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대중 고문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북(對北)문제에 관한 한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과 ‘퍼주기’로 일관했다. 자신의 정치적 업적을 북한과의 교류, 김정일과의 회담에 설정한 김 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그것의 실현에 전력 투구했다. 그 덕에 DJ는 6·15회담을 성취했고 노벨평화상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국내에서는 나라를 갈등으로 몰아간 결과를 가져 왔다.

    그는 철저히 업적주의에 매달렸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무엇인가 사태를 극적으로 전환시키는 쇼 같은 것을 연출하려 했다. 평양 방문과 6·15 선언이 그 대표 작품이었다. 다시 말해 북한과의 실질적 개선 즉 정치적 화해와 주민들의 고통 분담, 민족 공조와 경제 협력 등과 같은 장기적이고 거시적이고 인류적인 과제보다는 ‘햇볕’ ‘돈 주기’ ‘회담하기’ 등 단발적이고 선전적 요소가 많은 것들에 치중한 셈이다.

    결국 그의 대북정책은 실패했다. 김정일과 만나기는 했지만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낮은 단계의 연방’도 없고 ‘답방’도 없었다. DJ는 이제 와 더 늦기 전에 다시 평양에 가 어떤 마침표라도 찍으려고 하는 모양인데, 현직도 아닌 전직 대통령이 평양에 가 어떤 합의를 하는 것도 우습고, 이런 파행적인 일들이 어떻게 정부 간의 합의에 의해 이뤄지는 지도 이해할 수 없다. ‘6·15’ 증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그는 이제 사물과 사태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병적인 집착에 빠져 있는 듯하다.

    이렇듯 DJ가 그의 정치력을 총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추진력을 얻을 수 없었던 것은 그가 북(北)만을 쳐다봤지 남(南)을 염두에 두지 않은 때문이다. 그는 남쪽이 자기를 거국적으로 따라와줄 줄 알았거나 자신이 그렇게 몰고 갈 자신이 있는 것으로 착각했음에 틀림없다. 그의 대북 행보는 응원자 없는 외로운 ‘자기 과시’로 시종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사람들은 DJ 실패의 원인을 알아차린 듯했다. ‘햇볕’은 결국 북쪽의 권력층에만 비쳤고 ‘퍼주기’는 DJ의 선수(先手)로 인해 재원이 바닥난 데다가 남쪽 국민들 사이에 비아냥의 대상이 돼버린 것을 알았다. 이런 형편과 사정은 그들로 하여금 ‘대북’이 아니라 ‘대남’(對南)으로 시각을 돌리게 했다. 그래서 먼저 남쪽을 변화시킬 필요성에 착안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어김없이 방계조직을 통해 시도됐다.

    더 많은 남쪽 사람들의 금강산 방문, 이산가족의 상봉, 운동경기 등 교류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맥아더 동상 철거 시도 등으로 과거의 금기를 깨고 ‘촛불’로 ‘미군 철수’를 기정화하고 평택 시위로 반미를 ‘상설화’하는 상황으로 끌고 갔다. 각종 과거사 진상 조사를 벌여 과거 북쪽과 연관된 사건들을 재해석하거나 또는 기존의 인식을 뒤집는 작업을 해왔다. 그것은 건국 이래 50여년 간 대한민국의 틀을 잡아줬던 자유, 민주, 시장 등 주류적 이념과 삶의 방식에 중대한 도전이었다.

    문제는 북한문제가 단순히 DJ식 또는 노무현식이라는 접근 방법론의 차이라든가 시각의 교정 또는 인식의 전환이라는 차원에서 다룰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북한문제는 한국인에게 삶의 방식에 대한 가치관(자유민주주의), 살아가는 데 있어 불가결한 환경(시장주의)에 관한 것이며 그것은 대한민국이 건국할 때 잡아놓은 틀(헌법)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전제로 한 것이다. 이 틀을 바꾸거나 수정하려면 국민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정권의 선택만으로는 안 된다.

    이것은 정권을 누가 잡느냐의 선택을 훨씬 뛰어넘는 공동체적 사안이다. 선거에서의 승리로 정권을 잡았다고 그런 국가적 틀에 대한 교정의 권한까지 부여받은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누구든 대통령이라고 해서 ‘통일’과 ‘연방제’를 자기 멋대로 다루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위해서는 정권의 선택이라는 간접적 방식이 아니라 국민의 직접적 판단과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헌법 정신이고 그것이 곧 대한민국의 존재 양식이라고 생각한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우리는 ‘누구냐’가 아니라 ‘무엇이냐’를 의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