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왼쪽부터 테너 이용훈, 소프라노 여지원,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세종문화회관·예술의전당·아트앤아티스트
    ▲ 왼쪽부터 테너 이용훈, 소프라노 여지원,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세종문화회관·예술의전당·아트앤아티스트
    홍혜경·조수미의 계보를 잇는 테너 이용훈(50), 거장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발탁한 소프라노 여지원(비토리아 여·43), '바이로이트의 영웅'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본명 윤태현·51)…'월클(월드 클래스) 성악가들이 잇따라 국내 무대에 오른다.

    ◇ 테너 이용훈, '투란도트'로 한국 무대 데뷔 "기적같은 일"

    세계에서 가장 바쁜 오페라 가수 중 한 명인 이용훈이 26~2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서울시오페라단의 '투란도트(Turandot)'에서 '칼라프 왕자' 역으로 무대에 선다. 그의 국내 오페라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용훈은 리리코 스핀토 테너(서정적인 음색의 리리코 테너와 강렬하게 밀어 붙이는 활기찬 목소리의 스핀토 테너가 모두 가능한 테너)로, 세계 정상급 오페라 극장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고 있다.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 메조소프라노 돌로라 자직 등 유명 성악가들과 호흡을 맞췄다.

    2010년 '돈 카를로'로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무대에 데뷔한 이후 런던 로열 오페라·빈 국립 오페라·뮌헨 바바리안 국립 오페라·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베를린 도이치 오페라·파리 오페라 등 전 세계의 주요 극장에서 주역으로 노래하고 있다.

    그 동안 이용훈의 한국 공연을 위한 많은 제안이 있었으나 보통 3~4년 전에 스케줄을 확정짓는 세계 오페라 프로덕션의 특성으로 쉽게 성사되지 못했었다. 최근 런던·드레스덴 등에서 칼라프를 연기한 이용훈은 "프로 성악가로 20년쯤 활동하다가 드디어 기적처럼 한국 데뷔를 하게 됐다"며 "지금까지 '투란도트'에 110~120회 정도 출연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자코포 푸치니(1858~1924) 오페라 '투란도트'는 공주 '투란도트'가 망국의 왕자 '칼라프'의 진정한 사랑으로 어둠의 저주를 푸는 이야기를 그린다. '공주는 잠 못 이루고'로 대중에게 알려진 아리아 '네순 도르마(아무도 잠들지 말라)'를 이용훈의 목소리로 감상할 수 있다. 연극 연출가 손진책(76)의 첫 오페라 작품이기도 하다.

    오페라는 일반적으로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칼라프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투란도트의 모습으로 결말을 그려낸다. 하지만 서울시오페라단이 제작한 버전은 이 결말을 따르지 않는다. 이용훈은 "유럽에선 클래식 오페라에 기대하는 관객의 마음이 크기 때문에 사실 이야기를 비트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현재 새로운 시도가 많다. 최근 독일 드레스덴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 일부 장면을 응용한 버전을 선보였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며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시도도 중요하지만 원작을 많이 변형하는 것은 원작자에 대한 리스펙트(존경)가 조금 부족하지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 소프라노 여지원이 2019년 이탈리아 '라벤나 페스티벌'에서 오페라 '노르마'를 공연하고 있다.ⓒ여지원 페이스북
    ▲ 소프라노 여지원이 2019년 이탈리아 '라벤나 페스티벌'에서 오페라 '노르마'를 공연하고 있다.ⓒ여지원 페이스북
    ◇ 소프라노 여지원 "오페라 '노르마' 어렵지 않아요"

    오페라 '노르마'가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기념 작품으로 26~29일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다.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2016년 선보인 프로덕션으로, 당시 시 파격적인 무대로 주목을 받았던 스페인 연출가 알렉스 오예(63)가 함께하고, 로베르토 아바도(69)가 지휘봉을 잡았다.

    벨칸토(고난도의 화려한 초절 기교에 의한 창법) 오페라의 대가 빈첸초 벨리니(1801~1835)의 대표작인 '노르마'는 1832년 12월 26일 밀라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됐다. 로마의 지배를 받는 갈리아(옛 프랑스영토)를 무대로 드루이드교 여사제 노르마의 사랑과 배신, 복수와 희생을 그린다. 

    2005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 여지원으로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서울 무대는 이번이 두 번째지만 오페라 전막은 처음이다. 2014년 '대구국제오페라축체'에서 '투란도트'의 '류' 역을 연기했고, 2017년 경기도문화의전당 세계유명연주자 시리즈 '무티 베르디 콘서트'에 참여한 바 있다.

    여지원은 2019년 이탈리아 라벤나 페스티벌에서 '노르마' 역을 소화했다. 그는 "성악가에게는 어렵지만 관객 입장에서 내용에 집중하면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아침 드라마에서 볼 법한 삼각관계가 등장하고, 벨리니가 인물의 감정을 음악으로 기막히게 풀어내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고 강조했다.

    무명(無名)에 가까웠던 여지원은 이탈리아의 거장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82)에 깜짝 발탁되면서 유명해졌다. 2015년 8월 유럽 대표 클래식음악 축제인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무티가 지휘하는 베르디 오페라 '에르나니'의 주인공 돈나 엘비라로 데뷔했다.

    여지원과 함께 이탈리아 방송사가 현존하는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소프라노 4명 중 1명'으로 선정한 데시레 랑카토레가 '노르마'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테너 마시모 조르다노, 메조 소프라노 테레사 이에르볼리노, 베이스 박종민 등이 출연한다.
  • ▲ 사무엘 윤은 지난해 독일어권 최고 영예인 궁정가수(Kammersänger) 칭호를 받았다.ⓒ아트앤아티스트
    ▲ 사무엘 윤은 지난해 독일어권 최고 영예인 궁정가수(Kammersänger) 칭호를 받았다.ⓒ아트앤아티스트
    ◇ 독일 '궁정가수' 사무엘 윤, 국제 데뷔 25주년 콘서트 연다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이 올해 국제무대 데뷔 25주년을 맞아 오는 29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프롬 다크니스 투 라이트(From Darkness to Light·어둠에서 빛으로)'라는 부제로 콘서트를 연다.

    사무엘 윤은 "저는 남들보다 늦게 음악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 독일에 유학 가서도 실력을 인정받지 못했고 음악가로서의 가능성이 희박했던 오랜 시간을 참고 견뎠다. 그게 지금의 저를 만든 자산이 됐다"며 "그 고난의 시절을 생각하며 이 제목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콘서트 1부에서는 슈베르트의 '도플갱어' '죽음과 소녀' '마왕', 브람스의 '죽음, 그것은 서늘한 밤' '다시 네게 가지 않으리' 등 독일 가곡을 오케스트라 반주로 편곡해 부른다. 2부는 바그너 '발퀴레', 베버 '마탄의 사수', 구노 '파우스트' 등 유명 오페라 아리아들로 구성된다.

    사무엘 윤은 서울대 음대에서 성악공부를 시작해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음악원과 독일 쾰른음악원에서 학업을 마쳤다. 1998년 신인 오페라 가수 등용문이라 불리는 이탈리아 토티 달 몬테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이태리 트레비조에서 구노의 '파우스트' 오페라를 통해 유럽에 데뷔했다.

    2012년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개막작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주역을 맡으며 '바이로이트의 영웅'으로 불린다. 2022년 독일어권 성악가들의 최고 영예인 '궁정가수(Kammersänger)' 칭호를 받았다. 현재 독일 종신가수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귀국한 후 서울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사무엘 윤은 "제가 한국과 모교를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쓰임 받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라며 "과거엔 빛이 보이지 않았지만 언젠가 나를 보여줄 기회가 분명히 온다고 믿었다. 젊은 성악가들에게도 인내와 기다림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