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마다 이재명 적극 건의, 문 대통령 뒷북 수용… 여권 잠룡에 밀려 '레임덕'가속화
  • ▲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2월 3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뒤 왼쪽부터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남춘 인천시장. ⓒ뉴시스
    ▲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2월 3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뒤 왼쪽부터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남춘 인천시장. ⓒ뉴시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러시아가 개발한 우한코로나(코로나19) 백신인 '스푸트니크V'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뒤늦게 도입 검토에 나섰다. 

    4차 재난지원금, 공급 위주의 부동산정책 등 현안마다 여권 차기 대선주자인 이 지사가 먼저 이슈화하면 문 대통령이 이를 뒤따르는 형국이 반복된다.

    22일 청와대 관계자는 "백신 수급에 대한 우려가 있는 만큼 러시아산 백신 도입 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참모진의 건의에 문 대통령이 '그렇게 하라'는 언급을 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스푸트니크V 백신의 사용 실태 및 부작용 점검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식약처는 이날 러시아 백신을 도입한 주요 12개국 외교 공관에 협조공문을 보내 국가별 스푸트니크V 접종 횟수와 이상반응 관련 정보를 수집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동안 정부는 '러시아 국부펀드로부터 협의 요청이 있었으나 백신 구매 검토는 없었다'고 했지만 급작스럽게 태도를 선회한 것이다.

    "구매 검토 없다"던 정부, 러 백신 정보 수집

    이 지사는 전날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러시아산 스푸트니크V를 포함한 다양한 백신의 공개검증을 이미 청와대 쪽에 연락해 검토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또한 정부의 백신 수급난 초래가 논란이 된 지난 15일에는 '경기도 독자적 백신 도입' 가능성을 열기도 했다.

    앞서 4차 재난지원금 지급 때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이 지사는 지난 1월5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1차 재난지원금을 넘어서는 규모의 재난지원금 지급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여야 국회의원 300명, 기획재정부에 보냈다.

    문 대통령은 같은 달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4차 재난지원금을 논의할 때가 아니라고 본다"고 이 지사의 주장에 제동을 걸었으나 한 달 만인 2월22일 "4차 재난지원금은 최대한 넓고 두텁게 지원되도록, 3월 중에는 집행이 시작되도록 속도를 내주기 바란다"고 말을 바꿨다.

    문 대통령이 지난 1월 국무회의에서 "무엇보다 혁신적이며 다양한 주택 공급 방안을 신속하게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부동산 정책방향을 제시한 것은, 이 지사가 지난해 11월 "경기도가 3기 신도시 내 주택 공급 물량의 50%를 '기본주택'으로 공급할 계획이지만 아쉽게도 부동산시장 안정과 수요 공급에는 못미치는 물량이다. 정부에 기본주택 확대를 적극 건의한다"고 강조한 지 두 달 만에 이뤄진 것이다.

    '친문' 대권주자 정세균만 '어리둥절'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모습은 '친문'을 자처하는 대권주자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도 엇박자를 보였다.

    정 전 총리는 러시아 백신과 관련, 21일 밤 MBN 방송에 출연해 "현재 시점에서 적절하지 않다.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실까"라는 의견을 제시했고, 4차 재난지원금과 관련해서는 지난 1월 "급하니까 '막 풀자'는 것은 지혜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국정 최고책임자인 문 대통령은 이 지사의 요청을 매번 수용한 셈이다. 이 지사가 추진하는 정부와 '차별화'가 결국 받아들여진다는 점은 이 지사로서는 '발 빠른 혜안'과 '결단력'이 있다는 이미지 형성에 기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현직 대통령이 여권 내 계파가 다른, 차기 대선후보 경쟁력 1위인 정치인에게 이슈 선점에서 밀리는 것을 놓고는 레임덕 가속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한코로나(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특성인 '신중함'보다 이 지사의 '과감성'이 국민들에게 주목받는다는 지적이다.

    22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 전문회사가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실시해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조사에서 이 지사는 25%로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22%), 3위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8%)다.(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野 "이재명 자기 정치에 文 외로울 것"

    김현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19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지금 정부가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그 안에서도 자기정치를 하는 이재명 지사의 모습을 봤다"며 "정권 말기 문재인 대통령이 정말 외롭겠다고 생각했다"고 꼬집었다.

    유승민 전 의원도 15일 페이스북에서 "경기도라는 광역단체가 중앙정부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백신을 도입할 수 있다면 도대체 문재인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으며, 이 정부는 왜 존재하는가?"라며 "문재인정권의 임기 말 레임덕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 역시 같은 날 페이스북에서 이 지사의 '독자 백신 도입'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이런 건 레임덕의 전조가 아니라 최종 형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