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니 네트워크, ISIS-K 지원하는 탈레반…아프간·파키스탄 파슈툰족의 지원받는 탈레반반탈레반 저항군 가담 중인 타지크족, 하자라족, 우즈벡족…이슬람 근본주의와 거리 멀어
  • ▲ 지난 15일(현지시간) 아프간 패망 직후 카불 대통령궁을 점령한 탈레반 조직원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15일(현지시간) 아프간 패망 직후 카불 대통령궁을 점령한 탈레반 조직원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패망 후 아프간은 탈레반이 홀로 장악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들을 도와 아프간 정부를 무너뜨린 세력이 ‘하카니 네트워크’와 ISIS-K(호라산 이슬람 국가)다. 이들 세력은 아프간과 파키스탄에 퍼져 있는 파슈툰족에 두고 있다. 반면 탈레반에 맞서는 저항군이나 미국·한국 등 서방진영에 협력한 사람들은 타지크족, 하자라족, 우즈벡족 같은 소수민족이다.

    탈레반·알카에다 가운데서도 극단주의자들끼리 모인 ISIS-K

    아프간 테러조직 ISIS-K는 26일(이하 현지시간) 카불 국제공항 주변에서 폭탄 테러를 자행한 것이 자신들이라고 밝혔다. 탈레반은 이들과의 관계를 부정하고 있지만 ‘하카니 네트워크’를 통해 연계됐다는 지적이 국내외에서 나온다.

    ISIS-K는 2015년 1월 아프간 동부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탈레반과 알카에다 내에서 지나치게 극단적인 주장과 행동을 일삼던 자들이 당시 시리아·이라크에서 발호한 ISIS를 추종하면서 만들었다. 지난해 미국과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 측과 평화협상을 시작하자 “배신했다”며 탈레반을 공격할 정도로 극단적이다.

    이들은 ISIS에 충성 맹세를 한 다른 조직들처럼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테러를 자행해 왔다. 테러 목표도 서방국 정부나 군인이 아니라 외국 민간인과 자국민 임산부, 아동까지 가리지 않았다. 때문에 조직 결성 직후부터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ISAF), 아프간 정부군의 공격을 받았다. 한때 그 세력이 크게 줄었다가 현재는 2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주재 러시아 대사는 그 수가 4000명이라고 주장했다.

    알카에다 조직원 보호해주고 ISIS-K 뒷배 봐주는 테러조직 ‘하카니 네트워크’

    ISIS-K가 아프간 패망 이후 전면에 나서는 데 ‘하카니 네트워크’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패망 이후 카불의 치안유지를 맡게 된 것으로 알려진 ‘하카니 네트워크’는 탈레반이면서 알카에다 호위무사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아프간 동부와 파키스탄 북서부를 근거지로 하고 있으며, 인원은 최대 1만 2000명으로 추정된다. 1996년 탈레반 집권 시기 권력 중심부에 있었던 ‘하카니 네트워크’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 이후 알카에다 조직원을 숨겨주고 보호하는 활동을 폈다. ISIS-K와 이를 통해 관계가 맺어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 지난 18일(현지시간) 잘랄라바드에서 벌어진 반탈레반 시위. 탈레반에 반대하는 아프간 시민의 수도 적지 않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18일(현지시간) 잘랄라바드에서 벌어진 반탈레반 시위. 탈레반에 반대하는 아프간 시민의 수도 적지 않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8년 9월 사망한 잘랄루딘 하카니가 1970년대 말에 만든 이 테러조직은 현재 아들이 이끌고 있다. 현재 수괴 칼릴 알라흐만 하카니는 미국 정부가 500만 달러(약 58억원)의 현상금을 건 상태다. 하카니는 지난 22일 카불에 나타나 외신과 인터뷰를 하는 등 건재를 과시했다. 이튿날에는 ‘아프간 새 통합정부 12인 위원회’에도 이름을 올렸다.

    ISIS-K와 하카니 네트워크, 탈레반 공통점은 ‘파슈툰족 이슬람 근본주의자’

    탈레반은 이런 ISIS-K와 하카니 네트워크를 모두 거느린다. 이는 이들이 같은 부족을 중심으로 모인 조직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탈레반이라는 단어 자체가 파슈툰 부족어 ‘탈리브(학생)’의 복수형이다.

    1979년 소련의 침공 이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이슬람 국가들은 파키스탄을 통해 무자헤딘을 지원했다. 파키스탄은 무자헤딘 중에서도 아프간 남부 파슈툰족을 주축으로 한 세력을 집중 지원했다. 탈레반의 시작이었다. 소련이 물러난 뒤인 1990년대 초부터 탈레반은 별도의 세력으로 성장했다. 파키스탄 북부에서 ‘탈레반’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 무장 세력은 곧 파슈툰 족이 거주하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샤리아 율법으로 통치하는 신정일치 국가로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마드라사(이슬람 율법학교)’를 졸업한 파키스탄의 파슈툰족 청년들도 속속 탈레반에 합류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아프간 인구 가운데 파슈툰족이 42%, 타지크족이 27%, 몽골계인 하자라족이 9%, 우즈벡족이 9%다.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파슈툰족 탈레반에게 중요한 건 ‘부족의 위엄’이었다. 탈레반에게 ‘샤리아 율법’으로 통치하는 세상을 거부하는 소수민족은 제거 대상이었다. 소수민족 출신이 권력을 쥐고 있는 정부는 용납할 수 없는 존재였다. 탈레반은 내전을 시작했다. 그렇게 1996년 라바니 정권을 무너뜨리고 아프간을 차지했다. 탈레반이 이번에 무너뜨린 가니 정권 또한 소수민족과 서방세력이 주도하는 용납할 수 없는 존재였다.

    파슈툰 우월주의 ‘탈레반’ 대 개방적 평화주의자 소수민족 ‘저항군’

    탈레반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1998년 8월 일어난 ‘컨테이너 학살’이었다. 당시 아프간 북부 ‘마자르에 샤리프’를 점령한 탈레반은 타지크족, 하자라족, 우즈벡족 청년들을 색출해 끌고 갔다. 그리고 이들을 밀폐된 컨테이너에 가둔 뒤 트럭에 싣고는 쉬지 않고 사막을 달렸다. 당시 한 컨테이너에 100~150명을 집어넣었다. 결국 8000여 명이 질식사했다.

    이런 과거로 인해 현재 반탈레반 저항군에 가담하는 사람 대부분이 타지크족, 하자라족, 우즈벡족이다. 판지시르 계곡에서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과 암룰라 살레 제1부통령이 이끄는 아프간 국민저항전선(NRF)은 타지크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반탈레반 저항군의 또 하나의 축인 압둘 라시드 도스툼 전 부통령은 아프간 북부에서 세력을 정비하고 있다. 그는 우즈벡족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타지크족과 우즈벡족, 하자라족은 서방 국가에 상당히 우호적이다. 근본주의 이슬람과는 거리가 멀다. 무슬림에게 금기시되는 개종도 어렵지 않게 하고 해외에 가면 돼지고기를 먹기도 한다. 국내에서 생활하는 타지키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출신 사람들과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