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6일자 오피니언면 '광화문에서'란에 이 신문 이동관 논설위원이 쓴 <'로빈후두 포퓰리즘'의 피해자>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요즘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에게서 ‘큰 형님’ 대접을 받고 있는 인물이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52) 대통령이다. 그는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라고 비난하며 각(角)을 세운다. 또 연간 840억 달러에 달하는 석유 판매 수입으로 이웃나라 좌파세력을 지원한다. 줄무늬 스웨터 차림으로 정상회담에 나서 화제를 모으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47) 대통령 당선자는 차베스를 “우리(남미 좌파세력)의 사령관”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차베스가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의 찬탄의 대상이 된 것은 반미(反美), 반세계화의 기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1998년 당선 이후 장기 집권을 하며 선거를 통해 권력 기반을 강화하고 70%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그의 ‘대중독재의 기술’에 각국 지도자가 한 수 접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베네수엘라에도 격렬한 야당과 비판적 언론이 있다. 특히 야당은 2004년 32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소환투표를 밀어붙였지만 차베스는 58%의 지지를 얻어 위기를 넘겼다.

    그가 거둔 정치적 성공의 요체는 사회 양극화를 이용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다. 사회 전체가 격렬한 이념 대립에 휩싸이면 중도세력이 양극단으로 쏠린다. 투표기권율이 30∼40%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유권자의 ‘30%+α’만 열성지지 세력으로 확보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계산법이다. 여기서 그가 동원한 이슈가 2000년 사립학교 국영화였다. 그는 로빈 후드처럼 유휴토지도 수용해 군부와 빈민층에 나눠 줬다. 

    야당은 가두시위를 벌이며 반발했지만 여당은 60%에 이르는 빈민층의 지지를 받아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167석 중 114석을 차지했다. 그는 앞서 1998년 대통령 선거 때는 기성정당들을 악(惡)이라고 몰아붙이며 정치혐오를 증폭시켜 압승을 거두었다. 

    지구 건너편 나라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참여정부 들어 진행된 우리 정치사와 상당 부분 닮은꼴이다. ‘차떼기’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꼴통 보수’로 낙인찍힌 야당, 탄핵 역풍과 여당의 총선 역전 드라마, ‘2%를 겨냥한 초정밀 유도탄’ 부동산대책, 전교조의 요구를 수용한 사립학교법 개정과 야당의 장외투쟁 등을 한마디로 꿰는 코드는 바로 ‘분열과 대립의 정치학’이다. 

    사실 모든 힘이 대중(mass)에게서 나오는 ‘대중권력’시대에는 적(敵)을 최소화하기보다는 적을 구체화해 다수의 증오를 증폭시키는 것이 유효한 정치기술이다. 계층적 이념적 양극화가 다음 대선에서 주요한 정치동원 수단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우파가 말하는 양극화 해소책(성장우선론)은 설명하기 복잡하다. 하지만 좌파 포퓰리즘의 해법은 간단하다. 당의정을 주면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포퓰리즘에 입각한 대중독재의 피해자가 대중이란 점이다. 베네수엘라만 해도 빈곤층 비율은 차베스 집권 기간 중 인구의 54%에서 60%로 늘어났으며 40%의 국내 기업이 문을 닫고 국부 유출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베네수엘라에 필요한 것은 빌 게이츠이지, 로빈 후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럼 우리 상황은 어떤가. 차베스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처럼 로빈 후드가 늘어나고, 동시에 로빈 후드의 손길을 기다리는 빈곤층의 대열도 길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