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법인카드 총 1150장… 2018년~2023년 상반기까지 2038억5200만원 써간담회·협의·추진회… 사용 목적 두루뭉술, 구체적 명기 안 한 경우 많아해산물 포차에서 김포권 사업 간담회… 회 포차에서 안전사고 방지 간담회도
  • ▲ 경남 진주시 LH 한국토지주택공사 본사. ⓒ정상윤 기자
    ▲ 경남 진주시 LH 한국토지주택공사 본사. ⓒ정상윤 기자
    미공개 개발정보를 이용한 '땅 투기'와 '순살 아파트' 등으로 논란의 중심이 됐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5년6개월간 법인카드를 2000억원 넘게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업무 해이로 국민적 공분을 샀음에도 LH 직원들은 연평균 360억원씩 법인카드 사용을 남발했다.

    업무 간담회를 목적으로 횟집과 포차 등에서 한 번에 수십만원씩 사용하고, 등산대회에 참석한다는 명목으로 골프웨어 브랜드에서 수백만원씩 법인카드를 긁었다. 법인카드 사용 목적도 간담회·회의·추진회 등 제대로 명시하지 않은 내역도 다수다.

    국민적 공분 산 LH, 법인카드 2038억 넘게 긁어

    뉴데일리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엄태영의원실이 LH가 제출한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분석한 결과 LH는 2018년부터 2023년 상반기(6월)까지 법인카드를 총 2038억5288만5307원 사용했다. 경남 진주에 위치한 본사와 전국 각 지사의 법인카드 사용을 합한 금액이다.

    LH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으로 LH의 법인카드는 총 1150장 있다. 본사 338장과 지역본부(지사) 812장이다. 2급 이상(부장급) 조직당 0.5개의 법인카드가 부여된다고 한다. 부장급 조직 2개당 하나꼴이다. 5년 동안 법인카드 한 장당 1억7726만원가량의 금액이 사용됐다는 의미다. 매월  장당 약 2685만원이 사용된 셈이다.

    연도별 법인카드 사용액은 △2018년 354억6000만원 △2019년 389억8000만원 △2020년 348억6000만원 △2021년 343억6000만원 △2022년 413억6000만원 △2023년 상반기 188억4000만원이다. LH 직원은 지난 4월을 기준으로 8500여 명이다. 

    LH는 2021년 3월 내부 직원들이 3기 신도시 등 자사의 사업계획과 관련된 지역에 집단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한 의혹이 드러났다. 공공재인 국가의 토지를 이용해 불법적으로 돈을 벌었음에도 1년에 수백억원씩 법인카드 사용을 계속한 것이다.

    LH 직원들은 5년6개월간 '횟집'이라는 상호가 들어간 가게에서 26억원을 사용했다. '도심복합사업 관련 업무간담회' '설계품질 검증회의 업무 개선방안 협의' '노후 공공임대주택 그린리모델링 공사 업무협의' 등의 사용 목적을 적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업무간담회, 업무협의, 업무추진회, 간담회 등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적지 않았다. 누구와 업무간담회를 가졌는지, 몇 명이 참석했는지 등의 표기도 없었다. 한 예로 지난 2월22일 LH 본사 직원 김모 씨가 'ㄷ횟집'에서 업무간담회 목적으로 28만2000원을 사용했는데, 여러 명이 실제 업무간담회를 했는지, 두 명이 각자 10만원이 넘는 금액의 식사를 했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상호에 '포차'가 들어간 경우도 같았다. LH 직원들은 '포차'라는 이름을 사용한 가게에서 약 1억700만원을 긁었다. 상호에 포차가 들어가지 않은 술집까지 합치면 금액은 더 커진다.

    경기북부지역본부 직원은 지난 5월10일 김포권 사업 관련 업무간담회로 'ㅅ해산물 포차'에서 27만원을 사용했다. 오후부터 새벽까지 여는 해산물 포차에서 직원들이 김포권 사업과 관련해 업무간담회를 했고, '일'을 했으니 법인카드를 쓴 것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같은 식당에서 같은 간담회를 목적으로 6만5000원을 결제하기도 했다. 

    광주전남지역본부는 2022년 9월15일 공공 리모델링 및 매입 약정 안전사고 방지 간담회 명목으로 'ㅎ회포차'에서 12만원을 썼다. 세종특별본부 직원은 2020년 2월6일 각종 안주류를 판매하는 프랜차이즈 'ㄱ포차'에서 공공 시설물 관련 간담회로 28만7500원을 사용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안전나라에 따르면, 이곳의 업태는 호프와 통닭이다.

    LH는 와인바·포장마차·생맥줏집·선술집 등 접객시설을 갖추고 대중에게 술을 판매하는 기타의 주점은 법인카드 사용 제한 업종으로 두고 있다. 그러면서 "상기 업종에서의 음주 목적 사용은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제한한다"고 명시했다.

    등산대회 참석 목적인데 골프웨어 브랜드서 324만원 사용

    법인카드 사용 장소와 사용 목적이 관계없는 경우도 있었다. 본사 직원 이모 씨는 2019년 5월22일 '국토교통부장관배 등산대회 참석'을 목적으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한 골프웨어 브랜드에서 324만원을 법인카드로 긁었다. 어떤 옷이나 신발 등을 누가 몇 명이 샀는지는 적지 않았다.

    본사 직원 김모 씨는 '감독원 건강보호물품 구입'을 명목으로 2022년 6월27일 강원도 원주시의 한 골프웨어 브랜드에서 108만6800원을 썼다. 등산대회를 대비하고 건강보호물품을 마련하기 위해 공기업 법인카드 수백만원이 사용된 것이다. LH 관계자는 엄태영의원실에 "골프웨어 브랜드에서 선크림, 모기 제거 스프레이 등을 떨이(싼값)로 파는 경우가 있어 그랬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의무적 제한 업종인 골프장·골프연습장·스크린골프장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한 경우도 다수 발견됐다. 경남지역본부는 내부 직원끼리 다양한 활동을 하는 '지피지기' 행사를 목적으로 2021년 11월12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6만2300원을 썼다.

    경남지역본부는 2018년엔 5월, 11월, 12월 각각 '춘계체육행사' '일할 맛 나는 일터 조성을 위한 팀빌딩 활동비' '주거복지인의 날 행사'를 명목으로 같은 성산구 골프연습장에서 법인카드를 긁었다. 충북지역본부에서는 2019년 4월4일 갱신 계약 업무간담회를 이유로 충북 음성군 한 스크린골프장에서 2만3000원을 사용하기도 했다.

    LH 관계자는 엄태영의원실에 "사용 장소가 골프연습장이기는 하지만, 안에 있는 카페를 가거나 골프연습장과 함께 운영하는 볼링장 등에서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볼링을 쳤는지 스크린골프를 쳤는지는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LH 직원들은 이른바 '줄 서는 집'에서도 법인카드를 사용했다. 수도권주택공급특별본부 한 직원은 2021년 11월10일 유명 제과 브랜드 'ㄹ베이글'에서 법인카드 6만8200원을 사용했다. 사용목적은 업무간담회였다. 이 제과 브랜드는 '악명 높은 대기'로 유명하며,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 지점은 5시간 대기한 후 구매하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인천·강원·대구경북·서울·전북·충북·본사 가릴 것 없이 'ㄹ베이글' 압구정·도산·안국·제주점 등에서 법인카드를 긁었다. 2023년에도 업무간담회 등으로 총 13번 185만원을 사용하기도 했다.

    엄태영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법인카드를 개인 카드 쓰듯이"

    단순히 법인카드를 많이 사용했다는 것으로 비난할 수는 없지만, LH는 2021년 내부정보를 활용한 직원들의 집단적 부동산 투기를 시작으로 '전관 밀어주기'를 비롯해 '순살 아파트' 논란 등으로 전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다. 그런데 내부에서는 1년에 적게는 343억6000만원, 많게는 413억6000만원의 법인카드를 사용하고, 그마저 포차 등 술집을 비롯해 골프연습장에서 쓴 것이다.

    지난해 LH의 매출액은 19조4000억원이다. 2019년 연매출 20조원대에 진입한 뒤 매년 3조~4조원대의 매출 상승폭을 보이면서 2021년에는 27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정부는 LH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LH는) 이권의 담합 고리가 되는 전관에 대한 강도 높은 수술, 외부 수술을 받게 될 것"이라며 "LH가 어떤 부분은 민간보다 턱없는 전문성과 실력을 갖고 민간 위에 군림하는 등 많은 업무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LH의 사업 구조가 과연 맞는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엄태영 의원은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법인카드를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로 마치 개인카드 쓰듯이 사용하는 행태는 용납할 수 없다"며 "매번 말로만 혁신, 개혁을 외치는 LH가 제대로 된 혁신과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임직원들의 근본적인 태도와 마음가짐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