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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배인준 논설실장이 쓴 <대통령의 ‘자존심 장사’>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존심의 화신(化身) 같다. 오늘도 스스로 자존심을 높이고, 국민의 자존심을 북돋우는 연설을 할 듯싶다.
하지만 광복 61주년을 맞으며, 대일(對日) 무역적자가 사상 최대라는 산업자원부 발표를 듣자니 나는 자존심이 상한다. 올해 상반기 일본에 대한 수출(130억 달러)은 수입(255억 달러)의 반이다. 그래서 현 정부 2년차이던 재작년 상반기의 달갑잖은 신기록(122억 달러)이 다시 깨졌다.
‘말 폭탄으로 일본을 깬’ 기록이 노 대통령만큼 화려한 전임자는 없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는 한마디로 파란을 일으켰지만 말 폭탄 발사 빈도나 외견상의 전의(戰意)가 노 대통령에게는 못 미쳤다. YS는 버르장머리를 고치기는커녕 1997년 외환위기 전후 일본자금의 위력 앞에 패장의 모습을 보였다. 지금 최악의 대일적자 성적표를 받아 든 노 대통령의 자존심은 온전할지 궁금하다.
북한이 미사일을 쏜 뒤, 노 대통령은 북한보다 일본에 더 화를 냈다. 일본이 대북 제재를 주도하자 “일본과는 붙어 봐야 한다”고 했다. 이런 말은 국익과 민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나는 단정한다.
정말로 자존심을 걸고 일본을 상대하겠다는 대통령이라면 경제적 의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범국가적 노력을 주도했어야 마땅하다.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 전문성 있는 관료들과 산학연(産學硏)을 풀가동했다면 산업기술 격차를 좁힐 수 있었을 것이다. 세계적 무한경쟁 시대의 대통령이 이런 과제를 팽개치고 3년 반을 허송했다면 광복절 경축사가 무색하다.
대통령의 말 폭탄이 아무리 시원스러운들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 앞에서 국민이 자존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올해 상반기엔 일본에 대한 여행수지도 사상 처음으로 적자(2억 달러)다. 양국관계가 나빠져 일본 속의 한류가 시들해진 탓이 크다니, 대통령의 ‘말 펀치’에 박수만 치기도 뭣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5년 재임 중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열심히 ‘예, 예’ 했다. “한국 대통령은 미국 하자는 대로 예, 예 해야만 하느냐”고 되묻는 노 대통령이 보기에는 자존심도 없는 사람 같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이즈미의 적극적 대미 외교는 패전국 일본의 숙원인 ‘보통국가화’를 앞당기고 있다. 일본의 평화헌법 9조는 군비(軍備) 및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데, 미국은 일본이 이 조항을 개정해 재무장(군사대국화)하는 것을 적극 지지한다. 결국 고이즈미는 부시에게 밀착함으로써 일본이 아시아의 정치 군사적 강자로 다시 떠오를 활주로를 닦았다.
전후(戰後·패전) 61주년의 날, 전범에게 참배하는 고이즈미를 용인할 수는 없다. 다만 노 대통령이 미국에 ‘예, 예’ 하지만은 않겠다고 공언하고, 일본을 비판의 주적으로 삼는다고 해서 국가 자존이 지켜지는 것도 아님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국내 한 민간연구소의 책임자는 아무리 낙관적으로 보려 해도 우리 경제의 내년 성장률이 4%대에 못 미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자칫하면 노 대통령은 전체 임기(5년)를 통틀어 해마다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을 밑도는 성장밖에 이루지 못한 최초의 한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는 “내 임기 동안 경제 걱정은 말라”고 했지만 이런 저성장 성적표를 앞에 놓고도 자존심을 세울 수는 없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오죽 급하면 ‘평생의 색깔’을 뒤집고, 친 기업을 외치며 재벌까지 껴안겠는가. 기업을 살리는 것이 결국 서민을 살리는 길이며, 이것이 정권의 정체성과도 통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정한 셈이다. 노 대통령은 이런 이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또 무슨 자존심 때문인지 사사건건 김 의장의 발을 건다.
요즈음 ‘안보 IMF’가 오는 게 아니냐는 섬뜩한 소리까지 들린다. 이른바 ‘경제 IMF’는 “펀더멘털(기초조건)이 튼튼한데 웬 소란이냐”던 경제 관료들을 믿고 있다가 맞았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의 위험성을 말하면 “웬 안보 장사냐”고 되받는 정권을 믿고만 있을 것인가. 자존심이라는 말은 아예 꺼낼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면 이미 늦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