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5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란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의 ‘입’ 이라는 비유는 포괄적이지 못하다. 대통령의 말을 단순히 옮기는 입이 아니라, 대통령과 정권의 수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얼굴이고, 분신이기 때문이다. 최고 통치권자의 말과 글을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는 문사(文士)인 것은 기본 요건이다. 내정과 국제정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경륜과 혜안의 재사(才士)요 전략가. 해외 TV 보도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정부 관리인 만큼 준수한 용모에다 영어 정도엔 능통할 필요도 있다. 신언서판(身言書判), 즉 외모·언변·문장력·판단력이 요구되는 상징적인 국가 벼슬이 청와대 대변인이다.

    1979년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다음날 새벽 중앙청 기자실 칠판에 한자로 ‘有故(유고)’ 라고 공지함으로써 박 대통령의 서거를 처음 알리는 빛바랜 흑백 화면의 주인공인 김성진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 정권의 ‘게이트 키퍼’ 라는 청와대 대변인을 5년간이나 지냈다. 박정희는 공보비서관을 하던 그를 불러 “임자를 대변인으로 임명할 터이니 앞으로 5년간은 내 밑에서 일하도록 해” 라고 말했다. (한국정치 100년을 말한다·김성진 저) 그로부터 꼭 5년째되던 1975년 박 대통령은 김성진을 문화공보부 장관으로 임명해 청와대로부터 해방시켜준다. 김성진은 모두 9년간 정권의 공보 업무를 주도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24일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이 경기지사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함에 따라 부천 소사구에서 보궐선거가 생기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사표를 내고 내려갔다. 노무현 정권 3년2개월 만에 벌써 네번째 대변인이 나왔다. 김만수는 부천 시의원을 하다가 노 정권 출범과 함께 부대변인으로 있다가 지난번 총선 때 출마해 낙선하자 다시 청와대 대변인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김문수 의원이 의원직 사퇴서를 내기도 전에 청와대 대변인 교체와 후임자 인선 보도가 먼저 나왔다.

    청와대 대변인 자리를 국회의원 보선용 징검다리 정도로 생각하는 몰염치, 권력의 자리에 대한 경외심을 갖지 못하는 무감각. 청와대 대변인으로서 어떤 정신상태에서 어떤 일을 하며 지냈는지는 굳이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어디 청와대에 이런 일이 이것뿐인가. 그럼에도 개혁은 이들의 전유물이다. 다음 정권은 적어도 이런 것만은 배우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