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년 열두 달 중 어느 달 하나라도 애틋하지 않은 달이 없지만 10월만큼 서정적으로 다가오는 달도 없을 것이다. 분주한 봄과 정열적인 여름의 수고에 대한 대가로 달콤한 열매를 음미하며 고단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는 가을의 정점에 시월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이 높아져 여유로운 공간만큼이나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춘천 의암호를 찾았다. 구름 한점 없는 호수 면에 낮은 산들이 알록달록하게 제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나무들의 화려한 변신을 보며,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그네들의 모습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부끄러움은 무엇인지, 이 떳떳하지 못함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호수 곁에 말없이 서있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잠시 고민에 빠지게 된다.

    ‘환경호르몬’, ‘환경의 역습’ 등 연일 매스컴에서 경종을 울리는 환경에 대한 문제는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들의 모습은 과녁을 옆에서 지켜보는 구경꾼의 모습을 닮아 있다. 자신은 과녁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저 그 과정을 지켜보며 무관심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활시위를 떠난 빠른 화살의 움직임을 그동안 자연의 인내로 가까스로 붙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가 인간에게 주는 정신적, 육체적 혜택이 과연 정량화 될 수 있을까? 방짜유기와 같은 불편함에서 편안함을 찾은 조상들의 지혜에 숙연해지는 것은 내 자신이 그만큼 자연과 멀어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자연이 주는 혜택에 대한 인간의 보답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호수에 부딪히는 해질녘의 눈부신 햇살에 색동옷 차려 입은 나무들이 더욱 흥겹게 화답을 한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작은 눈과 마음에 다 담아가지 못하는 아쉬움과 우리를 지켜주는 고마움을, 아무런 불평 없이 비탈에 서있는 작은 나무에게 전하며 의암호를 뒤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