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 '데스크 시각'란에 이 신문 조용 편집국 부국장이 쓴 <노 정부의 ‘우회전 깜빡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북한이 끝내 9일 오전 핵실험을 강행했다. 미국 국방장관의 며칠전 경고가 아니더라도 이제 한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다른 세상’을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당장 실물경제의 바로미터라는 주가가 폭락했다. 우려스럽게도 이는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추가 상황 악화로 야기될 파국의 시나리오는 떠올리기조차 끔찍하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무슨 일이 있어도 최악의 국면만은 피해야 한다. 현재로선 백척간두에 선 대한민국의 생존을 도모하는 길은 자명하다. 6자회담에 참여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 긴밀히 공조하면서 내부적으로는 국론을 하나로 결집해야 한다.

    문제는 그 중심에 서야 할 노무현 정부가 국민적 불신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북핵 위기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노 정부는 ‘별 일 아니다’는 식으로 둘러대며 국민을 ‘억지 안심’시켜왔는데 드디어 그 ‘별 일’의 실체와 함께 그간 국민 기만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처럼 대다수 국민이 노 정부의 위기 대처 의지와 능력을 미덥게 여기지 않는 현실이 북한의 핵실험 자체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심각한 안보불안 요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노 대통령은 취임초부터 지금까지 몇차례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용납할 수 없다’는 원칙적 입장을 천명하긴 했다. 이번에도 4일 국무회의에 이어 5일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에게 “북한이 핵실험을 할 수 없도록 강력히 엄중 경고하라”고 거듭 지시했었다. 하지만 ‘강력’‘엄중’같은 센 표현에도 불구하고 이 발언들에는 별반 힘이 실리지 않았다. 적어도 국민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바로 “핵무기가 자위수단이라는 북측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대포동 미사일 발사는 실제 군사적 위협이 아니다”처럼 북핵·미사일 개발을 양해·두둔한 듯한 과거 언급들이 국민의 기억에 생생히 중첩됐기 때문이다. 국민이 그 진정성을 의심하는 ‘북핵 불용(不容)’ 메시지를 김정일 정권이라고 귀담아 들었을 리 없다.

    그간 노 대통령의 상호 모순된 발언과 처신 사례는 한두번이 아니다. 평소 “반미면 어때”라며 ‘자주의 화신’을 자처하다가 2003년 첫 미국 방문때는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난 지금쯤 (북한)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있을 것”이라는 극단적 친미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좌편향의 4대 입법을 무리하게 밀어붙여 보수진영의 격렬한 반발을 사더니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으로 진보진영과도 담을 쌓았다. 철천지 원수처럼 공격하던 한나라당을 향해 권력을 통째로 넘겨주겠다며 대연정을 제의한 것은 노무현식 변신의 절정이었다. 급기야 노 대통령은 자신의 노선을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모순어법으로 얼버무렸다. 노 정부가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거나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한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9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과거처럼 북한의 모든 행위에 인내·양보할 수 없다”면서 대북 포용정책 재검토 방침을 시사했다. 일방적 북한 눈치보기·감싸기·비위 맞추기·퍼주기와의 결별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인 노선 수정이 기대된다. 하지만 그 정도 언급만으로는 대북 정책 실패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불신을 씻어주기엔 크게 미흡하다. 진심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면 김정일 정권의 의도를 오판해 안보를 소홀히 한 책임부터 솔직히 시인·사과하고 상응한 인사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탈권위와 파격적 소통’의 리더십을 강조해온 노 대통령이라면 그렇게 못할 것도 없다.

    노 대통령은 오랜 시행착오 끝에 오른쪽 깜빡이를 켰다면 확실하게 우회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