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9일자 오피니언면 '오늘과 내일'란에 이 신문 오명철 편집국 부국장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얼마 전 동생이 형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비슷한 시기에 차를 구입했는데 출퇴근 거리가 멀다 보니 형보다 앞서 부득이 새 차로 바꾸게 됐다”며 양해를 구했다. 형은 “보태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동생의 마음 씀씀이가 무척 고마웠다. 앞서 동생은 어머니를 통해 구두 한 켤레를 형에게 보내 왔다. “형이 신고 다니는 구두의 뒤축이 많이 닳았더라”는 말과 함께.

    올해 설날 동생은 차례를 지내고 나서 슬그머니 형에게 현금 100만 원 뭉치를 내놓았다. 재수 끝에 대학에 입학한 장조카의 입학금에 보태라는 것이었다. 형은 가전제품 대리점 점장으로 일하는 동생에게 이 돈이 1000만 원이나 다름없는 거액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못 이기는 척 받아 넣었다. 동생은 또 올봄 10년 만에 새 집으로 이사한 형에게 냉장고 가스레인지 등 새 가전제품을 선물로 보냈다.

    혈혈단신 이북에서 내려온 아버지가 아내와 두 아들을 남기고 49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 형은 20세 재수생, 동생은 16세의 고교 1년생이었다. 형은 앞서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원비를 대준 덕분에 다음 해 무난히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사춘기를 보낸 동생은 대학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미련 없이 공부를 접고 군에 입대했다. 형은 자신보다 머리가 월등히 좋은 동생이 집안 사정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을 늘 미안하고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괜찮은 대학을 졸업한 뒤 번듯한 직장에 다니지만 종종 자수성가의 고단함을 말하며 ‘사회 계층적 불만’을 토로하곤 하는 형에 반해 고졸의 동생은 늘 긍정적으로 인생을 개척해 왔다. 집안의 각종 대소사에서도 동생은 언제나 형이 중심이 되도록 했다. “형이 잘돼야 우리 집안이 잘된다”는 것이 동생의 확고한 소신이다. 그로 인해 동생의 지인들은 형의 손님과 친구들에 치여 늘 뒷자리 차지였다. 하지만 동생은 단 한번도 불평을 말해 본 적이 없다.

    형의 옷과 신발 중 절반가량은 동생이 보내 준 것이다. 동생은 지나다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있으면 선뜻 구입해 형에게 보낸다. 멋을 아는 동생 덕분에 형은 종종 패션 감각이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형은 동생에게 물건 값을 제대로 지불해 본 적이 없다. 동생은 또 명절과 제사 때면 반드시 아내를 형 집으로 보내 음식 만드는 것을 거들도록 했다. 동생의 아내는 언젠가 “술에 취한 남편이 밤새 ‘형 잘 있는지 전화 좀 해 보라’고 보채는 통에 잠을 자지 못한 적도 있다”고 하면서 “마누라보다 형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형은 신혼 초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동생 내외에게 줄 선물을 사왔다가 아내의 의아해하는 내색을 보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고, 내가 아버지나 다름없지 않으냐. 결혼으로 인해 형제지간에 의(誼) 상하는 일 없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실제로 형이 해 준 일은 동생 내외가 결혼 후 10년간 한번도 해외에 다녀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가족 해외여행을 주선해 준 것이 고작이다. 동생의 장모를 자기 장모처럼 챙겨 드리려고 노력하지만 그마저 잘 되지 않는다. 형은 이번 여름 동생의 고교 1학년짜리 딸이 교환학생 자격으로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물질적으로 별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을 지금도 가슴 아파한다. 

    형은 평소 자신은 ‘보통 형’에 불과하지만 동생은 ‘최고의 동생’이라고 자랑하곤 한다. 그렇지만 동생은 언제나 “세상에 형보다 나은 동생은 없다”고 말해 왔다. 유난히 힘든 일이 많았던 올 한 해, 무사히 세밑을 맞게 된 것은 모두 동생의 덕분이라고 형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