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에 서울대 법대 정종섭 교수(헌법학 전공)가 쓴 시론 '헌법재판 받게 된 언론자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국민이 개헌에 관해 발언하면 형벌로 처벌한다고 했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국민주권주의에 의하면, 국민은 주권자로서 헌법을 제정하고 개정하는 최종적인 권한을 가진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입헌민주국가가 아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이를 부정하고 위와 같이 형벌로 처벌한 때가 있었다. 70년대 박정희 정부가 유신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긴급조치로 통치했던 시대였다.

    이런 때도 있었다. 일간신문, 주간신문, 통신 등을 통해 국민이 정부를 비판하는 것을 약화시키기 위해 정기간행물법을 제정하여 자기 소유의 시설을 갖춘 경우 등에만 신문 등을 발행할 수 있다고 통제했다. 그 결과 대형신문사나 갖출 수 있는 시설 이외에 다른 간편한 시설이나 윤전기를 임대하여 신문 등을 찍어 정부를 감시·비판하려고 했던 자유민주언론은 철저히 억압되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겉으로 내세운 말은 그럴싸했다. ‘무책임한 정기간행물의 난립을 방지한다’는 것이었다. 일반인에게는 착시현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참으로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국민의 입을 틀어막고 언론에 재갈을 물린 것이었는데, 권위주의 통치가 기승을 부리던 1987년의 일이다. 소위 ‘시설기준’ 사건이다. 1992년 헌법재판소는 이런 악법을 보기 좋게 위헌으로 선고해 폐기처분했다. 

    오늘날 입헌민주국가의 헌법원리와 국민주권원리에 의하면, 국가는 공동체의 존속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만 존재가치가 있다. 그러한 수단으로서만 국가는 존재하고, 국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국가는 국민의 행복실현이라는 목적을 수행할 때만 정당화되기에, 국민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언제나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자유와 권리를 가진다. 국민이 가지는 정부를 비판할 자유는 자연권으로서 절대 고귀한 것이다. 

    ‘신문법’은 포장만 바꾼 재갈, 3공·5공 악법과 본질 같아 

    그런데 권력을 쥔 자들은 언제나 이런 국민의 비판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국민을 다스리고 통치한다고 믿기 때문에 ‘정부가 정하면 국민은 따라오면 되지 뭐가 말이 많으냐’는 생각에 쉽게 빠진다. 이 결과 정부나 권력을 쥔 자들은 언제나 온갖 명분이나 이유를 갖다 대어 비판언론을 옥죄고자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역사가 권력에 대항한 자유의 역사이듯이, 정부에 대한 비판언론은 어떤 경우에도 억압할 수 없고, 국민의 입을 틀어막을 수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민주화를 갈망하는 이 시대에도 과거의 정기간행물법의 이름을 바꾸어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이라고 포장을 했지만, 그 내용은 역시 비판언론을 옥죄려고 하는 발상이 곳곳에 여전하다. 언론의 자유를 실행하는 신문을 ‘신문사’로 살짝 바꾸어 신문사는 사업자니까 공정거래의 규제대상이라고 한 다음, 발생부수를 기준으로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낙인찍어 이를 통제하고 있다. 과거의 ‘시설기준’을 ‘발행부수기준’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비판언론의 방송은 시청률로 통제하고, 비판 포털사이트와 인터넷신문은 접속횟수로 통제하려는 것과 같다. 민주화와 참여민주주의로의 이행기에 어떻게 이런 발상이 나왔는지 의아스럽다. 순간의 격정이 역사를 망치는 것이리라. 결국 이런 신문법 규정이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라 쌍방이 치열한 변론까지 했다.

    언론사가 무상으로 운영하지 않는 한 시장에서의 사업자이기는 하지만, 과연 신문사 방송사 인터넷신문사 등 언론사를 장사꾼으로 보고 통제하는 것이 합당한지 언론자유의 주체로 보는 것이 합당한지, 이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긴급조치시대, 정간물법시대라는 불법의 시대에 맞서 저항하며 성장한 세대가 이제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고, 나라의 중요한 직책도 차지하고 있다. 복잡하게 말장난 할 것 없이, 우리 스스로 간단히 물어보자. 현재와 같은 신문법을 박정희 정부나 전두환 정부가 만들었다면, 우리는 이를 수용했겠는가 저항했겠는가. 거꾸로 걸린 그림을 보듯 심한 현기증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