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초상화에 낙서했다고 수용… 성경책 갖고 있다는 이유로 끌려갔다""영양실조로 수용소 병원 오는 사람이 대다수… 약 항상 부족, 소금물이 소독약"손광주 전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북한은 수령절대주의 체제, 반하면 공개처형"
  • ▲ 지난 2004년 일본 후지 TV가 공개한 북한 내 정치범수용소. 함경남도 요덕군 요덕수용소에 수감된 부녀자들의 모습. ⓒ연합뉴스
    ▲ 지난 2004년 일본 후지 TV가 공개한 북한 내 정치범수용소. 함경남도 요덕군 요덕수용소에 수감된 부녀자들의 모습. ⓒ연합뉴스
    편집자주

    정부가 2017년부터 비공개로 작성해온 북한인권보고서를 처음 공개했다. 2016년 북한인권법이 채택된 후 정부는 2018년부터 해마다 북한인권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굴욕적인 친북(親北)행보로 일관했던 문재인정부는 북한의 거센 반발과 탈북민 신상 보호를 이유로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반면 윤석열정부는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태를 널리 알리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보고서 공개를 결정했다. 김정은정권에서 고통받는 북한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보고서는 총 450쪽 분량이다. 2017년 이후 탈북한 북한이탈주민 508명이 증언한 수많은 인권침해 사례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시민적·정치적 권리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취약계층 △특별사안(정치범수용소·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 등 4개 부문으로 구성됐다. 세계 최악의 인권 사각지대 북한의 현실을 충실히 담아냈다는 평이다. 

    본지는 유엔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출범 10년, 북한인권결의 채택 20년을 맞아 처참한 북한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 ▲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체제를 비판하면 수용소로 끌려가는 북한. ⓒ연합뉴스
    ▲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체제를 비판하면 수용소로 끌려가는 북한. ⓒ연합뉴스
    [정치범 수용소]

    북한에는 정치범을 따로 수용하는 곳이 존재한다. 북한주민들은 이를 '관리소'라고 부른다. 정치범수용소 수용자와 관련, 북한이탈주민은 소위 간첩·반역행위 등을 한 경우와 그 가족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탈북 전에도 정치범수용소를 알고 있었다는 사람이 많았다.

    정치범수용소는 주민들의 접근이 어려운 산악지역에 위치해 있다. 수용소는 매우 넓은 것으로 파악됐다. 대표적인 예로 함경남도 요덕군 입석리 지역 전체가 15호 혁명화구역이라는 진술, 혁명화구역 초입부터 주요 생활시설이 있는 곳까지 도보로 30분 정도 소요됐다는 진술이 있었다.

    정치범수용소에는 정치범과 그 가족이 수용된다. 관련된 진술은 1950년대 말에 수용된 사례부터 최근까지 다양하게 수집됐다. 수용 이유를 살펴보면 성분 문제, 간첩행위, 북한 내 권력다툼이나 기관원의 횡령 등 비위 관련 문제, 가족이 탈북해 한국에 거주하거나 본인의 한국행 시도, 인신매매나 한국 거주자와 통화 등이 있다.

    특히 '말 반동'이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등의 권위를 훼손한 것이 수용 사유가 되기도 한다. 유일사상체계와 관련한 방송의 보도가 시끄럽다며 스피커를 뜯어 처벌 받은 사례, 3대 세습을 비판하며 지도자는 계속 바뀌어야 한다고 말해 처벌 받은 사례, 술자리에서 정권을 비난하거나 당이 인민을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 처벌된 사례, 초상화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처벌된 사례, 김일성 초상화에 낙서한 범인으로 지목돼 처벌된 사례, 북송된 재일교포의 가족이 북한체제에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수용된 사례 등이었다.

    종교활동 때문에 수용된 사례도 눈에 띈다. 탈북 후 중국 체류 중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기독교 선교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수용되거나, 북한 내에서 종교활동을 하면서 이웃을 상대로 기독교 선교활동을 했다는 이유, 종교활동과 성경책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수용된 사례 등이 있었다.

    북한의 정치상황 때문에 토대와 출신성분이 수용 사유가 된 정치범은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고 잡혀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범으로 지목된 사람이 보위부 등에 의해 체포·실종된 후 가족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는 것을 짐작하게 되고, 기관원을 통해 수용된 사실을 확인하는 경우도 많았다.

    증언자에 따르면, 보위부 등은 직장이나 학교로 찾아가 정치범을 체포한 뒤 기차로 수용소 인근까지 이송했다. 당시 같이 이송된 주민이 수백 명에 달했다는 진술이 있다. 반역행위로 수용된 사람은 화물차에 살림도구를 대강 실었으며, 어린 자녀도 함께 데리고 갔다고 한다.

    한 증언자는 "어머니가 2014년 자택에서 보위부 보위원에게 체포됐고, 체포된 이유는 남한사람과 손전화로 통화를 하고 돈을 이관받았다는 것"이라며 "그 다음부터 소식이 끊어졌고 어느 보위부로 갔는지, 어떻게 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정치범수용소 내에서는 공개처형이나 비밀처형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1980년대 초 이주민 남녀가 수용소에서 금지된 자유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총살됐다는 진술이 있었다.

    한 증언자는 "1995년부터 2000년 사이 북창군 봉창리 18호 관리소 내 대동강변에서 공개처형을 4건 목격했다"며 "1년에 1~2건 정도 있었고 주로 남성 1~2명을 처벌했으며 죄명은 대부분 도주였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수용소에는 병원이 설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병원에서는 이주민과 기관원 간 진료를 차별하며, 기관원과 그 가족이 주로 이용한다는 진술이 있었다.

    약이 항상 부족한 상황이어서 소독약은 10% 정도 소금물을 만들어 사용했고, 완전통제구역 내에서 만들어 가져오는 링거(포도당·증류수)는 부작용이 많았다고 한다. 결핵환자는 시설 내 격리시설에 격리됐지만, 투약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한 증언자는 "영양실조로 병원에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특히 설사환자가 많았다"며  "마취약이 거의 공급되지 않아 마취도 없이 칼로 째서 고름을 빼고 소금물에 담가둔 거즈로 소독했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 ▲ 북한에서는 종교 활동을 하거나 성경책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수용되기도 한다. ⓒ연합뉴스
    ▲ 북한에서는 종교 활동을 하거나 성경책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수용되기도 한다. ⓒ연합뉴스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

    북한은 사회주의헌법(2019) 제65조에서 누구나 다 같은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주민을 3대 계층으로 나누고 있다. 특히 국군포로나 이산가족과 같은 소위 남한 출신은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복잡한 계층에 해당하며, 일상생활에서 차별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군포로 다수가 거주했다는 함경북도 새별·무산군과 함경남도 단천시에서는 수십 명이 무리배치돼 같은 기업에서 일했다는 증언이 있다. 이들이 소속된 직장은 새별군 고건·원구탄광, 무산군 무산탄광, 단천시 검덕광산 등 탄광과 광산으로 잘 알려진 지역이었다.

    탄광이나 광산에 배치된 후에도 '굴진공' '채탄공'처럼 막장으로 들어가 일해야 하고 기피업무를 맡아야 했던 경우가 다수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은 국군포로를 따로 관리하고, 자신은 물론 직계가족까지 감시하고 있다. 감시는 남한 출신자들에게 포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지만, 특히 국군포로는 탈북할 가능성 등으로 감시가 더욱 심하게 이뤄진다.

    국군포로와 가족의 차별은 상급학교 진학, 직장 배치, 승진, 입당, 입대 등 사회 모든 면에 적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군포로의 자녀로 학업성적이 우수했지만 대학 입학에 필요한 추천을 받지 못해 진학이 무산됐는데, 아버지의 출신 때문이었다는 사례도 있었다.

    납북자는 북한에 의해 강제로 납북돼 북한에 억류 또는 거주하게 된 사람으로, 한국전쟁 중 납북자(전시 납북자)와 정전협정 체결 이후 납북자(전후 납북자)가 포함된다. 납북자는 감시와 차별의 대상이었다고 하며, 국군포로들과 마찬가지로 탄광·광산지역에 무리배치된 사례도 있었다.

    납북자들은 피랍 및 강제억류 과정에서 자유의 박탈, 가족 결합권 침해, 차별과 감시 등의 인권 침해를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납북 사실 자체를 부정하며, 전후 납북자와 관련한 진술은 매우 적을 뿐만 아니라 신상도 특정되지 않아 상세한 인권 침해 내용 파악에 어려움이 따른다.

    월남자는 6·25전쟁에 인민군으로 참여했다 행방불명 또는 전사자로 처리되거나, 한국 또는 제3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된 경우, 한국에서 피신이나 임시 거주 등의 이유로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한 경우다. 실제로 월남자 가족의 대학 진학, 입대 등 사회적 지위 획득 과정에서의 차별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인민군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월남자의 가족은 입당이 가능했지만, '당 일꾼' 법 일꾼(안전원·보위원)' 등이 될 수 없었다는 진술이 있었다. 제대 후 입당한 상태에서 보위원이 되기 위해 '보위대학' 입학 추천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인민군으로 참전했던 큰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은 이유가 해명되지 않아 추천이 무산됐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증언자는 "할아버지가 6·25전쟁 때 월남자였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월북자와 가족도 특정 대학 입학, '당 일꾼', 군 관련 직장에서 근무 등이 어려웠던 것으로 파악됐다. 월북자의 가족으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참여한 후 차별 당한 경우도 있었다. 부모가 한국전쟁 당시 월북했다는 이유로 자녀가 김일성종합대학 입학 추천을 받고 시험을 치러 합격했지만 입학이 거부됐다는 사례도 있었다.

    아버지가 월북한 후 소식을 모르던 한국의 고모를 상봉 행사를 통해 만나고 난 뒤 군부대 전기발전소에서 해임됐다는 진술, 시어머니가 상봉 행사를 통해 한국의 가족과 만나고 난 뒤 자녀들까지 거주지 보위부에서 지속적으로 감시했다는 진술이 있었다.

    한 증언자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 후부터 담당 보안원들이 수시로 우리 집에 찾아와 못살게 굴고 인민반에서도 감시했다"고 토로했다.
  • ▲ 손광주 남북하나재단 손광주 이사장. ⓒ연합뉴스
    ▲ 손광주 남북하나재단 손광주 이사장. ⓒ연합뉴스
    손광주 전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이념연구센터장, 경기개발연구원 통일동북아센터 선임연구위원을 역임했다.

    손 전 이사장은 고(故) 황장엽 전 북한민주화위원장의 연구비서로 일하며 북한·통일·탈북자 문제를 연구했다. 소위 말하는 북한 전문가다.

    손 전 이사장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는 어떠한 경우 처벌되느냐'는 질문에 "북한체제는 수령절대주의이므로 이에 심각하게 반할 경우 공개처형된다"고 설명했다. 손 전 이사장은 이어 "북한에서는 당의 유일영도체계 10대 원칙을 반하면 안 된다"고 부연했다. 

    "최근 북한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이 한국 드라마 같은 작품을 볼 경우 옛날과 달리 공개적으로 이름을 밝히고 벌을 준다"고 전한 손 전 이사장은 "반동사상문화백일법·청년교양보장법·형량문화어보존법 등의 법들이 한류를 막아내기 위한 법적 장치"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손 전 이사장은 북한 수용소의 열악한 의료 문제를 언급하며 "수용소 관리원들도 의약품이 부족한데 범죄자들은 어떻게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겠느냐"며 안타까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