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란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김한길의 '정치읽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슬퍼지기까지 한다.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의 ‘별장 파티’ 폭로 예고와 현란한 변명을 지켜보자면. 그는 자신의 책 ‘김한길의 세상읽기(96년)’에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는 플라톤의 명언을 뒤틀어 이렇게 묻는다. 정치적 인간은 짐승인가.

    김한길은 “한나라당의 중요 인사에 대한 경악할 만한 비리가 확인됐다”고 말할 때도 열린우리당의 폭로전이 정치 개혁을 위해 피치 못할 선택임을 잊지 않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방의석이든, 단체장이든 몇 석 손해보는 한이 있더라도 선거혁명 하나는 분명히 실현해야 한다.” 폭로가 겨냥하는 핵심은 요즘 상영중인 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이 의도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대중의 ‘관음증적 상상력’의 유발에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30대 중반의 모 대학 성악과 강사를 포함한 여성들과 별장 파티를 벌였다더라. 이런 연상이 눈덩이처럼 커지기만 하면 대박이다.

    그러나 국민은 두번 속지 않는다. ‘김대업 소설’의 학습효과 때문이다. 이번 폭로전의 완벽한 실패는 ‘정치 기획의 황태자’라는 김한길이 김대중·노무현 두 정권에 걸쳐 10년 동안 어떻게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하게 됐는지를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소설 ‘여자의 남자’의 작가 김한길이 자신이 말하는 ‘짐승과 같은 인간’이 벌이는 정치판에서 성공했던 비결은 무엇인가. 정권을 세우고 유지하는데 탁월한 ‘한명회’인데다가 ‘환승(換乘)의 달인’이기 때문인가. DJ의 심복이었다가 노 정권을 세우고, 이번엔 정동영 당의장을 선택했다. 정치판에서는 “그가 가는 곳에 대권이 있다”고 감탄했다. 정치 공작이 아닌, 소설적 상상력에 기초한 순수한 기획력만으로 가능한 일인가. 정동영도 이번에 김한길의 폭로 소설이 광풍을 일으킬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위선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인데도 김한길에겐 관대했다.

    희한한 것은 이명박에게 기사회생의 행운이 엉뚱하게 적진으로부터 제공된 점이다. 이명박에 대한 웬만한 폭로는 앞으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국민에게 내성을 길러 주었다. 다음 대선에서 열린우리당은 김대업식 폭로라는 최대 무기를 잃어버렸다. ‘김한길식 정치공학’은 이제 종말을 고하고 있다. 김한길은 이런 면에서 한국의 정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독설은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김한길은 “정치적 인간은 짐승인가”라는 자문에 어떻게 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