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5일자 오피니언면 '광화문에서'란에 이 신문 이동관 논설위원이 쓴 '역사의 추가 오른쪽으로 왔다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뉴라이트 운동을 벌이는 한 시민단체는 최근 인터넷 사이트에 광고를 주기로 한 대기업으로부터 “취소해야겠다. 양해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권력기관에서 ‘압력’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

    이 단체는 지난해 말 북한인권 관련 행사의 후원을 다른 대기업에 요청했다가 “우파(右派)단체 행사는 지원하기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북한인권 관련 국제대학생 행사도 두 대학으로부터 시설 이용을 거절당한 끝에 간신히 S여대에서 열었다. 행사장을 빌려 주기로 했던 한 대학은 시설 사용을 문서로 승인하고도 일방적으로 취소를 통고했다. 이유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학생들과의 충돌이 우려된다”는 것이었지만, 행사 주최 측 관계자는 ‘압력’이 작용한 것으로 확신한다.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는 다른 사회단체는 그나마 소액 후원금을 내는 중소기업들로부터도 “이름만은 밝히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단체 관계자는 “지적인 호응은 커지고 있지만 ‘시장’이나 ‘자유’를 이름으로 걸고 있는 단체에 돈을 내면 후환(後患)이 두렵다는 게 기업 쪽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세금 깎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납세자연맹은 지난해 국세청으로부터 “한 달간 세무조사를 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제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탈루 내용은 연봉이 1300만 원 정도인 상근 직원 4명의 갑근세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서면조사로 대체돼 27만 원의 벌금 처분을 받았지만 재계에 미친 영향은 컸다. “정권 코드에 어긋나는 짓을 하면 재미없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문화계 쪽 ‘좌파(左派) 코드’는 더 광범위하고 뿌리 깊다. 작가 L 씨는 최근 노무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정치소설을 쓰면서 등장인물을 모두 익명으로 바꾸었다. ‘정권 코드’가 만들어내는 알 수 없는 두려운 분위기 때문이다. 김영삼, 김대중 두 대통령의 집권 말기에도 두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소설을 썼지만 그때는 모두 실명이었다.

    자유주의적 어젠다(의제)와 우파적 담론을 담은 책들도 ‘반짝 인기’에 그치고 있다. 작년 11월에 출간된 ‘지성과 반(反)지성’은 1만 부, 올 2월에 나온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3만부 선에서 정체 상태다. 어느 저자는 “여권 주변과 좌파 진영 내에서 ‘이런 책은 사지도 읽지도 말자’는 무언의 담합(談合)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두 곳의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5·31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싹쓸이’로 막을 내린 뒤 “진보 좌파는 이제 끝났다”며 안도하는 소리가 보수 진영 곳곳에서 나온다. 하지만 역사의 진자(振子)는 왕왕 사람들의 기대보다 늦게 움직인다. 더욱이 준비하고 행동하지 않는 세력에는 아예 기회가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추가 왼쪽으로 갔다고 저절로 다시 오른쪽으로 오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내홍을 겪고 있는 열린우리당 내에서 나온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우리는 우향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상등을 켜고 직진(直進) 중이다.” 그런데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