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6일자 1면에 이 신문에 홍준호 선임기자가 쓴 '그들만의 사랑'이란 분석기사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 정부 첫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은 누구보다 노무현 대통령을 잘 아는 정치인이다. 그 유 의원이 “결국 유시민 의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으나 이 예상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빗나갔다. 노 대통령과 유시민 의원의 관계가 유인태 의원 생각 이상이고, 노 대통령이 유시민 의원을 예뻐하는 정도가 여당 의원들이 유 의원을 미워하는 정도를 훨씬 능가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02년 대선 직후 노무현 당선자의 오른팔이던 이광재 의원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다음 정치는 시민이 형(이 의원은 83학번이고 유시민 의원은 78학번임) 같은 사람과 그 후배 세대가 주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시 노 당선자는 민주당 소속이고 유 의원은 개혁당 소속이었다. 그런데 대선에서 이긴 날 노 당선자가 먼저 찾은 곳은 개혁당이었다. “다음 정치는 시민이 형 같은 사람이…”란 말을 이 의원 개인의 이야기로만 흘려 버릴 수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이후 3년간 여당은 민주당 쪼개기, 열린우리당 만들기, 실용이냐 개혁이냐의 노선 다투기, 한나라당과의 대연정론 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 갈등의 중심에는 늘 유 의원이 서 있었다. 그는 스스로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임하면서 노 대통령을 엄호했고, 노 대통령도 “당내에 따르는 의원이 5명도 안 된다”는 그를 고비마다 후원했다. 

    이토록 잘 통하는 두 사람의 개인적 인연은 의외로 짧다. 2002년 대선 때 유 의원은 ‘노무현은 배짱 좋은 리얼리스트’ 같은, 노 후보를 직설적으로 옹호하는 글을 수없이 썼다. 노 후보를 지지하는 책도 냈다. 그러다 노 후보의 지지도가 크게 흔들리자 직접 정치판에 들어가 노 후보를 도왔으나 그 이전에는 특별한 인연이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이 정도 인연으로 이렇게 빠르게 일심동체가 된 것을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노 대통령을 잘 아는 여당 의원들은 “두 사람은 정치를 보는 눈과 정치 스타일이 빼닮았고, 노 대통령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런 코드를 중시한다”고 말한다. 

    도대체 두 사람이 공유하는 정치 코드는 무엇일까. 유 의원은 2003년 2월 24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 한 인터넷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행복한 노후를 맞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시대가 막을 내린다. 그러나 그의 시대가 남긴 유산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두운 권력문화와 깊어진 지역 갈등, 병들고 부패한 정당, 기득권을 끌어안은 채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그의 옛 추종자들, 이런 좋지 못한 유산을 평가하고 정리하는 일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 아니겠는가. 이제 새 대통령과 함께 우리가 그 일을 하자.”

    비슷한 시기 노 대통령 주변에서는 새 정당을 만든다는 말이 흘러 나왔다. 여당이 분당될 것이란 우려에는 “호남의 자민련이 있는 게 더 좋다. 그래야 호남 이외의 지역에서 DJ를 싫어해 지지하지 않던 세력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맞받았다. 결국 DJ의 정치 유산을 청산하고 그 위에 노무현식 정치 질서를 새로 세우는 일이 진행됐고, 그 작업의 맨 앞줄에 유 의원이 서왔다. 

    유 의원은 88년 평민당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평민당은 DJ가 만든 정당이다. 그러나 그는 97년 대선을 7개월여 앞두고 ‘97년 대선게임의 법칙’이란 책에서 ‘DJ필패론’과 ‘제3후보론’을 주장했다. 

    그는 “DJP연합 또는 DJP필승론은 승률이 0에 가까운 게임” “DJP연합은 손익 계산을 맞추기가 어려운 전략으로 DJ에게는 치명적인 정치적 자해행위로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의 예상은 DJ의 승리로 빗나갔으나 그와 DJ지지자 간의 간극은 되돌리기 어려웠다. 노 대통령은 97년 대선 막판에 DJ 진영에 합류했으나 그 역시 DJ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온 정치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을 찾아온 김근태 전 복지부 장관에게 “열린우리당은 지금 위기다. 잃어버린 식구를 찾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그동안 진행돼왔고 지금도 계속되는 노무현식, 유시민식 정치 재편 시도가 여권이 맞고 있는 위기의 근인(根因)이란 얘기다. 

    DJ와 그의 지지자들이 마땅찮아하더라도 열린우리당 사람들은 적어도 겉으로는 노무현식 새 정치의 명분에 공감을 표시하고 참여한 정치인들이다. 

    대권주자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전 장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유시민식 정치는 계속 여권 내 분란의 씨앗이 되고 노 대통령은 이를 적극 엄호해 왔다. 이는 노 대통령이 여전히 ‘정치적으로 배가 고픈’ 상태에 있음을 보여준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기용 이후 여당의 한 핵심 중진 의원은 “노 대통령은 정동영, 김근태 두 사람의 정치를 자기 정치와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지역과 정책면에서 DJ 지지층에 가장 가까이 있고, 김 전 장관은 DJ를 비판적으로 지지해온 대표적인 재야파다. 

    결국 두 사람을 통해서는 노무현식 정치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하고 이에 적임자인 유 의원을 정치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여당 내에는 요즘도 노 대통령과 유 의원이 수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정치 현안을 논의한다는 말이 파다하다.

    문제는 여당 내 다수가 유시민식 정치개혁의 방향과 속도에 동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유 의원을 통해 드러난 노 대통령의 정치 메시지는 현재까지 두 가지다. 민주당과의 통합은 정치 후퇴이고, 기간당원제를 강화해 여당을 밑바닥으로부터 더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여당을 바꿔서 정동영, 김근태 이외의 제3, 제4의 대선 후보를 만들려는 정치적 의도로 해석하는 여당 의원들이 점점 늘고 있다. 유 의원의 정치 투쟁이 시종 당 내부에 칼을 겨누는 형태로 진행돼 왔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유시민식 정치’는 그동안 먹혀들었다. 그러나 이제 그 동력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지 알 수 없는 갈림길에 이르렀다. 정치개혁이란 총론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지만 유시민식 정치가 당내 역학구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당사자들이 더는 방관하지 않겠다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일반 의원들은 그에 앞서 ‘민심’을 걱정한다. 한 재선 의원은 “유시민식 정치는 국민에게 그의 거친 언행, 의견이 다른 세력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골수 지지자도 만들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비판 그룹을 만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5월의 지방 선거와 내년의 대통령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여당 의원들로서는 이런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5일 대통령이 초청한 만찬을 여당 의원들이 거부한 것은 만약 대통령이 ‘유시민식 정치’를 살리기 위해 당을 버린다면 당이 대통령을 버리지 말란 법이 없다는 무언의 메시지다. 지금 여권은 노 대통령과 의원들이 칼을 함께 쥐고 있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