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두 차례에 걸쳐 '결정적' 공소장변경 허가하고 선고…'핵심증인' 김백준은 집요한 출석 거부
  • ▲ 이명박 전 대통령. ⓒ박성원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 ⓒ박성원 기자
    사법부와 검찰의 '짬짜미 의혹'이 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수수 혐의에 관한 대법원 선고가 오는 29일 내려진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이 삼성 뇌물을 직접 수수한 정황이 드러나지 않자 검찰에 '삼성이 이 전 대통령에 법률서비스를 제공했다'고 공소장을 변경하라고 제안했고, 그 논리대로 선고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전 대통령을 기소하는 근거가 된 측근과 다스 관계자들의 검찰 증언도 재판 과정에서 번복됐으며, 삼성 뇌물 혐의의 핵심 증인인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과 김석한 에이킨검프 변호사를 대상으로 한 증인신문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오는 29일 오전 10시10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의 상고심 선고공판을 연다. 이 전 대통령은 삼성으로부터 다스 소송비 585만 달러(약 67억원)를 대납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 검찰에 공소장 변경 제안… 제안대로 선고

    지난해 5월에는 기존 뇌물액에 에이킨검프의 인보이스를 통해 삼성에 실비로 청구된 430만 달러(약 51억원)가 추가됐다. 

    이 전 대통령은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김소남 전 의원 등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하고, 국가정보원장들로부터 특수활동비를 제공받은 혐의(국고손실 및 뇌물)도 받는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2월 이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 추징금 57억8000만원을 선고했다. 삼성 뇌물수수 혐의에 징역 12년과 벌금 130억원, 다스 자금 횡령과 국고손실 등에는 징역 5년이 각각 선고됐다. 1심 대비 형량이 2년 늘었다.
  • ▲ 법원. ⓒ정상윤 기자
    ▲ 법원. ⓒ정상윤 기자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에서는 재판부가 사실상 검찰에 유죄 논리를 제안한 '짬짜미 의혹'으로 논란이 일었다.

    항소심 재판 초기, 재판부는 "삼성이 에이킨검프와 거래한 돈이 어떻게 이 전 대통령의 직접뇌물이 될 수 있느냐"며 제3자 뇌물수수죄로 공소장을 변경하라고 검찰에 종용했다. 

    검찰은 당초 삼성이 2007년 11월 에이킨검프와 자문계약을 하고 2011년 3월까지 에이킨검프에 지급한 자문료(585만 달러)를 이 전 대통령을 향한 직접뇌물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 전 대통령에게 자금이 전달되거나 미국 10대 로펌인 에이킨검프를 이 전 대통령의 사자(使者)로 볼 수 있는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재판부는 김석한 변호사라는 제3자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이 뇌물을 수수했다는 논리를 제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제3자 뇌물죄' 입증 힘들자… 재판부 "무형의 이익 포함"

    그러나 제3자 뇌물수수죄 역시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이 "자금 지원에 대가성이 없었다"고 증언하면서 검찰의 새로운 주장도 금세 뒤집혔다. 제3자 뇌물죄가 성립되려면 뇌물의 대가성이 확인돼야 한다.

    이에 지난해 5월 검찰은 두 번째로 공소장변경을 신청했다. 이 역시 재판부의 제안을 그대로 따랐다. 

    재판부는 "삼성이 에이킨검프(다스 소송을 맡은 미국 로펌)에 돈을 주면서, 에이킨검프가 제공하는 법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이 전 대통령에게 뇌물로) 제공했다고 볼 수 있는지"를 석명(釋明·사실을 설명해 내용을 밝힘)하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당시 검찰에 "재판이 어렵게 진행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뇌물은 금전이나 물품, 재산적 이익뿐만 아니라 일체의 유·무형의 이익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재판부가 제시해준 논리에 따라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고, 재판부는 이를 허가했다. 그리고 재판부가 제시한 이 논리는 항소심 선고에 그대로 반영돼 이 전 대통령은 중형을 선고받았다.
  • ▲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정상윤 기자
    ▲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정상윤 기자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에서는 삼성 뇌물과 관련,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증인신문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지적받기도 했다. 

    김 전 기획관의 집요한 출석거부를 두고 '법정에 나와 신문을 받으면서 검찰에서 했던 진술들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거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삼성 뇌물 '핵심증인' 김백준은 증인출석 거부

    김 전 기획관은 2018년 3월 검찰 조사에서 '2008년 4월께 이 전 대통령과 이 전 부회장이 청와대 본관 2층에서 만나 뇌물 수수에 대한 합의를 했다'고 말해 이 전 대통령이 기소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전 대통령이 받는 가장 큰 혐의인 삼성 뇌물 혐의의 핵심증인인 셈이다. 

    김 전 기획관은 그러나 지난해 1월부터 항소심 선고 이전까지 이 전 대통령 재판에 총 아홉 번 증인으로 소환됐지만 모두 출석을 거부했다.

    김 전 기획관과 달리 항소심 재판에 출석한 증인들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부인하는가 하면, 검찰의 가혹수사와 플리바게닝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병모 전 청계재단 사무국장은 "검찰의 강압적 수사를 받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검찰이 원하는) 진술했다"고 토로했다. 

    검찰이 이 전 대통령의 재산관리인이라고 주장했던 고(故) 김재정 다스 회장의 부인 권영미 씨도 "김재정 씨가 이 전 대통령의 재산을 관리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은 이 전 대통령 건물 3채를 관리했다는 의미"라며 검찰의 주장이 사실과 다름을 증언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수수 혐의는 물적 증거는 없고 진술에 의존한 사건임에도 김백준 전 기획과과 김석한 변호사 등 핵심증인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지지 않았고, 주요 증인들의 검찰 진술이 번복됐다"면서 "또 공소장이 여러 번 변경되는 등 공소사실의 신뢰성 문제도 제기됐기 때문에 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관심을 끈다"고 말했다.