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 기각은 양날의 칼···독(毒)일까 약(藥)일까'복수 드라마' 완성에 득(得)일까 손(損)일까
  • ▲ 지난달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모습. ⓒ이종현 기자
    ▲ 지난달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모습. ⓒ이종현 기자
    <서지문의 이삭줍기 : 영장기각, 이재명에게 선물인가 독약인가?>

    지난 화요일, 이재명 구속영장이 혹시라도 기각될까봐 맘 조리느라 새벽까지 잠을 못 잤던 시민도 많다. 
    내가 아는 분들 여럿은 기각 소식을 듣자 비통하고 허탈해서 한밤 중에 카톡방에 개탄과 분노를 쏟아 놓았다.
    사실 나도 허탈하고 분한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

    어떤 영장판사가 감히 증거인멸의 대가(大家)인 그를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구속영장을 기각한다는 말인가?
    그야말로 우리나라 사법부, 또는 사법관이 법 위에 존재함을 스스로 증거한 판결이 아닌가.

    당장 내년 총선이 반년 밖에 안 남은 이 시점에서 이번 영장기각의 파장으로 정치권은 난장판·진흙탕이 될 것이 분명하다.
    정치 초보생들과 유단자들 공히 이재명에게 공천을 구걸할 것이고, 그 혈투를 이용해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이재명의 전술을 지켜보는 국민은 정치에 대한 역겨움과 나라의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그야말로 살기도 싫어질 판이다.

    ■ 악마와 계약 맺었을까

    그런데, 이렇게 절망적인 생각을 하다가 문득 영장기각은 (선고한 판사에게는 평생의 오점임은 논외로 하고) 하늘의 오묘한 뜻이라는 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즉, 이번의 영장기각이 이재명에게 참회하고 바른 정치를 실행할 마지막 기회를 주고, 그가 그것을 거부하고 지금의 죄 값을 모면하기 위해서 더 악랄한 판을 벌인다면 더욱 확실하고 참혹한 파멸에 빠지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재명이라는 인물이 시장·도지사로 여러 매체에 등장할 때 처음엔 전혀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차츰 그로 인해 정계가 하도 시끄러우니까 어느 날 그의 면상을 보고 [악마와 계약을 맺은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악마는 이재명을 도와서 도덕성에 구애되지 않고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그의 출세와 (대통령 당선이라는) 목표달성을 도와주고, 그는 그 댓가로 그의 영혼과 양심과 인간본성을 악마에게 넘기기로 약속한 듯이 보였다는 말이다.

    누구나 그가 악마에게 그의 영혼을 팔았다면, 그 원인이 그의 어린 시절의 궁핍과 세상의 냉대 때문에 세상에 적개심을 갖게 되어서라고 짐작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나라를 손아귀에 넣고 온 국민을 자기 발 아래 꿇어 엎드리게 하겠다고 자신에게 맹세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그는 세상에 [복수]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복수심]이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으로 대부분 사람이 가장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우리는 모두, 예외 없이, 자기는 불리한 생존 조건을 갖고 태어났고 살면서 억울한 손해를 많이 보았다고 확신한다.
    재벌가의 아들이나 명문가의 딸에게 물어도 대답은 같을 것이다.
    어떤 자는 낮은 IQ 때문에 슬프고, 어떤 이는 몸이 허약하거나 부실한 유전자를 타고나서 괴롭고, 어떤 자는 예능이나 스포츠 등에 재주가 없어서 속상해 한다.
    멀쩡하던 사람도 자기의 인생 자산 이야기가 나오면 우울해지고 하늘이 원망스럽다.
    게다가 당연히 내 몫인 것을 부당하게 차지하거나 가로챈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문학작품이나 영화나, [복수]를 주제로 해서 실패한 작품이 별로 없다.

    ■ '복수의 화신'이 주인공인 문학작품

    그러나 문학이나 영화나 주인공이 [복수의 화신]이 되어서 파괴를 일삼는다 해도, 사실 관객을 빨아들이는 것은 주인공이 완전히 냉혈한이 되어서 적들을 무차별로 죽이기만 하는 드라마가 아니고 무자비하게 복수를 추구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복수심과 선의 의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순전한 [복수의 화신]은 제대로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자신도 끝내 파멸을 면치 못한다.

    1844년 출간 후 줄곧 베스트셀러였던 알렉상드르 듀마의 명작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는 악의의 투서로 그를 암흑의 동굴에 14년간 갇히게 하고 그의 약혼자와 청춘을 앗아간 원수들에게 주도면밀하게 복수를 실행하면서도 많은 자비와 선행을 행하고, 그의 마지막 원수는 살려 보낸다.

    19세기 중엽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하는 윌리엄 포크너의 문제작 <압살롬아, 압살롬아!>에서는 주인공 토머스 서트펜이 열 네살 소년이었을 때 어느 농장주의 저택을 찾아갔다가 (하인들이나 잡상인들이 출입하는) 뒷문으로 오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서, 자기는 반드시 대저택에 정문으로 출입하는 사람이 되기로 맹세하고 30년간 맹수처럼 돈을 모아 대농장주가 된다.
    그런데 첫 부인이 흑인 피가 섞인 것을 모르고 결혼 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혼혈아를 후계자로 두면 농장주들 사회에 낄 수 없기 때문에 모자와 즉시 인연을 끊고 다시는 보지 않는다.
    아들은 자라서, 자기가 배척당한 사정은 이해하지만, 아버지에게서 자신을 아들로 인정하는 한 번의 눈길만이라도 받기 위해 아버지를 찾아간다.
    아버지는 아들인줄 알면서도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아들의 분노로 인해 그가 이룬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된다.

    ■ 이재명과 장발장

    99%의 인간에게는 복수심에 불타서 악마가 되기로 맹서했더라도 선의 의지가 승리할 때가 있고, 그래서 그것이 그의 구원의 열쇠가 된다.
    그런데 이재명의 얼굴에는 선의 의지로 인해 느끼는 갈등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엉터리) 단식 끝에 지팡이를 짚고 어렵게 (또는 어려운 듯이) 걸음을 옮길 때도 감정적인 갈등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이번 영장 기각이 그에게 마지막 기회인 동시에 무서운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민주당 당대표를 지켜내어 당원들을 설득, 민주당의 심술로 진수렁에 처박힌 이 나라를 마른 땅으로 끌어올려 대로를 달리게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얻었다.
    그것은 사법처리와 별개로 그의 인간적인 구원이다.

    그러나 그가 자기 한 몸 구속을 피하고 조금 더 유리한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고 계속 몸부림을 치며 나라를 파멸의 구렁에 처박으면, 죄의 올가미에 더욱 더 단단히 얽혀들어서 아무도 그를 풀어 낼 수 없게 될 것이다.
    하늘은 그에게 양날 달린 칼을 쥐어주었다.

    국법은 종교의 자비와 달라서 지은 만큼 죗값을 내리지만, 이재명이 어느 시점엔가 복수의 덧없음을 깨닫고 인간이면 모두가 져야하는 삶의 무게와 속박을 깨닫게 된다면, 그는 여생을 장발장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