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 '류근일 칼럼'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태극기냐 한반도기냐 ― 그것이 문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신년회견에서 북한의 위폐문제에 대해 “어떤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중략) 핵 문제의 해결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리고 북한정권을 압박하고자 하는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면밀하게 따져서 상호 간에 그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들, 사실확인과 의견조율이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아직 그런 문제에 대해서 대통령이 결정적인 의견을 밝힐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직 확인이 안 됐다는 얘기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지난 1일 “미국이 북한 위폐의 직접적인 증거를 갖고 얘기하는 것 같지 않다”며 “미국내 강경세력이 6자회담에서 양보했다고 반발해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외국계 펀드가 소유하고 있는 한국의 외환은행은 이 두 사람의 견해와는 달리 ‘돈 세탁 우려’가 있는 마카오 BDA 은행과의 거래를 전면 중단했다. ‘김대중·노무현’ 식(式)은 미국의 위조달러 대응을 ‘증거 불충분’ 한 정치적 압박쯤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외환은행 식(式)’은, 위조지폐범(犯)이 확실한 이상에는 이 세상 어느 나라가 법대로 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그냥 두고 보겠느냐는 미국의 입장을 따르는 것이다. 이 차이는 위조달러 문제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한반도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까지 파급될 것이다. 

    바로 ‘폭정(暴政) 종식’에 의거해서 김정일의 생명인 그의 ‘돈 숨통’을 죄어 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민족끼리’에 의거해서 김정일에 여유를 주고 동시에 미국이 도저히 어찌 해볼 수 없는 사이에 남북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즉, 누가 무엇을 먼저 해치우느냐의 이 숨가쁜 결전이 2006년의 한반도에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를 내세운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김정일, 이 세 사람이 오는 4월에 과연 어떤 ‘공연’을 연출하든 그것은 한반도 최후 결전의 ‘시작의 시작’이 될 것이다. 

    김정일은 달러위조로 지금 만만찮은 궁지에 몰려 있다. 그것은 중국도 딱히 어떻게 도와줄 방도가 없는 문제다.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은 오는 5월의 지방선거와 2007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절대로 패배해서는 안 될’ 절체절명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후보군(群)의 대중적 인기도도 지금으로서는 미미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죽기를 각오해서라도 무슨 수를 내야 할 것 아닌가? 이 ‘무슨 수’가 북한의 ‘낮은 단계의 련방제’와 DJ의 ‘남북 연합제’를 밀가루 반죽하듯 섞어내는 것이라고 앞질러 단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태극기를 지키려는 세력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에도 대비하면서 2006년의 결전에 임해야 할 것이다. 태극기냐, 아니면 정체불명의 한반도 기(旗)냐, ‘대~한민국’이냐, 아니면 ‘아, ×발 나라도 아닌 나라 대~한민국’이냐, ‘수구좌파 한국 + 김정일 수령독재’냐, 아니면 ‘선진 자유화 한국 + 개혁개방 북한’이냐의 한판승부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태극기 세력’은 상대측의 자의적인 ‘연방제 추진’에 불복하기 위해 미리 선언해 놓아야 할 것이 있다. 대한민국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수구좌파 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정통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체는 바로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대항적(對抗的) 담론이랄까, 대항적 권위를 구축해 놓아야 한다. 

    남쪽의 자유주의적 선진화, 북한의 폭정종식, 개혁개방, 그리고 이에 기초한 남북의 정당한 공존과 협력―이것이 다양한 태극기 세력을 한데 끌어 모을 수 있는 보편적 담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태극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이를 바탕으로 누구나 다 기꺼이 참여할 수 있는 국민적 대헌장 같은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 헌장에 다수 일반국민이 일제히 동참한다면, ‘태극기 세력’은 ‘한반도 기(旗) 권력’에 맞서는 대항적 권위로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항적 권위가 추동할 국민저항은 감성, 감동, 아름다움, 그리고 우리 현대사에 대한 긍지가 어우러진 축제 같은 것이어야 한다. 어둠의 음습함은 빛의 아름다움으로 물리쳐야 하니까. 2006 ‘한반도 최후의 결전’을 ‘죽창(竹槍)’을 넘어선 ‘태극기 물결’의 종국적 승리로 역전시켜야 할 국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