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주인되는 '근대국민국가' 건설의 꿈일제시대 금서, 백여년 만에 일본서 재평가'근대화 촉구한 계몽사상가 이승만 재발견'일본학계 "기존 인식 뒤엎는 사료"로 주목
  •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1904년 옥중 집필한 '독립정신(獨立精神)'의 현대 일본어 번역판이 일본 전역에 발매된다. 출판사는 역대 일본 근현대사에 대한 중요 사료집을 출간해온 일본의 유서 깊은 역사학술서적 전문출판사인 '하라쇼보(原書房)'.

    동국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한 역자 김영림(2020년, 일본 추오대 박사 취득)씨는 2013년 일본 와세다대에서 석사를 취득한 뒤 추오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논문 주제를 구한말 개화 사상의 전개와 이승만의 '독립정신'의 탄생 과정을 규명하는 것으로 삼았다.

    김씨는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일본인들이 한국 독립운동의 논리와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한국과 일본의 진정한 우호관계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립정신'은 이 전 대통령 개인을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 독립투쟁의 논리와 대한민국 건국이념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매우 중요한 책이라는 것이다.

    또한 김씨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일본의 기존 인식이 △일본을 '절대 타협 불가능한 적'으로 대하고 △평화선(이승만라인)선포 등의 강경한 대일정책을 펼친 '극렬 반일 민족주의자'이자 △미국 유학 경력과 학위를 이용해 미국을 등에 업고 초대 대통령이 된 '권위주의 정치가'에 머물러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번역을 계기로 일본인들이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재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씨는 이 전 대통령이 쓴 '독립정신'은 당시 조선이 갑신정변의 실패와 개화당 몰락 이후 자주적 근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식민지배를 통한 근대화가 불가피했다는 과거 일본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료라고 평가한다. 개화당 몰락 이후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한 구한말 지식인들이 입헌정치와 공화정치의 실현에 대해 구체적인 고민을 갖고 실천하려 한 증거이며, 식민지배는 그 맹아를 짓밟은 행위였음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또한 △쇄국과 배타를 지양하고 △외부 세계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선진 열강을 단순히 흠모하고 의존하는 것을 뛰어 넘어 한국인 자신의 힘으로 자유로운 개인이 주인이 되는 '근대 국민국가'의 건설이라는 원대한 메시지는 이 전 대통령이 단순한 반일 민족주의자, 항일 독립운동가를 넘어 근대화를 촉구한 '계몽사상가'임을 보여준다는 게 김씨의 평가다.

    이 같은 점 때문에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부에 의해 금지서적이 됐던 '독립정신'이 1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어 번역본으로 출간되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일본학계에서도 기대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실제로 '독립정신'의 번역 초고를 검수하던 일본 학자들은 일본 1만 엔짜리 지폐의 주인공인 일본 근대사상의 아버지 후쿠자와 유키치와 이 전 대통령을 비교하면서 "후쿠자와가 사상가에 머물렀다면, 이승만은 실제로 자신의 손으로 근대 국민국가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더욱 대단하다. 대한민국 또한 다른 근대국가와 마찬가지로 자주적이면서도, 세계와 더불어 전진하는 근대 국민국가를 지향해 건국됐다는 것을 새삼 다시 알게 됐다" "이승만의 항일은 국가건설의 종착지가 아닌, 이를 위해 거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과정이었음을 이해했다" "이승만에 대해 내가 가진 기존 인식의 70%가 바뀌었다"는 소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출판은 별개의 문제였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기획이 위축된 상황에서 이 전 대통령의 '독립정신' 일본어판을 출판해줄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김씨가 '책의 시장성이 걱정된다면 제가 자비를 들여서라도 보탬이 될 테니, 부디 출판을 고려해달라'고 읍소하며 출판사의 문을 두드린 세월이 어언 5년 여.

    과연 출판이 될 수 있을지 회의감이 몰려오던 시점, 연락해 온 곳이 역사학술서적 전문출판사로 저명한 하라쇼보였다고. '독립정신'의 번역본을 검토하면서 한일관계사를 재조명하는 1급사료로 평가한 하라쇼보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뒤엎는 살아있는 목소리"라고 소개하고 있다.

    '독립정신'은 2월 26일 일본 전역에 발매되며(도쿄지역은 21일부터 배포), 오는 3월 20일 저녁 도쿄 추오대학 스루가다이 캠퍼스에서 독립정신 원고 완성 120주년과 일본어판 출간을 기념하는 행사가 예정돼 있다.
  • ▲ 26일 서울 종로구 코베이옥션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립정신'이 경매물로 출품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독립정신'은 이 전 대통령이 러일전쟁이 발발한 해인 1904년 감옥에서 집필해 1910년 미국에서 출간됐다. 이번 경매에는 1917년에 발행된 책이 나왔다. 시작가는 600만 원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코베이옥션에서 '삶의 흔적' 경매에 출품된 '독립정신'을 살펴보는 관람객들의 모습. ⓒ연합뉴스
    ▲ 26일 서울 종로구 코베이옥션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립정신'이 경매물로 출품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독립정신'은 이 전 대통령이 러일전쟁이 발발한 해인 1904년 감옥에서 집필해 1910년 미국에서 출간됐다. 이번 경매에는 1917년에 발행된 책이 나왔다. 시작가는 600만 원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코베이옥션에서 '삶의 흔적' 경매에 출품된 '독립정신'을 살펴보는 관람객들의 모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