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평 남짓 공간… 폭염에 앓는 쪽방촌 주민들, 24시간 현장 취재기퀴퀴한 냄새 가득한 쪽방… "사람 살 데는 아닌데, 그냥 버티는 거지"푹푹 찌는 쪽방보다 시원한 외부… 비 오면 물 새, 테이프로 '덕지덕지'변기 곳곳 오물 흔적… 방 안에서 소변 본다는 알콜중독자도 있어쪽방촌 목사 "몸·정신 부서진 분 많아… 제 정신으로 돌아오게 돕고 싶다"
  • ▲ 동자동 쪽방촌 골목 옆으로 여인숙 건물이 들어서있다. ⓒ유동선 인턴기자
    ▲ 동자동 쪽방촌 골목 옆으로 여인숙 건물이 들어서있다. ⓒ유동선 인턴기자
    지난 7월29~30일 폭염으로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5월부터 이달 1일까지,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은 23명. 지난해 같은 기간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7명)의 3배다. 

    행정안전부는 폭염 위기경보 수준을 4년 만에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올렸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4일 비상근무 1단계를 2단계로 상향했다.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는 뜨거운 여름을 야외에서 지내는 이들이 서울 한복판에 있다. 밖이 더워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안이 더워 밖으로 나온 사람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의 이야기다.

    뉴데일리 김성웅 기자와 배정현·유동선·임준환 인턴기자 4명은 8월2~3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을 찾아 1박2일을 보냈다. '쪽방촌 사람들은 이 폭염에 어떻게 지낼까?' '폭염으로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 ▲ 동자동 인근 공원에서 주민들이 강아지와 함께 더위를 피하고 있다. ⓒ배정현 인턴기자
    ▲ 동자동 인근 공원에서 주민들이 강아지와 함께 더위를 피하고 있다. ⓒ배정현 인턴기자
    #. 8월2일 오전 9시

    "사람 살 데는 아닌데, 그들은 여기 아니면 갈 곳이 없어"

    서울역 12번 출구를 나와 고층의 KDB생명타워을 끼고 왼쪽으로 쭉 들어가면 퀴퀴한 하수구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골목길에는 노숙자 행색의 사람들이 배회 중이다. 쪽방촌이라 불리는 이곳은 서울 용산구 동자동. 골목마다 주민들이 쪽방의 무더위를 피해 길거리에 나앉아 있었다.

    쪽방(쪽房)은 한두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방을 뜻한다. 동자동에는 이러한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어떤 골목에는 '여인숙'이라는 빨간 글씨의 간판이 내걸려 있고, 다른 골목 벽에는 '월세, 010-xxxx-xxxx'라는 쪽지가 붙어 있다. 이곳에는 독거노인과 노숙자는 물론 알코올 중독자, 노름빚에 쫓기는 이들까지 하루살이를 반복하다 주저앉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 ▲ 쪽방의 입구 모습. ⓒ임준환 인턴기자
    ▲ 쪽방의 입구 모습. ⓒ임준환 인턴기자
    한 주민에게 쪽방촌 월세가 얼마나 되는지 묻자 "15만~40만원 선인데, 대부분 25만원 정도에 살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주민은 "(쪽방은) 사람 살 곳이 아니지만 여기 아니면 갈 곳이 없다"고 했다.

    전날 미리 빌려둔 '방'으로 향했다. 쪽방촌 주민들은 취재진을 의심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말끔한 행색의 젊은 남자 네 명이 올 곳은 아니기 때문일까. 골목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쿰쿰한 냄새가 심해졌다.
  • ▲ 김성웅 기자가 좁은 계단을 위태롭게 올라가고 있다. ⓒ임준환 인턴기자
    ▲ 김성웅 기자가 좁은 계단을 위태롭게 올라가고 있다. ⓒ임준환 인턴기자
    #. 오전 10시

    이불에는 노란 자국, 선풍기에는 먼지 가득, 벽 곳곳에는 곰팡이 

    2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쪽방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향하는 벽 곳곳에는 곰팡이가 피었고, 한 사람 지나가기도 힘들 만큼 비좁은 복도에서는 악취가 흘렀다.

    소주병이 복도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공용 화장실과 주방은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듯 했다. 숙소 곳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허리를 펴면 머리가 닿을 것 같은 낮은 천장 아래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작은 철제 계단을 올라가 2층에 있는 방에 도착했다. 실내외가 구분되지 않아 신발을 벗고 들어갈 공간조차 없었다. 그렇게 들어간 방은 1평 남짓했다. 시건장치도 없는 방 안에서 찌는 듯한 더위에 취재진은 모두 기진맥진했다.

    취재진은 일단 방 한 곳에 짐을 풀었다. 방 2개를 잡았지만 어떻게 취재해야 할지 막막했다. 회의가 필요했다. 

    이불에는 노란 자국이 묻어 있고, 바닥에는 정체 모를 검은 가루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TV는 켜지지 않았다. 냉장고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선풍기가 있었지만 틀고 싶지 않았다. 트는 순간 먼지폭풍이 일어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켜고 어떻게 할지 의견을 모았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땀방울이 맺히더니 이내 땀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오감 중 가장 적응이 빠르다는 후각인데도 적응이 안 되는지, 악취가 계속 코를 찔렀다. 방 안 온도계는 34도를 가리켰다.
  • ▲ 오전 11시30분경 쪽방 실내온도는 34.3도 습도는 88%다. ⓒ유동선 인턴기자
    ▲ 오전 11시30분경 쪽방 실내온도는 34.3도 습도는 88%다. ⓒ유동선 인턴기자
    #. 오후 1시

    답답한 쪽방 벗어나자… "여름이 이렇게 시원한 계절이었네"

    바깥 공기를 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동료 한 명이 "여름이 이렇게 시원한 계절이었네"라고 말했다. 우스갯소리였지만 정말 그랬다. 밖은 쪽방에 비하면 가을이었다.

    두 명은 주저앉고, 다른 둘은 드러누웠다. 왜 사람들이 쪽방 밖에서 하염없이 넋을 놓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푹푹 찌는 방을 벗어나 야외로 나오는 것이 최선일 것이었다.
  • ▲ 쪽방촌 주민이 무더위에 선풍기를 틀고 있다. 주민은 잘 나오게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했다. ⓒ임준환 인턴기자
    ▲ 쪽방촌 주민이 무더위에 선풍기를 틀고 있다. 주민은 잘 나오게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했다. ⓒ임준환 인턴기자
    #. 오후 1시30분

    "쪽방은 생지옥이야… 갈 데가 없으니 그냥 사는 거지"

    임준환 인턴기자가 같은 쪽방 건물에 거주하는 백모(70) 씨를 인터뷰했다. 머리를 뒤로 넘긴 백씨는 흰 민소매 셔츠에 헐렁한 사각팬티를 입은 채 "쪽방은 생지옥"이라고 말했다.

    백씨는 임 기자에게 고량주를 권하면서 "여기에는 희망이 없어. 겨울에는 춥고, 여름은 물 새고 더워 죽겠어"라고 탄식했다.

    백씨는 이어 "에어컨을 틀고 싶어도 못 틀어. 전기값 때문에 리모컨을 건물주가 갖고 있는데 어떻게 틀어?"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실제로 취재진이 묵은 쪽방 복도에는 낡은 에어컨 한 대가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벽으로 촘촘히 채워진 쪽방 건물 전체를 시원하게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마저 특정 시간대에만 가동했다.

    "아침에 더워서 씻고 싶어도 많이 기다려야겠네요?"라는 질문에 백씨는 "참아야지.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인데 갈 데가 없으니 그냥 사는 거지"라고 말했다.

    백씨는 "요즘은 경마 경기를 보는 것이 인생의 낙"이라며 "그마저 돈이 없으면 못 한다"고 했다.
  • ▲ 소방대원이 쪽방촌 골목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다. ⓒ김성웅 기자
    ▲ 소방대원이 쪽방촌 골목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다. ⓒ김성웅 기자
    #. 오후 2시

    "안에 뭐 하러 있어? 나와 있는 게 더 시원해"

    점심을 먹은 후 김성웅 기자와 유동선 인턴기자가 주민들을 만나보기기 위해 나섰다. 배정현 인턴기자는 쪽방촌 관련 기관과 통화를 위해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인근에 위치한 새꿈어린이공원에는 공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쪽방촌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쪽방의 더운 열기를 피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무더운 날씨 탓인지 이들의 표정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들의 눈에 취재진은 반갑지 않은 이방인 같았다. 그래서인지 몇몇 주민들은 경계심을 드러내며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다.

    문모(71) 씨는 동자동 쪽방촌에 12년째 살고 있다. 어릴 때 친부모와 헤어지고 양어머니에게 쫓겨났다고 했다.

    문씨는 더위가 제일 힘들다고 했다. 그는 "에어컨이 있으면 좋겠지만 건물주가 요금 때문에 반대해서 설치를 못한다"며 "솔직히 전기세를 낼 형편도 안 되고, 그냥 밖에서 버티는 거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문씨의 방은 취재진이 묵는 방보다 더 열악했다. 창문은 없고, 방은 더 비좁았다. 소형 선풍기가 있지만 더위를 물리치기에는 한참 부족해 보였다. 비가 오면 물이 새서 여기저기 테이프를 붙였다.
  • ▲ 알코올 중독자 이모씨의 방 내부 모습. ⓒ김성웅 기자
    ▲ 알코올 중독자 이모씨의 방 내부 모습. ⓒ김성웅 기자
    #. 오후 2시20분

    쪽방촌 알코올 중독자 "나는 힘들어서 방에서 쉬 해" 

    공원 옆 오르막길에서 몸을 떨면서 앉아 있던 이모(54) 씨를 만났다. 이씨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김 기자는 술을 사 달라는 그의 부탁을 거절하고 쪽방촌에서 더위를 어떻게 피하는지 물었다. 답변은 "밖에 나온다" 한마디였다.

    뒤에 앉아 있던 민모(60) 씨는 "선풍기를 상담소 같은 곳에 신청해도 바로 받기 힘들다. 결국 밖으로 나오는 수밖에 없다"며 취재진이 건넨 음료수를 들이켰다.

    이씨의 동의를 얻어 그의 방으로 향했다. 그의 거동이 불편한 탓에 취재진만 이동했다.

    문을 열자 방 내부에 고여 있던 냄새가 확 덮쳐왔다. 유 기자는 결국 헛구역질을 했다. 김 기자도 인상을 찌푸렸다. 분뇨 냄새였다.

    특히 분뇨 냄새가 더위와 합쳐져 심각한 악취가 났다. "나는 힘들어서 방에서 쉬 해(소변을 본다)"라고 이씨가 말한 것이 떠올랐다.

    같은 시각 쪽방촌의 더위를 조금이라도 식히기 위해서인지 소방관들이 소방 호스로 거리에 물을 뿌렸다.

    또 경찰은 확성기로 인근 주민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상태를 확인했다. 주민들은 이런 모습이 익숙한 듯했지만, 일부는 경찰의 확성기 소리가 시끄럽다며 신경질을 내기도 했다.
  • ▲ 동자동 쪽방촌 인근 골목 전경. ⓒ배정현 인턴기자
    ▲ 동자동 쪽방촌 인근 골목 전경. ⓒ배정현 인턴기자
    #. 오후 2시30분

    "술 끊고 제 정신으로 돌아오게 하는 게 그들을 돕는 실질적인 방법이죠"

    공원 방범 관계자인 최모 씨는 "쪽방촌 주민들은 정부의 지원이 체감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는 독거노인도 많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도 많다"며 "기본적으로 외부에 나가는 것을 꺼려서 지원을 받기 위해 나가거나 무료 공중목욕탕에도 가지 않는다. (봉사자들이) 쪽방촌으로 찾아와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씨는 또 "쪽방에 에어컨이 있는 경우는 드물지... 집주인이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집주인들은 자기가 돈을 더 내는 것을 싫어한다"며 "그 피해가 쪽방촌 주민들에게 애꿎게 돌아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쪽방촌 길목 한 구석에 작은 교회가 눈에 띄었다. 문을 두드리자 인자한 인상의 목사가 반겼다.

    쪽방을 개·보수해 만든 이 교회는 작고 소박했지만 안락함이 느껴졌다. 바로 이곳에서 쪽방촌 주민들은 한 줄기 희망을 붙잡고 지나간 후회와 미련을 지우고 있었다.

    "집사람하고 저는 이곳 사람들의 생활과 실태를 24시간 알기 위해 쪽방에 같이 살면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민족사랑교회 임호성 목사는 이마에 맺힌 구슬땀을 닦으며 말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는 몸과 정신이 부서진 분이 많다. 그 원인은 결국 술인데, 그래서 전문 상담사를 섭외해 알코올 중독 관련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 목사는 "서울시든, 기독교 단체든 지원을 받아 이 동네에 알코올 중독 상담센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분들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대부분의 이유가 술 때문이다. 술을 끊고 제 정신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 그들을 돕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 배 기자는 인근 서울역쪽방상담소를 방문했다.

    전익형 서울역쪽방상담소 실장은 "저희는 민간 복지관과 똑같은 개념"이라며 "한정된 예산으로 주민을 위한 장소와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니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고 열악하다"고 토로했다.

    대부분 건물에 냉방기구가 없는 이유를 묻자 전 실장은 "일부 건물주는 입주민의 생활이 자신과 직접 연관이 없어 에어컨 설치를 안 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에어컨이 없어도 쪽방촌 주민들은 방세를 꼬박꼬박 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 실장은 쪽방촌을 두고 건물주와 입주민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단순히 선악(善惡)으로 구분할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재개발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 쪽방촌의 몇 안 되는 취사 시설. ⓒ임준환 인턴기자
    ▲ 쪽방촌의 몇 안 되는 취사 시설. ⓒ임준환 인턴기자
    #. 오후 6시

    20여 명이 지내는 건물에 취사시설은 단 2곳… 열악한 환경에 '땀 뻘뻘'

    취재진은 저녁을 먹기 위해 동네 슈퍼에서 라면과 젓가락 네 개, 생수를 사들고 쪽방으로 돌아왔다. 배정현 기자와 유동선 기자는 취재한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여전히 악취가 났고, 습기가 가득했다. 온도계는 낮보다 2도 낮은 32도를 가리켰다. 

    김 기자와 임 기자가 라면을 끓이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쪽방촌 건물 대부분은 주방을 공용으로 사용한다. 주방 가스레인지는 녹이 슬었고, 바닥은 시멘트가 드러나 있다. 냄비도 공용으로 사용하는지 음식물이 담겨 있었다. 주위에는 파리가 날아다녔다.
  • ▲ 임준환 인턴기자가 라면을 끓이고 있다. ⓒ김성웅 기자
    ▲ 임준환 인턴기자가 라면을 끓이고 있다. ⓒ김성웅 기자
    라면을 조리하기 전, 공용 양은냄비를 손가락 지문이 닳도록 닦았지만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가스레인지도 잘 켜지지 않았다. 몇 번이나 벨브를 돌리고 나서야 파르르 불이 켜졌다. 허리도 펴지 못한 채 라면을 끓이는 임 기자의 턱 끝으로 땀방울이 떨어졌다.

    끓인 라면을 들고 오자 방 온도가 33도로 올랐다. 웬만하면 맛이 없을 수 없는 라면 냄새가 방 안의 악취와 뒤섞여 역하게 느껴졌다. 넷은 금방 젓가락을 내려놨다.

    옆 방의 백씨는 "한여름에는 밥 먹기도 힘들어. 방에서 라면 같이 국물이 있거나 뜨거운 거 먹으면 김 올라서 곰팡이가 펴"라고 말했다. 그는 "너희들이 무슨 고생이냐"며 언 생수 네 개를 가져다 줬다.
  • ▲ 쪽방촌의 좁은 화장실. 변기 곳곳에 오물이 묻어 있다. ⓒ김성웅 기자
    ▲ 쪽방촌의 좁은 화장실. 변기 곳곳에 오물이 묻어 있다. ⓒ김성웅 기자
    공용 샤워장에는 수도꼭지와 연결된 샤워호스, 세숫대야, 앉은뱅이 의자, 빨래판이 하나씩 있었다. 벽에는 실내용 거울이 걸려 있었다.

    샤워장에 옷가지 등을 걸어 둘 곳조차 없어 속옷차림으로 복도를 지나쳐 가야 했다. 무더운 날씨로 입주민 대부분 문을 열어 놓고 있었기에 심히 민망했다.

    화장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취재진이 묵은 쪽방의 화장실은 양변기였다. 덮개를 들어 올리던 김 기자가 구역질을 했다. 덮개 뒷면에 오물이 튀어 누런 얼룩이 묻어 있었다.
  • ▲ 쪽방촌 넘어로 대형 빌딩과 고급 호텔이 보인다. ⓒ임준환 인턴기자
    ▲ 쪽방촌 넘어로 대형 빌딩과 고급 호텔이 보인다. ⓒ임준환 인턴기자
    #. 오후 9시

    뉘엿뉘엿 해는 져도… "고개 돌리면 고층빌딩 보이는데, 참 민망해요"

    취재진이 정신을 차릴 무렵 쪽방촌에도 어둠이 깔렸다. 날이 어두워지자 동네 분위기도 사뭇 달라졌다.

    공원과 길거리에는 술을 마시는 주민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또다른 골목 구석에서는 노숙인들이 자리를 깔고 잠을 청했다. 낮 시간에는 그나마 간간이 돌아다니던 외지인도 밤이 되자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한강대로 104길'을 두고 도로 양 옆은 그야말로 다른 세상이었다.

    한 편에는 고층빌딩, 고급 호텔 등이 늘어서 있었다. 다른 편에 옹기종기 모인 쪽방촌은 지척에 있지만 도로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극명하게 나뉘었다.

    사진 촬영을 하던 임 기자에게 한 주민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는 "바로 건너편에 큰 빌딩이랑 아파트가 보이는데 내 집을 보면 속상해요. 여긴 사람 살 곳이 아니라 저 건물들과는 비교하기도 민망해요"라고 말했다. 그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 ▲ 어두운 밤 쪽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가로등 불빛. ⓒ유동선 인턴기자
    ▲ 어두운 밤 쪽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가로등 불빛. ⓒ유동선 인턴기자
    #오후 11시

    이불 펼치자 먼지가 자욱
    … 코 고는 소리, 기침 소리 울리는 한밤 쪽방촌

    열대야에 지친 취재진도 쪽방에 누워 잠을 청했다.

    언제 세탁했는지 알 수 없는 이불을 펼치자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이불에는 정체를 알고 싶지 않은 노란 얼룩과 털이 묻어 있었다.

    잠을 청하기 위해 방 문을 닫고 소등하니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칠흑 같은 암흑에 극심한 불쾌감이 느껴졌다. 왜 이곳 주민들이 방 문을 열고 자는지 금세 알게 됐다. 결국 문을 연 채 잠을 청했다. 다리를 펴면 반대쪽 벽에 발이 닿아 새우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불편한 환경 때문인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문 밖에서는 쪽방 주민들의 코 고는 소리, 마른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이 작은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망과 절망을 삼켰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여름 동자동 쪽방촌의 밤은 깊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