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전문 문자적 해석으로 건립과 재건을 해석해선 안돼
  • ▲ 김학성 강원대 로스쿨 명예교수·한국헌법학회 고문.
    ▲ 김학성 강원대 로스쿨 명예교수·한국헌법학회 고문.
    대한민국의 건국이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인지, 아니면 1948년 건국인지를 놓고 크게 다투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948년 정부수립부터다. ‘1919 건국설’은 건국헌법의 전문이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다는 것을 그 근거로 든다. 대한민국은 1919년에 이미 ‘건국’되었고 1948년에 다시 독립 국가로 ‘재건’한다는 것으로, 임시정부 수립이 ‘건국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이승만 정부는 1948년 8월 15일을 정부수립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헌법 전문의 ‘건립과 재건’을 해석할 때 문자적 해석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1919년 당시 임시정부의 상황과 이후의 전개, 임정의 최고 운영자들의 시각, 임정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태도, 건국에 대한 임정 헌법의 입장, 1945년 해방 후 임정 요인들의 말과 행동, 유엔 총회의 결의 등 국내외의 제반 상황을 모두 고려하여 ‘건립과 재건’을 해석해야 한다.

    3.1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의 건국이 선포되었으나 ‘임시’정부만 만들고 건국에는 실패했다. 전문의 ‘건립’은 실제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아니고 만들려 하였으나 임시정부만 만들고 국가 건설은 실패했다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 또 ‘재건’은 건설된 것을 다시 건설한다는 의미보다는, 건설하려다 ‘실패’했던 것을 다시 건설한다는 것으로 읽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백보 양보해서 1919년을 건국으로 보려 하더라도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뒷받침할 근거가 전혀 없다. 

    첫째, 임시정부는 영토, 주권, 국민 및 국제적 승인을 갖추지 못한 독립운동 단체에 불과했다. 

    둘째 ‘국민’이 ‘선거’로 선출하지 않은 임시정부를 건국으로 볼 수 없다. 임시정부는 임시정부, 임시헌법, 임시헌장 등 모두 것이 ‘임시’다. 임시정부란 국가가 아니라는 것이며, 임시헌법으로 건국된 나라는 없다. 

    임시정부, 건국 준비한 조직이지 결과가 아니다

    셋째, 임시정부는 건국을 준비한 조직이지 건국의 결과가 아니다. 임시정부 헌법 제5차 개정헌법(임시헌장) 제26조는 국무위원회에 건국의 방책이나 건국 방안을 의결하도록 명하고 있는데 ‘건국’이 미래의 일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1941년 11월 임시정부가 만든 ‘임시정부 건국강령’은 향후 독립운동과 ‘건국’과정에서 실천해야 할 중요 정책을 천명하고 있다. 임시정부 요원들은 귀국 후 자신들의 활동을 모두 ‘건국’ 활동으로 표현했다.

    넷째, 국제적으로 임시정부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은 임시정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로도 승인하지 않았다. 또 UN 총회의 결의에 따라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자신의 국가성을 인정받으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고, 그 결과 쟁취한 것이 건국이란 사실이다. 

    다섯째, 1919년에 나라가 세워졌다면 1948년 8월 15일까지 독립운동을 왜 했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또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임시정부의 국호를 그대로 따온 것이 아니라, 1948년 7월 헌법기초위원회의 투표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호를 새롭게 결정했다는 것이다. 

    여섯째, 헌법재판소가 통진당 해산결정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을 1948년이라 했고, 김대중 대통령도 1948년을 건국으로 인정했다. 또 이승만 정부는 1949년 독립 1주년 기념식을 거행했다.  

    임시정부 설립과 건국은 구별돼야 

    일곱째, 당시 이승만 정부가 정부수립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영토와 국민은 이미 확보되었고 주권도 정부수립일에 인수하기로 미국과 양해되어 있었으며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방해로 정부수립이 너무 어렵게 이루어졌기에 정부수립을 선포하고 건국을 선포하지 않았던 것이다. 건국이 선포되지 않았다고 건국이 없었다는 것은,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졸업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건국 기념식을 거행하지 않았다고 건국이 부정될 수 없다.

    이런 제반 상황을 모두 고려하여 전문의 ‘건립과 재건’을 해석하면, 3.1운동으로 건국하려 했으나 실패하여 임시정부를 만드는 데 그쳤고, 1948년의 건국은 건설하려다 실패한 것을 ‘다시 건설’(재건)하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하며, 적절하다.   

    정당의 창당 과정에서 창당준비행위와 창당이 구별되고 준비기구와 정당이 다르듯, 임시정부의 설립과 건국은 구별되며 임시정부는 건국준비기구에 불과하므로 임정 설립을 건국으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 1919년이 대한민국 ‘건국의 기점’이나 ‘기원’임은 분명하나, 기점이나 기원을 ‘건립’으로 우겨서는 안 된다. 건물의 건립일은 건축공사를 시작할 날이 아니라 준공을 받은 날이 되며, 생일은 임신한 날이 아니라 출생한 날을 기준한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벌써 73년이 흘렀는데 국민 대다수가 건국일을 모르거나 틀리게 알고 있다. 국가가 건국일을 바르게 정확하게 가르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일을 모르는 사람은 근본 없는 사람에 속하게 된다. ‘고구려, 고려, 조선’의 건국 일자는 알면서 자신이 속해 있는 대한민국의 건국 일자를 모른다면 근본 없는 국민에 속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