상 이날 결정은 ‘지금부터 본격적인 세불리기를 통해 정기국회 직후에 곧바로 대결전을 벌여보자’는 식의 당내 각 계파간의 대결구도가 기저에 흐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정기국회 우선 집중’은 표면적인 명분일 뿐, 사실상 정계개편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분석이다. 

    당 비대위에 책임있게 논의키로 맡긴 정계개편 등의 정치 일정 범위와 관련, 노웅래 의원은 “정계개편의 방향과 내․외부세력과의 연대 문제 등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다뤄지지 않겠느냐”면서 사실상 비대위 주도의 정계개편 논의 쪽에 무게를 실은 반면, 친노그룹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당내 친노그룹 진영은 비대위가 준비해야 될 정치 일정의 범위를 전당대회 준비 일정의 성격으로 국한하는 모습이다. 김형주 의원은 “비대위가 준비하는 (정치 일정) 논의는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성격의 모습을 띄어야 한다”면서 “그것에 대한 당내 의견 일치가 쉽지 않기 때문에 다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국회 이후 본격적인 대결구도가 불가피하다는 모습이다.

    한편, 이날 의총에서는 조기 전당대회 개최 여부 등 세부적인 일정에 대한 언급은 소속 의원들의 자제로 격한 논쟁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향후 당의 진로를 논의하기 위한 특별기구 설치 문제 등을 놓고서는 적잖은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다.

    전 당의장인 신기남 의원은 “자기를 부정하는 정당을 국민이 어떻게 신뢰하겠느냐, 자기 살길을 위한 당 해체론은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김근태 의장의 중심으로 한 재야파 소속의 유선호 의원은 “때가 됐으니 신당 얘기를 하자, 통합신당 논의를 위해 비대위 중심의 태스크포스팀(TFT)을 만들자”고 했으며,  중도성향 의원모임인 ‘희망21’ 양형일 의원도 “정계개편(논의)이 벌써 시작된 것 아니냐.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질서있게 논의하자”고 말했다.

    장영달 의원은 “여당으로서 국정을 챙기는 모습이 중요하다. 지금 정계개편 논의는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고 전제한 뒤 “고건씨와 민주당만과의 통합은 안 된다”고 말했으며, 김영춘 의원은 “지금이 정계개편을 논의할 때냐”고 하자, 장경수 의원은 "우리 당의 색깔을 찾아야 한다. 지금 죽느냐, 사느냐 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정계개편 논의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건강한 로드맵 마련을 위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맞섰다.

    최규성 의원은 “대통합신당을 위한 논의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그거 만든다고 정기국회가 어떻게 되지 않는다”며 “열린당 창당 부분은 옳았다. 현재 지지를 못 받고 있다는 사실, 이 부분을 반성해야 한다”고 했으며, 이석현 의원은 “비대위 안에 정계개편 논의를 위한 특별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의원들이 비대위 내부에 정계개편 등의 논의를 위한 기구 설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보이자, 의총 마지막 무렵 김근태 의장이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정리하는 형태로, ‘정계개편 논의 등을 위한 기구를 만들어 조율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곧바로 전 국회의장 김원기 의원이 나서 “또 기구를 만들면 일이 생기고 복잡해진다. 옥상옥이 되어서 새로운 부작용이 생긴다"면서 비대위 내부에서의 질서있고 체계적인 논의를 강조했다. 이에 대해 소속 의원들은 김원기 전 의장의 발언에 만장일치로 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