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 '제3회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개최송현공원·CGV피카디리서 '자유·정의·인권' 주제로'정전70주년' '北인권' '원자력' 등 특별기획전 다양이장호 집행위원장 "北 인권, 더 이상 외면 말아야"
  • ▲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장호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이기륭 기자
    ▲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장호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이기륭 기자
    "2003년 무렵 제가 백두산에 가려고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두만강 앞에 있는 도문(圖們)에서 바라보니 불과 30m 건너편에 북한 땅이 보이는 거예요. 잡초만 무성하고 누렇게 시들어버린 그곳을 보니까 저절로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때 나도 모르게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왔어요."

    이장호(78) 감독은 지난달 30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자유와 인권이 억압된 북한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대한민국으로 나누어진 '분단 국가'라는 현실이 가슴으로 느껴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며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론 다행스럽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교차하면서 북한 동포들에 대한 '부채 의식' 같은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함경남도 출신이라 북한에 대한 감정이 남달랐던 이 감독은 생전 북한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북한 상공을 날아다니는 꿈을 종종 꿨다고 말했다.

    "핏줄의 힘이라고나 할까요. 무의식 중에 북한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나 봐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 동세대 사람이 꿀 수 없는 북한에 대한 꿈들을 많이 꿨어요. 참 신기하죠? 한 번도 가본 적도 없으면서…."

    "하지만 북한을 아련하게 그리워 하는 마음은 있을지언정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삶을 마치 내 일처럼 안타깝게 여기지는 않았다"며 "2000년대 전까지, 저에게 북한이라는 땅은 아버지의 고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이 감독은 말했다.

    중국 도문에서 일종의 '깨달음'을 얻은 뒤로 북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던 이 감독은 2011년부터 '북한인권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자유'와 '인권'이 북한 주민들에게는 감히 꿈꾸지도 못하는 '이상향(理想鄕)'에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영화제 첫 회에 '노스코리아 VJ'라는 다큐멘터리를 상영했는데요. 이 영화가 참 인상 깊었어요. 북한 사람이 몰래 찍은 필름을 일본 사람이 가져와 편집한 영화인데요. 어느 산속 들판에서 삐쩍 마른 소녀가 토끼풀을 캐는 장면이 나와요. 시장에 내다 팔려고 풀을 캐는 중이라는 이 소녀는 아무리 봐도 초등학교 5~6학년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몇살이냐'는 질문에 '27살'이라고 답하는 거예요. 그 장면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 ▲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장호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이기륭 기자
    ▲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장호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이기륭 기자
    이 감독은 "그 소녀는 생각지도 않게 '향란'이라는 예쁜 이름을 갖고 있었다"며 "부모가 그 아이를 낳을 땐 향란이라는 이름을 지어줄 정도로 귀하게 태어난 건데, 북한에서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거였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감독은 "젊은 시절엔 '한 나라 한 민족'이라는 취지로 북한(정권)을 우호적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이게 다 엉터리였다는 걸 알게 됐다"며 "서울역에서 북한인권국제영화제 개막식을 열 때 대학생들이 '백제와 신라가 있었듯이 남한과 북한으로 나눠진 게 뭐가 문제냐' '우리가 왜 북한 인권을 걱정하느냐'고 말하는 걸 듣고 또 한 번 충격을 받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 소리를 듣고, 우리나라에서 '북한 인권'이라는 게 완전히 사각지대에 있음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나라도 변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이 감독은 "그런데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모든 지원이 다 끊어지면서 2020년 제10회를 마지막으로 북한인권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리게 됐다"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인권'을 주제로 한 영화가 '박해'를 받고 중단되는 참단한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개탄했다.

    그 무렵 마치 운명처럼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과 허은도 감독을 만났다고 밝힌 이 감독은 "이 분들의 주도로 북한인권국제영화제의 정신을 이어받은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Seoul Larkspur International Film Festival, SLIFF)'가 출범하게 됐다"며 "2021년 열린 첫 회엔 '서울락스퍼인권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인권을 소재로 한 다양한 영화들을 소개했다"고 밝혔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는 '국제영화제'답게 해외 초청작을 대거 늘리고, 섹션을 △'정전 70주년 특별상영전' △'북한인권 특별상영전' △'원자력 특별기획전' 등으로 다양화했다.

    이 영화제에서도 집행위원장을 맡아 전방위로 활약 중인 이 감독은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일부 계획했던 프로그램을 수정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서울 종로구청의 도움으로 '열린송현공원' 특설무대에서 막을 올리게 됐다"며 "오는 6일까지 열리는 영화제 기간 열린송현공원과 CGV피카디리로 오셔서 뜻깊은 시간을 보내시길 바란다"고 권했다.
  • ▲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장호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이기륭 기자
    ▲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장호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이기륭 기자
    6월 1일부터 6일까지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열린송현공원)과 CGV피카디리에서 개최되는 제3회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는 △'유 돈 노우' △'파란 기다림' △'잊혀진 영웅들' 등 북한 인권 문제를 예리한 시선으로 조명한 영화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자유를 향하여'라는 특별전에서는 △중국 인권 탄압을 다룬 아카데미영화제 캐나다 공식 출품작 '영원한 봄(ETERNAL SPRING)'과 △아르메니안 학살을 다룬 '모국(MOTHERLAND)' △미국 대선 부정선거를 다룬 '누가 훔쳤나(2000 MULE)' 등이 관객들을 찾아간다.

    정전 70주년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기획된 '정전 70주년 특별상영전'에서는 폐막작 '아일라(Alya)'를 비롯해 △'한국동란의 고아' △'장진호전투' △'원한의 도곡리 다리' △'폭찹 고지전투' △'빨간 마후라' △'태극기 휘날리며' 등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상영된다.

    '탈원전에서 혁신 원자력 시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원자력 특별기획전'에선 개막작 '지금 원자력(NUCLEAR NOW)'을 비롯해 △'아토믹 호프(AUTOMIC HOPE)' △'판도라의 약속(PANDORA'S PROMISE)'이 상영될 예정. 상영 후에는 '지금 원자력'을 연출한 올리버 스톤 등 감독들과 국내 원자력 관계자들과의 포럼 및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된다.

    이 감독은 "올해의 경우 지난해보다 '북한 인권 영화'가 대폭 늘어난 점이 특징"이라며 "질적인 면에서도 우수한 작품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특히 개막 당일 시상하는 '단편영화 공모전'에 뛰어난 영화들이 대거 몰리면서 심사위원들이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제3회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단편영화 공모전에는 올해 총 250여편이 출품됐는데, 1일 열리는 개막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각본상 △편집상 등 총 다섯 부문에 걸쳐 시상이 이뤄질 계획이다.

    이 감독은 "북한 인권과 관련해 각종 세미나와 포럼 등이 이어지고 있지만, 솔직히 관련 분야나 일부 지식인 사이에서만 회자될 뿐, '확산성'이 적어 일반 대중과 괴리감이 있는 게 현실"이라며 "그런 점에서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북한 인권의 실상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일단 영화제를 진행하면서 다수의 젊은 스태프들이 참여하게 되는데요. 먼저 이들을 통해 '북한의 인권 현실이 이렇구나'라는 메시지가 업계에 전파될 수 있고요. 일반 관객분들도 상영작을 감상하면서 자연스레 인권 문제에 눈을 뜨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러한 관심들이 쌓이고 쌓이면 북한 인권 문제가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이고, 나중엔 국제적인 문제로까지 확장될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