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음미해 보길 권한다
  • 친여 매체들이 뉴데일리의 기사 제목 “정치적 중립 철저히 지키라고 지시했대…文대통령이ㅋㅋㅋ”을 콕 집어 시비 걸고 나오는 모습을 보니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로 시작하는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가 떠올랐다. (※ 편의상 친여 매체라고 종종 쓰곤 하지만 이들의 보도 중에는 언론 기사라기보다는 ‘펜을 든 완장부대’ 성격을 느낄 때가 많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몇 달 전 일이다. 4·19 61주년을 맞아 국립4·19민주묘지를 참배한 문재인 대통령은 성숙한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목숨보다 뜨거운 열망으로 우리 가슴 깊이 민주주의를 심었던 날” “4‧19 혁명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굳건한 뿌리가 되었다” “우리는 이 땅의 위대한 민주주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문 대통령은 이때 김수영 시인의 ‘푸른하늘’을 언급했다고 한다.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이런 시구가 담겨있는 시다. 대통령은 작년에도 김수영 시인의 ‘풀’ 한 구절을 인용했다고 한다. 소위 사회참여시로 유명한 김수영은 문 대통령과 정권의 주력인 운동권들이 때마다 언급할 만큼 특히 사랑받는 시인 중 한 명이다. 이들에게 혁명, 피의 냄새 이런 단어들은 자신들의 희어진 머리와 불룩 튀어나온 배, 주름 마디마디에 낀 기름기를 잊게 만드는 회춘의 단어라고나 할까.

    청와대가 뉴데일리 기사 제목에 상당히 불쾌했던 모양이다. 본격적인 대선 정국이니 청와대와 정부는 철저히 중립을 지키라는 지당하신 대통령의 지시에 감히 ‘ㅋㅋㅋ’를 달아 제목을 붙였으니 청와대 입장에선 불온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필자는 청와대의 입장을 이해한다. 어떤 기사가 대통령 조롱으로 느껴졌다면 항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청와대 태도에 대해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는 평가는 별개의 문제다. 청와대 측의 항의를 받고 또 졸지에 친여 매체의 취재 대상이 돼버린 뉴데일리의 입장도 이해한다. 어찌됐든 언론사 고유권한인 편집권을 침해받은 것 아닌가.

    뉴데일리는 이미 다른 기사에서도 종종 ‘ㅋㅋㅋ’를 달아 제목을 붙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청와대는 “이런 희화화를 하는 언론은 스스로 품격과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비판했지만 그건 청와대 입장일 뿐이다. 언론의 품격과 신뢰가 대통령 관련 기사에 ‘ㅋㅋㅋ’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중대한 헌법 위반, 김경수 수갑 면제사건 보도 않는 친여매체들

    만일 기사 제목에 ‘ㅋㅋㅋ’를 붙인 언론사와 그 일로 언론사에 항의, 편집권에 감놔라배놔라 하는 청와대 중 어느 쪽 품격이 더 떨어지고 질이 안 좋은지 여론조사를 한다면 국민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다시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려 마무리하자.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건 다른 게 아니다. 청와대가 비판 언론 기사 제목에 발끈했다고 마치 청와대 대신 총대를 멘 것처럼 나서서 ‘너희들은 제목을 왜 그 따위로 달았느냐’고 거꾸로 해당 언론사를 취재하는 언론 행태가 과연 상식적인 행태냐는 것이다.

    이 매체들은 과거에 TV조선이 박근혜 전 대통령 인터뷰 방송에 ‘형광등 100개 아우라’라는 아부성 자막을 쳤다는 이유로 강렬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썼던 매체다. 그런 매체들이라면 ‘ㅋㅋㅋ’를 붙여 대통령을 조롱했다고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사를 조질 게 아니라, 품위가 있든 없든 언론사 판단에 따른 제목 편집권에 왜 간섭하느냐고 오히려 청와대를 후려쳐야 한다. 도대체 언론의 품격과 신뢰도를 낮추는 저급한 짓은 어느 쪽이 하는지 모르겠다.

    청와대 가려운 곳 긁어주느라 ‘열일’하는 친여매체, 당신들에게 한 가지 제안하고 싶다. 검색해보니 당신 매체들은 김경수 경남지사 수갑 사건 기사는 쓰지 않았다. 이 기사야말로 정상적인 언론사라면 꼭 써야 할 기사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서울남부지방법원 손승우 판사가 드루킹 사건으로 재판에 출석한 김경수가 수갑을 차지 않고 출석한 것에 “사회적 지위를 고려한다면 문제될 게 없다”며 희대의 코미디 판결을 한 건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모두가 수갑을 찼는데 김경수만 수갑을 차지 않은 것, 이걸 사회적 지위 운운하며 문제없다고 판결한 손승우 판사가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사건을 보도해야 한다.

    언론사 품격과 신뢰도는 제목에 ‘ㅋㅋㅋ’를 달아서 낮아지는 것이 아니다. 권력의 어용짓을 하느라 반드시 써야 할 기사를 쓰지 않았을 때 추락하는 것이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곱씹은 김수영 시인처럼 다시 곱씹어 보기 바란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문재인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이 제목에 ‘ㅋㅋㅋ’를 달아 문 대통령과 청와대를 열 받게 했다는 그런 사소한 사건에 분노해서야 쓰겠나.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옹졸하게 분개하지 말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 보도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