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신우 논설위원이 쓴 시론 '배부른 진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필자는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의 숨은 팬이다. 처음엔 그의 칼럼을 볼 때마다 부러움을 표시했으나 얼마전 그가 ‘지성과 반지성’이라는 책에서 소개한 어머니의 한탄을 읽고나서는 연민까지 더해져 나홀로 팬이 돼버린 것이다.

    홍진표씨는 386이다. 골수 주사파였다. 하지만 그는 인민의 나라에서 인민을 착취하는 북한사회의 모순에 절망한 후 뉴라이트에 투신한다. 덕분에 386이라면 ‘묻지마 출세’할 수 있는 참여정부 하에서 여전히 배고픈 이론가의 길을 걷고 있다. 세상이 바뀌자 이제 아들이 한 자리 할 줄로 여겼던 그의 어머니가 “너는 어째서 다시 음지로 갔느냐”며 인생을 거꾸로 사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구절이 끝없이 귓가를 맴돈다.

    과연 홍진표씨는 인생을 거꾸로 사는 것일까. 어머니는 한탄할지 모르나 필자는 오히려 그가 인생의 정도를 걷고 있다고 믿는다. 정작 인생을 거꾸로 사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현 집권세력이다.

    현 집권세력은 ‘개혁’ 카드가 약발을 다하자 새로이 ‘양극화’ 카드를 꺼내 선전·선동에 혈안이다. 청와대 홈페이지조차 우리 사회를 잘나가는 20%와 희망없는 80%로 나눈 후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것은 가진 자들을 향해 증오를 부채질하는 현 집권세력이야말로 자기네 스스로 어느 쪽에 서 있느냐 하는 문제에는 매우 둔감하다는 사실이다.

    서민들이 철도파업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지난 3·1절, 비행기에 몸을 싣고 부산으로 가 골프를 즐겼다는 이해찬 국무총리부터가 그렇다. 이 총리는 소위 골프광이라니 한번 골프장에 갈 때마다 돈이 얼마씩 드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경제적 무능 탓에 여태껏 골프를 쳐본 적이 없다. 골프장 회원권은 언감생심이고, 한번 치는 데 드는 25만원씩의 경비가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매스컴 보도에 따르면 이 총리는 취임 전만해도 1주일에 2~3회 라운딩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골프 유흥비에만 한달에 최소한 200만~300만원씩 쓰는 것 아닌가. 우리네 중산층의 한달 생활비다. 이래 놓고도 틈만 나면 80%의 당신네들을 위해 몸바치겠다고 속삭여대니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 없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도 다를 바 없다. 최근 그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찾아가 어린 학생들을 선전·선동의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면서 “못사는 집 아이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라는 상처를 안고…” 운운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 영혼들을 우스운 꼴로 만들어 버렸다. 애써 양극화를 강조하다 말실수를 한 것 같은데 불행히도 실수는 그것만이 아니다.

    시중의 소식에 의하면 정 의장은 아들을 연간 학비만 7000만원 가량 든다는 미국 사립학교에 보내놓고 있다. 그런 마당에 자신이야말로 양극화 주장의 도덕적 정당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학비 7000만원이라면 1가구 연간 소득만으로도 우리 사회에서는 상류층이다. 청와대 홈페이지의 ‘양극화 시한폭탄 이대로 둘 것인가’ 특집에서 말하는 ‘비정한 사회’는 그다지 멀리 있지도 않다.

    가장 압권은 양극화 논쟁을 사실상 주도하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은 2002년 대선 후보시절 고향인 부산을 방문하면서 외친 말을 여전히 기억할 것이다. 당시 그는 “사자는 새끼를 낳으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뜨려 기어올라가는 놈만 키웁니다. 나 노무현이 이렇게 살아서 돌아왔습니다”라고 자랑했다.

    이 말의 취지는 분명하다. 밀림의 투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자신을 키워달라는 이야기다. 이 정도라면 누가 봐도 노 대통령이 정글법칙의 인생관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양극화’ 특집은 “소수의 승자만 존재하고 다수의 패자는 존재할 수 없는 카지노 경제는… 아프리카 밀림보다도 못합니다”라고 질타한다. 도대체 어느 게 노 대통령의 진실인가. 게다가 노 대통령은 2005년 한해 자산운용 수익금이 9400만원에 달했다. 금리 수입만 연봉으로 환산해도 그 자체가 상류층 아닌가.

    ‘배부른 진보’들의 외침이 이렇듯 공허하기만 하다. 이 땅에는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청와대는 ‘양극화’ 특집 서문에서 전우익 선생이 쓴 책의 제목을 자랑스레 인용하고 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