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9일자 사설 '노 정권 2005년-독선과 분열의 정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정권의 2005년 한 해 국정운영은 국민이 국가의 현재와 미래에서부터 개인적 삶에 이르기까지 희망과 기대보다는 허탈·비관·좌절을 겪게 했다. 독선과 분열의 정치였고, 국민에겐 희망을 걸기 어려운 절망의 정치였다. 

    정부 여당은 1월1일 미명 국회에서의 ‘신문 악법’ 처리로 비판언론에 대한 견제와 압박을 노골화하며 독선·독주·오만의 정치를 예고하는 신호탄을 쏘아 올리더니, 5월3일에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헤집는 과거사정리 기본법을 처리했다. 연말 들어서는 올 한 해 분열·갈등·반목 정치의 실상 그대로 12월9일 ‘사학 악법’을 강행 처리함으로써 국민은 새해를 앞두고 국가와 개인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청사진을 구상하며 덕담을 나눌 정신적 여유마저 잃고 있다. 이것이 노 정권의 올 한 해 국정운영과 정치가 국민에게 안겨준 현주소이고 성적표다.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국정운영의 근간인 새해 예산안에 대한 심의까지 포기하고 극한적인 장외투쟁을 벌임으로써 대의민주주의의 전당인 국회가 형식과 내용면에서 모두 ‘식물화’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국회 부재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집권세력은 이런 결과를 초래한 자신들의‘일방 독주 정치’에 대한 반성은커녕 한미 동맹관계의 상징적 징표인 이라크 자이툰부대 파병 연장안, 8·31 부동산 대책 관련법 등을 강행처리할 결판의 시간만을 또 찾고 있다. 

    연말 ‘식물 국회’가 장기화하는데도 국정 최고책임자인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과 대화다운 대화 한번도 갖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인식해 대연정을 제의한다며 올 후반기의 태반을 소모하더니 정작 이런 상황에서는 그 제안에 담겨 있다는 ‘진정성’을 조금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외교·안보는 한미동맹 관계가 구조적 위기로 빠져들면서 국내에서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민족공조 시위’, 6·25는 통일전쟁이며 미국은 원수이고 미군은 한반도 통일의 장애물이라는 강정구식 요설(饒舌)로 한 해를 채우다시피 했다. 북한이 핵 질서의 교란자이고 인권의 동토(凍土)임은 물론, 미 달러화 위폐 제작, 마약 제조 및 밀매, 의약품 위조 등 국제 범죄를 저지른 정황과 증거가 속속 제시되고 있는데도, 북한을 ‘범죄 정권’이라고 규정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의 발언을 꼬투리잡아 여당의 국회의원이 국회에 의한 본국소환 결의를 공공연히 외치고, 좌파·친북·반미세력들은 이를 영웅시하는 세태에까지 이르렀다. 

    마침내 미국의 조야에서 “한국은 누구를 주적(主敵)으로 삼고 있는지 분명히 밝혀라”“북한을 옹호하는 것은 미국의 우방이 아니다”는 직설적인 불만이 쏟아져 나오는 등 한미동맹은 사상 최악의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동북아균형자론’이라는 ‘나홀로 외교’로 인해 최대 동맹 미국이 점점 멀어져가고 있고, 일본과도 최악의 외교적 반목과 갈등을 계속중이다. 

    외교적으로는 전통적 우방을 잃어가고 국내에서는 국가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을 지키려는 세력과 허물려는 세력간에 남남갈등이 예각화하고 있다. 

    올 경제성장률만 해도 3%대 후반일 따름이다. 나라가 안팎으로 이 지경인데도 이해찬 국무총리는 “나라가 이미 반석 위에 올라섰다”고 말하고 있고,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우리가 선진국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라”고 국민을 협박하다시피 한다. 이 총리나 이 실장과 같은 집권실세들과 열린우리당, 또 도처의 낙하산 인사들에게는 나라가 반석 위에 올라있는 선진국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면 그것이야말로 혹세무민(惑世誣民)이 아닐 수 없다. 

    내년은 전후반 모두 정치의 계절일 것이다. 전반에는 5·31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고 후반에 들면 이 총리의 28일 언급 그대로 권력구조 전환을 위한 개헌논란이 간단없을 것이다. 노 정권의 독선과 분열의 정치가 그때까지 지속되리라 싶어 더 암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